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우 Aug 06. 2024

우린 다시 노래 부르리, 뮤지컬 <하데스타운>

지금, 우리는 뒤돌아보고 있는가

극장에 기차 경적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나는 <하데스타운>과 사랑에 빠졌다. 짙은 재즈풍의 음악과 산업 혁명 시대를 연상시키는 옷차림,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진 작품. 독보적인 이끌림이었다. 


독특한 색채를 가진 극,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그리고 하데스와 페르세포세 커플의 이야기를 각색해 쓰였다. 장소는 신들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술집과, 제목 그대로 하데스타운. 송스루 뮤지컬, 그러니까 거의 노랫말만을 사용해 극을 진행하는 뮤지컬치고는 대사가 많은 편이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렇지만 <하데스타운>의 감동을 속속들이 느끼기 위해서는 등장인물들의 서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음악과 아름다움에 취해 사는 오르페우스는, 춥고 쓸쓸한 세상에 지친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진다. 오르페우스를 밀어내던 에우리디케도 그의 아름다운 노래와 순수한 눈빛에 빠져들며 둘은 여름을 함께 보낸다. 대사로 소통하던 에우리디케가 후반부로 갈수록 오르페우스의 멜로디에 동화되는 것도, 그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가지 요소이다. 

이들의 세계에서 봄과 여름은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머무는 기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은 그의 남편인 죽음의 신 하데스와 함께하는 기간이다. 그러나 따스하고 풍요로운 시간은 잠시뿐, 계절의 리듬을 깨고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일찍 데려가버린다. 에우리디케가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사이, 오르페우스는 작곡에 열중한다. 겨울이 앗아가 버린 따뜻함을 돌려줄 노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담은 사랑 노래를 쓰는 오르페우스는 정작 연인인 에우리디케의 외로움을 알지 못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오르페우스를, 땅의 아이 에우리디케는 언제까지고 믿을 수 없었고, 결국 지하의 왕 하데스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하데스타운의 일꾼이 된다. 오르페우스는 그를 되찾기 위해 멀고 험한 길에 나선다. 그 순간이 이 뮤지컬의 명장면인 'Wait For Me'다.


하데스를 가혹한 악역으로만 바라보기 쉽지만, 사실 그 또한 의심에 굴복한 사랑꾼일 뿐이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파란 하늘이 빛나는 지상 세계의 페르세포네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점점 더 서둘러 계절의 규칙을 깬다. 영원히 자신과 함께하도록 하데스타운에 벽을 세우고 더욱 뜨겁게, 더욱 눈부시게 지하 세계를 데운다. 

그의 집착에 숨이 막혀온 페르세포네가 등을 돌리자 그의 노력을 알아줄 여자, 에우리디케를 지하로 데려온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두 관계 모두 의심으로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노래로 기회를 얻는다. 새로 시작할 기회를, 다시 노래할 용기를. <하데스타운>이라는 작품을 꿰뚫는 '믿음'이라는 주제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브로드웨이 극장 중 작은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듯, 무대 전환과 암전을 최소화하며 배우들도 웬만하면 퇴장하지 않는다. 무대 아래 마련된 오케스트라 피트 대신 무대 가장자리에서 함께 즐기는 밴드 멤버들도 즉흥적인 재즈 스타일의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춤에 어우러지는 바이올린 솔로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심장 박동에 맞추어 뛰는 드럼 소리가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미니멀리즘 속에서도 풍부함이 느껴지는 배우들과 밴드의 역량이 놀라울 따름이다.

전체적으로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인상을 주는 호박색 조명이 무대를 뒤덮고 있으며, 그 빛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고 동요하는 하데스의 그림자는 외로운 왕의 이면을 보여주고, 단합한 일꾼들의 그림자는 작아만 보였던 그들이 가진 거대한 힘을 보여준다. 


어느 배우의 가창력도 빠지지 않으며 초연보다 한 층 더 섬세한 표현에 감탄하게 된다. 이야기의 가장자리에서 모든 일을 지휘하는 운명의 여신들의 아름다운 화음도, 스토리텔러 헤르메스의 카리스마도, 우리를 비추고 있는 일꾼들의 변화도,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 예술이 탄생한다. 그들은 순식간에 관객을 설득시키고 매료시켜, 공연장을 나서면 귓가에 기차 경적 소리가 울리게 될 것이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는, 무대 위의 모두가 객석을 응시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객석에 앉은 우리에게 호소하고, 질문하고, 우릴 위해 건배한다. 믿음을 되찾고 싶은 이들, 다시 시작할 용기가 필요한 이들 모두에게.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사랑 노래다. 


작가의 이전글 디어 에반 핸슨, You Will Be Foun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