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디나
오전 수업을 마치고 임디나를 갔다. 몰타섬 중앙의 구릉에 자리 잡은 성채 도시인 임디나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몰타의 수도였고 지금은 몰타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차로 간다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겠지만 대중교통으로 가자니 시간이 꽤 걸렸다. 구글 지도를 보니 케네디에서 내려 환승을 하라는데 역을 놓쳐 콰디에서 갈아탔기도 했고 배차 간격도 꽤 길어 가는 길이 편하지는 편하지만은 않았다.
한참을 걸려 임디나 게이트에 도착하니 마차 탑승을 권유하는 마케팅이 한창이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재미삼아 타볼만도 했겠지만 혼자서는 탈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해외를 다니면서 도시의 색깔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지중해의 짙푸른 바다색과 하얀색의 조화가 시그니처인 산토리니나 주황색 지붕으로 뒤덮힌 피렌체의 시가지처럼 인상적이지는 않을진 모르지만 임디나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임디나는 흙빛이다. 임디나의 흙빛 건물들은 흡사 땅에서 자라나 피어난 잎이 없는 나무 숲 같기도 하고 해변에서 솟아나온 모래성같기도 하다. 우리 나라는 어떤 색을 반사하고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파트의 회색 빛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빛이 없다. 흙이나 돌이나 나무같은 자연이 주는 재료들로 지은 건물은 하늘과 땅과 괴리감이 적고 조화롭지만 콘크리트 건물은 아무리 페인트 칠로 화사한 컬러를 입혀도 저도 모르게 스며 나오는 음울한 회색빛을 감출 수 없는 듯 하다.
어디까지가 진짜 중세의 건축물이고 어디까지가 최근에 복원한 것들인지 알수없는 건물들로 채워져 있지만 분위기만큼은 고즈넉하고 고요한게 흡사 중세의 거리를 거닐고 있는 기분이다.
좁은 옛 골목길을 살피기도 하고 임디나 대성당이 있는 광장을 둘러 보기도 하고 작은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걷다 보니 몰타를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근처에 많은 들어 본듯한 폰타넬라라를 카페가 있길래 카페 윗층으로 올라가니 역시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그레이 한 잔과 초코 케이크를 주문하고는 어떻게 보면 중세의 도시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같기도 한 먼 풍경을 바라 본다.
보통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주요 도시는 강이나 바다 등 물가를 기반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임디나처럼 구릉 위에 지어진 도시도 있다. 아마 방어상 잇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방어가 중요했다는 것은 그 땅에 분쟁이 많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면 당연히 중심지는 사람들의 편의성과 경제성을 따를 것이다. 지금은 몰타 역시 바닷가를 점한 발레타를 수도로 하고 있다.
임디나 근처에는 사도 바울이 체류했다고 하는 거처와 카타콤베도 있다. 카타콤베는 내가 갔을 때는 오후 4시 반까지 오픈한다는 안내판이 있었고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