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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ppa Jun 09. 2023

뉴욕 - <마담 X> 포스터

예술의 의미

 


 2013년 봄, 나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에 위치한 '사전트 룸', 그 중에서도 <마담 X> 앞에 서 있다.


  이 그림은 친구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그리고 보자마자 나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이 그림이 파리 살롱에 처음 걸렸을 때만 해도 원본과 달리 드레스의 오른쪽 끈이 흘러내려 어깨에 걸쳐 있는 모양이었다. 결혼한 여성이 (우리는 왼쪽 약지에 빛나는 반지 덕에 그녀가 기혼 여성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어깨를 훤히 드러낸 채 요염한 포즈로 화가 앞에 섰다는 이유로, 작품은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보수적인 기준이다. 작품이 찬사의 대상이 되기는 커녕 웃음거리로 전락하자, 사전트는 끝내 여론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그림을 고쳐 그렸고, <마담 X>는 지금의 '온전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나 같은 현대인의 눈에는 노출이 심하지 않아도 그림 전반에 느껴지는 관능미, 보다 정확하게는 야한 느낌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림은 사전트가 이 여인을 향해 품은 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바로 그 지점이 좋았다. 고등학생 때 <밀로의 비너스>를 통해 예술이 가진 상상의 힘에 대해서 배웠다. 전문가들은 현재 없는 두 팔이 아마도 왼팔은 사과를 꽉 잡고 있는 형태였고 오른팔은 흘러내리는 옷을 잡고 있는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끝끝내 팔의 형태를 알 수 없다. 팔이 없기 때문에 <밀로의 비너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그 지점에서 단순히 부서진 조각상이 아니라 완전한 예술품으로 거듭난다. 예술은 모름지기 관객에게 적당한 여백을 제공하여 끝없이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사전트의 <마담 X>는 뛰어난 작품이다. 작가가 모델을 향해 품은 의도, '흑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으니까.

  이처럼 예술이 가진 상상의 힘은, 우리의 시선을 일상으로부터 더 고차원적인 무엇인가로 돌려놓는다.


  <마담 X>는 내가 좋아하는 예쁜 그림이기도 하다. 나는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예술을 좋아한다. 그림을 볼 때는 피사체와 구도, 색감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피카소의 큐비즘은 같은 입체주의는 영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림의 모델인 마담 X, 피에르 고트로는 파리의 사교회에서 유명한 미인이었고, 빼어난 미모 덕에 당대 수 많은 예술인들의 뮤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림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실물은 오죽했을까.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머리,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는 새하얀 피부(그 와중에 귀만 붉게 달아오른 것이 더 야하고 생기 있어 보인다.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고), 피부색에 대조되는 깊은 검은 색의 드레스, 직각으로 뻗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섬세한 옆 얼굴선 등등, 그림의 일부분만 뜯어놓고 보기에도 참 예쁘고,  잘 그린 그림이다.

  또 내가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델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과장되고 뻔하게 그려지는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신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몸을 돌려 화가의 시야에서 벗어날 듯한 모델의 자세와 아름답지만 처연해 보이는 옆모습에 절로 그림 속으로 손을 넣어서 여인의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싶게 만든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야기를 감추고 있을 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또한 상상의 연장선 위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 뉴욕이란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된다. 뉴욕은 '고자극'의 도시이다. 거리마다 볼 거리가 넘쳐난다. 타임 스퀘어의 화려한 광고 전광판에서 쏟아져내리는 이미지, 저마다 아름다움을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미술관과 박물관, '뮤지컬의 성지' 브로드웨이에서 매일 저녁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뮤지컬까지. 

  누군가에게는 이런 자극이 피곤하고 느껴질 것이고, 누군가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도시를 누빌 것이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이 도시의 자극을, 영감을 사람마다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볼거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받아들이는 방식도 모두 다르며, 그 방식은 개개인의 이야기와 삶의 태도를 반영할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극, 그리고 '관객'과의 상호작용. 그렇게 뉴욕은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은 표현적인 창조 활동이다. 예술가 개인만의 행위가 아니라 관람자(문학의 경우 독자, 음악인 경우 청자)간의 상호작용 또한 예술의 일부분으로 인정된다.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형식만을 표현한 것도 예술이오, 그렇게 탄생한 창조물도 예술이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활동도 예술이며, 예술을 통해 타인과 오가는 상호작용까지 예술이다.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중시되는 현대 미술에서는 때론 심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내가 비록 뒤샹의 머리 속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가 변기를 뒤집어 놓았을 때는 아마도 맥락의 파괴라는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처럼 익숙한 오브제가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낯설게 다가오면서, 작품 속 오브제는 관객의 기억 속에 머물렀던 순간이나 환경, 혹은 사건들과 더불어 불특정한 관념과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개로서 재현된다. 예술은 관객으로 하여금 각각의 오브제와 그것이 놓였던 장면이 지니는 공간적 정서를 반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가가 역사서에 실릴 역사적 사실을 고르는 행위가 후대의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가가 예술의 대상을 고르는 행위 또한,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예술가의 의도 또한 관객이 어떤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를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 사전트는 마담 X가 어떻게 비춰지길 바랐을까.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교계의 유명인사? 아니면 음탕하고 문란한 팜므파탈?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림을 덧그린 이유와 당시 사회적 가치, 그리고 끝내 고쳐 그리고 말았던 작가의 심리, 이 모든 헤프닝까지 합쳐져 <마담 X>라는 예술품 전체를 이룬다.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림을 덧그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늘 날 <마담 X>가 이토록 퇴폐미를 뽐내며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담으로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이 그림의 포스터를 샀는데, 그 때 나에게 물건을 팔았던 점원이 웃으며 "Enjoy her."라고 말했다. 그녀를 즐겨라, 그 표현이 어찌나 퇴폐적이던지. 묘하게도 그림을 추천했던 친구와 조금씩 멀어져 포스터는 결국 내 것이 되었고, 포스터는 컨버스 액자로 만들어져 내 방 한 구석을 오래도록 지켰다. 시간이 지나면 미의 기준도 바뀐다고 하는데, 세월이 지나도 이 작품이 사랑 받는 걸 보면 어떤 미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 전통으로 남기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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