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베쿠아의 영어 연수
내가 들어갔던 영어 클래스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체코, 조지아 등 동서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나 일본, 우리나라 등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의외의 나라에서 온 학생도 있었는데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캐나다에서 온 남학생이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캐나다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니 대번에 반 학생들 모두가 무슨 연고인가 의아해했다. 아마 대부분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거나 해서 아직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던가 하는 개인적인 사정을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그가 퀘벡인이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퀘벡이면 꽤 들어본 캐나다의 큰 도시인데 그곳에 사는 것이 영어를 못 하는 이유라고? 그럼 그동안 내 주변에 캐나다로 영어 연수를 떠난 사람들은 다 뭐냐? 캐나다는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가 아닌가?
그는 집이 퀘벡이라고 했다. 그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퀘벡 인들은 영어를 잘할 수 없다고 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보다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캐나다인인데 어느 정도는 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퀘벡주는 프랑스의 탐험가가 프랑스 왕령으로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프랑스 문화권이었고 영국이 캐나다를 점령한 후에도 자치권이 있어 이런 추세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분리주의 운동이 있긴 했으나 상호 간에 문화를 인정하는 분위기 가운데 오히려 극단적인 분리 운동은 힘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퀘벡 인들의 정체성은 혈연에 기반을 둔다기보다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을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서 퀘벡인, 프랑스어로 퀘베쿠아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프랑스어 사용을 법제화하고 학교 교육이나 사회 진출 시에도 프랑스어를 해야 사회에서 인정받고 적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심지어 상업 간판의 경우도 프랑스어로 써야 하며 만약 영어나 타 외국어를 병용할 경우, 프랑스어의 폰트 크기가 2배 이상으로 존재감을 나타내야만 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를 보면 옛날에는 언어가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시날 평지라는 곳에서 도시와 건물을 지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자 하나님은 이 일을 막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자 여러 언어가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다. 언어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변한다. 지구상의 많은 언어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 중이다. 물론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와 아직까지도 살아남은 언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그중 어떤 것은 다른 언어에 일부 흔적을 남겨 두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한 때 인류의 문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언어라면 그리스어나 라틴어라고 하겠지만 라틴어는 사어가 되었고 그리스어도 현대 그리스어와 고대 그리스어는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다. 물론 그 언어의 정신은 오늘날 지구상의 인류의 사고 속에 어느 정도 살아 있겠지만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권력을 가진 언어는 영어다. 언어의 힘은 정책적으로 강제한다는 세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소유한 자가 누리게 될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비례하여 그 세력을 키운다. 아무리 퀘벡주에서 프랑스어를 보호하고자 강제하는 법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다른 주에서 일자리를 얻고 그곳에서 힘을 얻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배워야 할 것이다. 다른 것들이 그렇듯 언어의 흥망성쇠 역시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 원리를 따른다. 아무리 번역기가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인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된 오늘날 영어의 중요성은 그 정보를 해독하고 소유하기 위해서라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머지 소수 언어들은 더 빠른 속도로 그 명맥이 끊길 것이다.
우리와 다름없이 영어를 한 단어 한 단어 힘겹게 말하고 있는 캐나다 사람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아니 영어를 배우려면 이웃 주로 가면 될 것을 북미에서 이 먼 지중해까지 날아올 건 뭔가 생각도 든다. 아마 그도 나처럼 영어를 빙자한 해외여행이 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