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를 가게 된 경위
세상에는 부러울 사람도 많겠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를 꼽자면 주재원 남편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해외 살이를 떠나는 여자라고 하겠다. 요즘은 주변에 그런 사람들도 드물지 않건만 어째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통 주어지질 않았다. 돈을 버는 해외 살이가 안 된다면 돈을 쓰는 해외 거주를 택할 수밖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한 달간 해외 생활을 해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행선지 찾기에 착수했다. 첫째도 초등학교 5학년이라 중학교에 가기 전 이때쯤이 적기이리라 생각하니 워낙 결정을 미루는 타입이기는 해도 떠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떠나겠다는 마음의 결정은 했지만 여전히 그럴듯한 명분 하나쯤은 필요하다. 돈을 벌러 가는 것도 아니니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돈을 좀 써도 충분한 명분이 되는 보편적인 핑곗거리는 영어 공부가 아닐까? 첫째는 영어 유치원까지는 아니라도 영어에 꽤 시간을 할애하는 유치원에 다녔지만 바이링구얼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노출 수준이다. 물론 한 달 남짓의 영어 연수도 귀가 뚫리고 말문이 트이게 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적 경험이라는 양질의 목표가 설정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행선지는 이제 영어 사용권으로 좁혀졌다. 물론 영어적 경험만을 위한다면 단연 미국이겠지만 미국은 좀 비쌀 것 같다. 좀 더 싼 나라를 찾아보고 싶다. 아니, 사실 돈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영어 공부이라는 명분은 어차피 대외용이다. 내가 진짜 하는 싶은 것은 영어 공부를 빙자한 여행이다. 물론 미국을 가도 여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 넓기는 해도 하나의 국가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이왕 맘먹고 떠났으니 유럽의 여러 나라를 가 보고 싶다. 유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펠탑의 이미지를 막연히 떠올리며 다녀온 첫 유럽 여행지 프랑스와 결혼 10주년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기에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다녀온 산토리니가 있는 그리스 외에 다른 유럽 국가들은 다녀 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남은 유럽의 몇 개국 정도는 도장 깨기가 가능하리라. 유럽은 비자도 없이 기차 패스 한 장만 들고도 이 나라 저 나라 국경을 손쉽게 넘나들 수 있지 않은가. 그럼 유럽이면서 영어를 쓰는 나라면 된다. 그건 영국이겠지만 영국은 안 봐도 비쌀 것 같기에 아예 제외됐다. 소거법에 의하여 미국과 캐나다, 영국이 제외되고 난 후 남은 나라 중 유럽이면서 영어권이고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나라가 바로 몰타였다.
몰타는 한 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가 있어 현재 몰타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물론 실제로는 많은 현지인들에게 영어보다는 몰타 어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어쨌든 타 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영어 사용이 빈번하다 보니 영어 학원 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고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의 학생들을 겨냥한 영어 캠프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곳의 영어 캠프는 보통 방학 시즌을 이용하여 영어 학습과 액티비티를 겸하고 있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성인 반도 개설이 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몰타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중해의 섬나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아동 및 성인의 영어 연수뿐 아니라 지중해 바캉스와 유럽 여행을 겸할 수 있는 나라이다. 현실적인 만족도야 가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나마 조건에 딱 들어맞는 곳을 찾아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몰타행 항공권 검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