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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상일기

구제가능

병상일기 #012

by 자크


오랫동안 글을 적을 수 없었다. 몸이 아파서, 혹은 마음이 아파서.


아니지.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냥 머리(뇌)가 아파서다.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들과 책임감, 중압감. 노동과 이동, 그로 인한 분망함이나 고단함 같은 한심한 사유들을 얼마든 댈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머리가 고장 난 인간이라 자주 아픈 것이고, 그래서 좀처럼 쓸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 문장들이 자꾸만 흩어진다.


<불안, 우울, 무기력, 위염, 장염, 식도염>


고장 난 머리가 데려오는 증상들 중 어느 것 하나 약으로 낫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약을 먹는가? 먹지 않으면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자다 깨도 외울 만큼 익숙한 처방전의 글자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 한 움큼의 약을 털어 넣는다. 약 무더기가 꾸역꾸역 간신히 식도를 통과하면 잠깐이지만 무언가 극복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노력하잖아. 좀 봐 달라고.


즈즈즈즈지지익-


오래된 형광등 같다. 켜질 듯 말 듯 깜빡이며 숨을 몰아 쉬는 형광등 속 간신히 죽지 않은 빛의 틈을 비집고 몇 문장을 찔러 넣다 보면, 이내 빛은 아주 죽어 버린다. 놀랍게도 이럴 때는 그토록 요란하던 창밖의 불빛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위가 어둠뿐이다. 잠깐 불이 켜졌다가 또 금세 꺼지는 낡은 방 안에서의 일상이 즉 나의 여생이 될 것 같다는, 다소 체념 섞인 확신을 몇 년 전쯤 했던 것 같다. 어설픈 형광등 빛처럼 오락가락 겨우 버티는 몸과 마음의 깜빡임. 하루가 간다. 하루가 온다.




야간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암순응을 통해 주위 환경을 빠르게 인식하고-

사격을 하게 된다-


암순응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던 건 과학 시간이 아닌 스물두 살 훈련병 시절이었다. 군대는 희한하리만치 한자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집단이었고, 조교들은 하나같이 말꼬리를 길-게 끄는 버릇이 있었다. 어쨌거나 문자 그대로 막 깜깜해졌을 때엔 보이지 않던 눈이 곧 어둠(暗)에 순응(順應)하여 어렴풋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암순응, 암순응이구나. 어스름히 표적지를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었다. 훈련단 생활이 어느덧 6주 차를 맞이하던 무렵이었다. 요컨대 인간은, 적응하는구나.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유지하고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 빛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확실히 알았다.




즈즈즈즈지지익-


여전히 소등과 점등을 반복하는 형광등 아래 누워 있지만, 분명 괜찮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미 내 삶 속 사물들의 위치를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잠깐동안 소경이 되어도, 어두운 방 안을 조심스레 더듬다 보면 어느새 어둠에 적응한 눈이 가구들의 위치를,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그러니까 결국 살아 있기만 하면, 언제든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뭐, 다음이 또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 주기가 돌아 온 탓에 한참을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제목부터 구제불능이라 쓰고 모처럼 글을 적는다. 적다 보니, 거 참 묘하게도 이제 괜찮은가? 싶은 기분이 들어 제목을 바꿨다. 어쩌면 나는 조금은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10월이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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