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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un Aug 05. 2022

독특한 사랑스러움,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 4

줄거리 소개 4




아직 물 위의 상반신만 드러났지만 이 촌장의 피부색은 확실히 초록색입니다. 피부색이랄까, 그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대부분 초록입니다. 또 머리에 무슨 접시 같은 것이 얹혀 있고 새처럼 부리가 나와 있으며 등 뒤에 툭 튀어나온 등껍질이 붙어있습니다. 전형적인 갓파, 누가 봐도 갓파입니다. 


“외국 분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분이잖아!” 


묘한 삼각 구도를 이루며 대치 중인 이들 가운데 가장 적대심 만만 상태의 코우가 소리칩니다. 당연한 것이 지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 촌장이라는 자는 할머니 표 전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생김새를 하고서 멀쩡한 현대 일본어를 구사하고(심지어 입도 험해요), 오늘부터 자신의 연인이라는 이 여자와 마찬가지로 이곳 하천 부지에 사는 사람.. 아니 생물이라고 하니까요. 단 반나절만에 금성인 애인에서 요괴 이웃까지 인맥을 넓혀버린, 능력자 코우입니다.  


“어이, 그 정도만 해 둬”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며?” 


흥분한 코우에게 평온한 말투로 일침을 날리는 니노. 물론, 틀린 말은 아니죠. 코우 본인 입으로 나는 스스로가 너무 잘난 나머지 나 이외의 사람들을 굳이 차별하고 무시하는 비겁한 짓 따위 하지 않는다! 고 말한 바 있으니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동시대에 현존하는 대상들을 향한 말이기는 했지만요.   


잠시 실랑이를 벌일 뻔 한 두 사람을 짐짓 말리려는 듯 다소 쓸쓸한 말투로 갓파 촌장이 입을 엽니다.  


“그래, 아무리 꾸며도 난 갓파야.”  


(이 와중에 역시 갓파였냐며 실제로는 처음 본다며 살짝 흥분하는 엘리트 리쿠의 좀 많이 순진한 사고와 반응은 그가 하천 부지 주민으로 살아갈 잠재 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을 일찍이 예상 가능하게 합니다.) 





계속해서 쓸쓸 버전의 말투를 유지한 채 한 가지 청이 있다는 촌장. 혹시 다음번에 자신과 같은 갓파 동료를 만나면 너무 놀라지 말아 달라며, 역시 조금은 서운하다며 시선을 45도 각도로 내리 깝니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코우(순진합니다)  


‘그래 맞아, 어떤 생물이든 존재를 부정당한다는 건 분명...’ 


‘서운할 거야..’ 



코우는 살짝 재수 없는 부분이 여기저기 있어서 그렇지 근본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에요.  


사실 촌장 캐릭터의 등장과 코우의 반응, 니노의 일침, 그리고 지금 코우의 반성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흐름은 사람을 다소 뜨끔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우선 니노의 대사에서는 아예 대놓고 촌장의 다른 점은 피부색 정도인데 이 때문에 주변에서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점을 언급하며 갓파 촌장은 비주얼로 보나 대사로 보나 그 자체로 사회의 소수자를 대변하는 캐릭터, 전형적인 선 밖의 인물 같죠. 장르가 개그이다 보니 헛웃음 나오는 대사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망설여지는 상황으로 잔뜩 포장되어 있지만 생각해 보아야 할 거리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에요. 정말이지 능청스러운 일침들이 아라카와 군데군데 포진해 있답니다.   


아무튼 모처럼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주춤해 있는 코우를 뒤로 한 채 돌아가려는 촌장. 서운함으로 무장한 듯한 등껍질을 보여주며 그가 뒤돌아선 그 순간, 그저 쓸쓸한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코우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지퍼였습니다. 정확히는..     


정확히는... 



정확히는 지퍼와 그 위에 올라와 있는 황인종의 목덜미였습니다.    


“어이, 이봐" 


… 


존중과 차별에 대한 반성과 전래 동화의 현실화에 대한 흥분은 풍선 바람 빠지듯 날아가고 코우의 얼굴에는 다시 짙은 그림자가 내려왔습니다.  


“너 그거, 입은 거지?” 

그러나 누가 봐도 신장개업 매장 앞 인형탈인 이 정체 모를 남성(아마)은 완고합니다(=뻔뻔합니다). 


“아니야, 갓파라서 이런 거야.  


신체적 결점을 지적하는 놈은 미움받아.” 


혼란과 짜증에 열이 오른 코우가 새된 소리를 내며 입바른 말을 해보지만, 


“당신, 속고 있어요. 저 녀석은 갓파가...”





“촌장은 갓파야.. 


내가 금성인인 것처럼 촌장은 확실히 

갓파야.”  





코우의 말 허리를 자르며 단호한 말투로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니노. 마치 신성한 법정의 판사님이 콩콩 때리는 미니 망치 같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결론지어진 거죠.  


“여기 사람들, 다 사차원이다!!!” 


이렇게요. 



“... 쳇" 


이견이 없을 결론 같아 보이지만 촌장은 불만인가 봅니다. 되도록이면 둥글게 살자 주의이지만 걸어온 싸움은 받아 준다며 친히 육지 위로 올라오시는 촌장. (코우는 경기를 일으키면 일으켰지 기세 좋게 싸움을 거는 타입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이 갓파, 당당히 전신을 드러내 버린 이 갓파, 본인이 인형탈을 뒤집어쓴 신체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는 진실을 확성기 대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가 봅니다.  


“안에 물 고였잖아!” 


