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에 진심인 소비자의 유토피아
최근 컬리가 국내 증시 상장을 철회했다. 요즘처럼 고물가, 고금리로 투자심리가 위축되어 있는 시기가 아닌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는 최적의 시기에 다시 상장을 추진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초기 투자자들에게는 자금 회수(EXIT, 엑싯)를 할 수 없게 되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컬리의 조용한 열성팬인 나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컬리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이 소위 말하는 몸값을 낮추기에 충분했다. 첫째로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후 주가하락이다. 상장 직후 100조 원에 육박한 쿠팡의 시가총액이 38조 원까지 하락하면서 이커머스 업계의 가치 평가 논란이 있었다. 쿠팡의 10분의 1의 매출에 불과하지만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고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던 컬리도 평가절하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둘째로 김슬아 대표의 낮은 지분율이다. 6% 대의 낮은 지분율 때문에 대표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회사가 경영될 수 있다는 부분이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김슬아 대표의 말이 꽤 인상적이다. 김 대표는 “회사가 잘되는 게 우선, 내 지분율은 5%든 50%든 상관없고 경영할 자격이 없다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컬리라는 브랜드 색깔을 만들어온 데는 김슬아 대표의 애정과 고집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승하는 매출에 비례하게 꾸준히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내어주더라도 회사를 지키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업으로서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브랜드 색깔도 만들어 갈 수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컬리가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은 어떤 게 있을까? 새벽배송 업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쿠팡, SSG닷컴, 컬리 세 플랫폼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컬리가 나아갈 방향성을 고민해 보자.
쿠팡 "저렴하고 빠르지만 품질은?"
우선 업계 1위 쿠팡의 최대 장점은 '저렴한 가격'과 '배송속도'다. 어떤 제품을 사고 싶으면 쿠팡에 검색해 보자. 탄산수 30개 들이를 사던, 반려견 미끄럼방지 매트를 사던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특정 브랜드와 제품을 원한다면 없을 수도 있지만 여러 제품군 중 하나를 구매하고 싶은 거라면 쿠팡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집으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와우배송을 이용한다면 언제 주문하든 24시간 내에 받아볼 수 있다. 쿠팡은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다.
쿠팡의 단점은 품질이다. 여기서 품질이란 제품, 배송,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어 쿠팡 프레시(쿠팡의 신선식품 분야)를 이용하면 보냉백이 터져있거나 식재료가 신선하지 않은 상태로 배송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 문 앞에 툭툭 던져져 있는 미색의 쿠팡봉지는 '속도'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배송받는 소비자의 '경험'은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플 내의 사용자 화면도 언급한 3사 중 어플 사용 피로도가 높았다. 예를 들면 제품 페이지 상단의 광고, 동일 제품이지만 서로 다른 가격, 감각적인 디자인(글씨체, UI배치, 가시성)이 타사보다 아쉬웠다.
SSG닷컴 "안정적인 인프라 BUT 색깔은?"
SSG닷컴은 기존에 구축해 놓은 물류센터와 자본금을 기반으로 발 빠르게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쿠팡과 컬리에 비교하면 특장점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쿠팡처럼 배송이 빠르지도, 컬리처럼 식품이 다양하지도 않다.
장점은 탄탄한 자본금으로부터 오는 안정감이다. 새벽배송 시장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경쟁사를 제치기 위해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쿠팡은 자동화 물류시스템을 개선하면서 최근에 첫 흑자를 기록했지만, 컬리와 SSG닷컴은 상승하는 매출에 비례하는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만약 어느 한쪽이 자본잠식을 감당 못해 포기할 치킨게임이라면 SSG닷컴이 컬리보다 상황을 길게 보고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컬리 "식재료를 향한 진정성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
새벽배송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컬리의 매력은 '왜 새벽배송을 하는가'에 있다. 바로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신선한 상태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평범한 식재료인 양파를 비교해 봐도 동네 마트, 대형 마트, 온라인 주문 중에서 가장 뽀얗고 단단해서 품질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컬리의 주요 타겟층이 3049 여성이었던 이유도 아마 '식재료를 향한 진정성'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컬리는 상승하는 매출에 비례해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적자의 원인 중 첫 번째는 식품군 카테고리의 낮은 마진율이다. 패션이나 가구 같은 카테고리에 비해 식재료는 판매 가격도 낮고 소비자도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코트나 냉장고의 가격은 몇 만 원이 올라도 피부로 와닿지 않지만, 배추의 값이 천 원만 올라도 금추니 말이 나오니 유통사에서는 유통마진을 크게 남길 수도 없다. 뷰티컬리를 오픈하거나 단가가 높은 다른 제품군을 판매하는 이유도 매출 대비 이익금을 높여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원인은 물류시스템 구축 비용이다. SSG닷컴이 쉽게 새벽배송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에 갖추어진 이마트의 물류구조 덕분이었고, 쿠팡의 흑자 전환을 가능케 한 것도 자동화 기반의 물류 네트워크였다. 그에 반해 컬리는 수도권(서울/경기) 중심으로 비수도권(충청/대구/부산) 지역으로 점차적으로 확장된 물류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했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세 플랫폼의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쿠팡은 '속도'가 강점인데 비해 '품질'은 아쉽고, SSG닷컴은 '안정성'이 돋보이지만 '색깔'이 부족해 보인다. 컬리는 '품질'을 향한 진정성이 강점이지만 쿠팡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서로의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새벽배송을 두고 맞서는 치킨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가에 따라 각자도생 할 수 있을 것이다.
컬리는 브랜딩이 참 잘 된 기업이다. 새벽배송의 선두주자, 컴플레인에 빠른 대응, 전지현 광고 모델 등 많은 수식어들이 컬리를 이용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품질'을 제공한다는 점이 브랜딩의 구성요소로서 가장 매력적이다.
우리는 브랜딩과 브랜드 마케팅을 때때로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르다. 브랜딩은 상품의 기획부터 디자인, 홍보를 통해 브랜드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말인 반면, 브랜드 마케팅은 브랜딩 구성요소인 홍보 단계 중 하나의 방법론이며 브랜딩보다는 좁은 개념이다. 그래서 꾸준한 힘을 가진 브랜드는 브랜드 마케팅이 아닌 브랜딩을 잘 한 기업이다. 제품이 힘이 있어야 이를 알리는 마케팅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플랫폼과 비교불가한 컬리의 '좋은 상품'은 브랜드를 꾸려나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현재는 쿠팡의 속도와 가격 경쟁력에 밀리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소비자가 선택하는 건 본질이다. 컬리가 마켓컬리(식품분야)에서 보여줬던 다양한 종류와 품질이 주는 차별성을 뷰티컬리(화장품분야)에서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뷰티컬리의 병행수입 문제와 같이 백화점에 입점한 동일 브랜드를 판매해서는 컬리의 강점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 없는 해외 브랜드를 단독 론칭하거나 매력적인 PB상품을 개발하는 쪽이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상장에 실패했건 아니면 대표의 지분율이 낮건 본질이 유지된다면 사람들은 결국엔 컬리를 선택할 것이다. 미생에 이런 말이 나온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에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컬리의 비교불가한 상품은 순류다. 타 플랫폼의 속도나 가격이란 역류에 떠밀려가지 말고 지금까지 해왔던 컬리의 색깔을 유지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