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미 Nov 27. 2023

13년 차 워킹 맘, 바람같이 일본으로 떠나다.

알 수 없기에 더 매력적인 것, 인생.


                            "여보,
               9월부터 일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어."


 작년 6월, 이른 더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져야지, 일렬로 나란하게 줄 선 차들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다. 여보, 일본이라며. 무슨 서울에 발령 난 것처럼 그렇게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은 느낌. 남편의 직구에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놀랄 시간도 많이 없었다. 당장 우리 가족이 3년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떨어져 지낼지, 한국 생활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 일본에서 함께 살지를 결정해야 했다. 딸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 1학년 입학도 해야 하는데 일본에 다닐만한 학교가 있는지도 걱정, 무엇보다 일본어 하나 못하는 우리가 일본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컸다. 요즘 한창 유행인 한 달 살기도 아니고 3년이나 살아야 한다니, 극 I 유형인 워킹맘에게 참 큰 시련이자 고민인 날들이었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빨강머리 앤 

    

 많은 고민 끝에 남편과 떨어져 독박육아 워킹맘이 되고 싶지 않아 과감하게 3년 휴직 선언 후 일본행을 결정했다. 이것이 살아온 인생에서 스스로 한 가장 큰 결정이었다. 그리고 일생 중 가장 긴 여행이 될 거란 기대를 해보았다. 인생이 곧 여행이 아니던가, 뭔가 큰 결정을 한 듯 자신에 대한 뿌듯함을 가지고, 휴직으로 인해 가정 경제가 휘청거리는 위험부담을 안고서, 새로운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본래 계획했던 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먼저 딸의 학교 문제였다. 학령기 아이의 학교 문제가 일본 살이에 가장 큰 변수였다. 다행히 도쿄 신주쿠에 한국의 교육과정과 똑같이 운영되며 재외 한국인을 위한 동경한국학교가 있었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이런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동경한국학교 근처에 집을 마련해 주었다. 이제 동경한국학교에 딸이 입학만 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추첨에서 떨어졌다. 무려 대기 21번으로 말이다.(입학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후에는 딸아이는 요요기 인터내셔널 스쿨(국제학교)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한쪽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의 문이 열리기 마련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역시 사람은 그냥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고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한국생활 정리로 한창 바쁘던 3월, 일반 검진 차 들린 산부인과에서 왼쪽 난소에 혹이 발견되었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난소암 종양 표지자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암 검사인데 설마 암이겠어? 하는 마음에 간단하게 피검사를 의뢰해 놓고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일본 출국을 5일 앞둔 그때, 산부인과에서 걸려온 전화가 왔다. 암 검사에서 이상수치가 발견되었으니 지금 바로 오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미 일본에 있었고, 급한 마음에 딸을 데리고 같이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웠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왼쪽 난소 혹이 암일 확률이 있으니 지금 바로 큰 병원에 가보란다. 

 “선생님, 저 이제 겨우 40이에요. 딸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요. 이럴 수도 있나요. 검사가 잘못된 건 아닐까요?” 애먼 의사 선생님께 애원해 봤지만 거기까지였다. 불행은 예고 없이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더니, 하필 그날은 3월 들어 가장 햇살이 멋진 날이었다. 평범한 오후의 일상이 지옥같이 변하는 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차분하게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난소를 제거하는 수술과 더불어 조직검사 결과 암이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다. 이 시기 정말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었고 엄마, 부인, 딸이라는 자리,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지옥 같았던 날들 덕에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전화를 받던 날 그날의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때 내 곁에서 손을 잡아주었던 딸아이가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었다. 인생이란 실상 평범한 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 반짝거리는 멋진 날이 계속되지 않아도 맹숭맹숭한 하루가 이토록 소중한 날이 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입맛을 자극하는 산해진미의 오마카세 요리도 하루이틀이지. 엄마의 아내의 심심한 집밥이 평생 질리지 않듯, 평범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일본살이 첫 시작이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