갓파 안에 물이 고인 겁니다. 아무래도 입고 계신 그 슈트, 방수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상체는 쭈글쭈글해져서 달라붙었고 종아리 부근은 부풀어서 물풍선이 되었어요. 그러나 이 갓파, 계속해서 놀라우리 만큼 완고합니다(=뻔뻔합니다). 


“아니야, 이런 메커니즘인 몸이야.” 


그리고 갓파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당연히) 계속해서 부정하는 코우를 향해 날카로운 공격도 날려줍니다. 


“너도 인간의 탈을 쓴 박고지 주제에.... 


너 이런 말 들으면 완전히 부정할 수 있어?” 


*박고지: 여물기 전의 박을 말려 놓은 나물. 김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음. 그래서인지 단무지처럼 가공식품으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경우가 많음. 


날카롭죠? 하지만 코우는 야무진 목소리로 부정합니다. 


“할 수 있어! 난 어떻게 봐도 가공식품이 아니야!” 



“그래 맞아, 아무도 진실은 모르는 법이지. 슬프지만 말이야.” 



이래 봬도 이 사람들 진지한 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도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슬쩍 고민하게 됩니다. 이 촌장, 실은 무언가 중요한 핵심을 찌르고 있는 건가.. 슬쩍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촌장을 통해 자신의 이해력과 통찰력을 시험당하는 듯한 기분이 묘하게 들어요.   


아무튼, 계속해서 아무리 계속해 봤자 결론 따위 나지 않을 말싸움이 오갑니다. 인간이란 오로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존재 라지요, 마치 평행선처럼 말입니다. 물론 이 둘은 평행선도 아닌 세모와 동그라미인 것 같지만 뭐가 됐든, 지퍼에 천이 집혀 올리지를 못한다며 그쪽에 신경이 쏠려 버린 갓파로 인해 이 싸움은 일단락되는 듯싶었습니다. (낑낑대며 지퍼와 씨름하는 갓파의 모습을 보고 코우는 말합니다. 너, 숨길 생각 없지?!) 


그리고, 혼이 사라진 얼굴로 새 집에 쉬러 간다는 코우를 붙잡는 니노.  


“아직이야.” 


여태 조용히 있다 나서는 걸 보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벤트가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니노에게는 매번 한 방이 있었으니까요. 


“너 아직 이름이 없잖아.”   


개명의 시간이 왔습니다. 


코우의 성은 이치노미야, 이치노미야 코우. 이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코우. 하지만 이런 멀쩡해 보이는 이름 따위 다리 건너 감각이지 하천 부지에서는 쳐주지도 않습니다. 이곳 하천 부지에서는 촌장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센과 치히로인가요) 


“참고로 내 이름은 니노다.” 


작중 처음으로 남주인공에게 통성명을 하는 여주인공.(저는 편의상 니노의 이름을 먼저 밝혔지만 니노의 이름은 이 장면에서 처음 밝혀집니다.)  


상당히 독특한 네이밍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코우는 곧이어 경악합니다. 니노가 입고 있는 학교 트레이닝 복에 새겨진 2-3을 새삼 발견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 범상치 않은 촌장의 작명 센스가 드러나는데요, 


1. 우선 2-3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にのさん(니 노 산)입니다.  


2. 일본어에서 누군가를 존대할 때 쓰는 표현은 ‘이름+さん (상)’입니다. 한국어로 ‘~씨’와 같죠.  


3. 즉 2-3, 니노상에서 뒤에 상만 뺀 니노가 이름이 된 겁니다.  

(개인적으로 나름 기발하다고 느꼈습니다만)  


코우의 숨 넘어갈 듯한 반응과 달리 자신의 이름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 니노.  


코우도 상당히 요란스럽게 결심을 굳힙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듯 이곳에서는 생명의 은인이 따르는 하천 부지 법을 따르겠다고요.  


“잘 말했다. 이곳에서 살 각오는 되었구나.” 


라는 비장한 멘트를 던지며 근엄하게 작명 작업에 들어가는 촌장. 대략 0.1초가 흐른 후 코우가 하사 받은 이름은 바로, 



“명명! 


리쿠르트!” 


리쿠르트입니다. recruit을 일본어 발음대로 읽어보면 리쿠르트, 코우는 지금 와이셔츠에 넥타이에 정장 바지 차림입니다. 대기업 입사 시험 보는 청년의 전형 같아요. 뭐랄까, 참 한결같은 작명 센스입니다.  


*recruit : (신입 사원 등을) 모집하다, 구성하다/ (조직 기업 등의) 신 사원, 회원 등 



불평은 안 한다 했지만, 우리의 엘리트 씨가 이런 이름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죠. 하다 못해 일본식 이름을 달라며 징징대는 코우에게 자비로운 촌장님이 내려준 제2의 이름은 바로, 


“나이테이 토레타" 


*우리말로 ‘내정되었다'는 뜻. 


코우의 샐러리맨 스타일링이 상당히 인상 깊었나 봅니다, 갓파의 시선에서는 말이죠. 토레타라는 작명도 꽤나 만족스러운지 줄곧 쓸쓸 버전을 고수하던 목소리 톤마저 올라갔습니다. 니노도 좋아합니다. 일본어는 역시 확 와닿는 답니다. 


“리쿠르트로 부탁합니다.”  



코우의 단호한 한 마디.  


이렇게 저렇게 해서 드디어, 아라카와 하천 부지의 새로운 입주민, 대기업 후계자 겸 니노의 연인 리쿠(전 이치노미야 코우)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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