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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un Jul 15. 2022

독특한 사랑스러움,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 2

줄거리 소개 2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개구쟁이들에 의해 바지가 벗겨지고, 어느 날 갑자기 다리에서 떨어져 익사할 뻔한 것도 모자라, 어느 날 갑자기 빚을 지게 된 코우. 그것도 생명의 빚, 즉 지금 눈앞의 이 여성은 생명의 은인. 이렇게 해서, (본인 주장대로라면) 대략 3살 무렵부터 당당히 쌓아왔던 코우의 모든 영광스러운 지난날들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에서는 왕자를 구한 인어 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다지만.. 우리 아라카와 표 인어 공주는 스스로 물거품을 몰고 등장해 왕자를 구하고, 대신 그 왕자의 자긍심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뭐 이런 셈이죠. 

미안해, 먼저 사과해 두겠는데,, 나한테 빚졌어

잔뜩 물을 먹어 무거워진 바지를 주섬주섬 입으며 코우는 현 상황에 대한 충격으로 비틀거리고 그런 그를 말간 얼굴로 바라보며 니노가 묻습니다.  


“먹을래?” 

손에 쥔 건 물고기

아까 잠수했을 때(=코우를 구해줬을 때) 잡은 거라고 합니다. 목숨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물고기까지 잡아 주다니.. 코우는 단칼에 거절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예쁜 빛깔로 물든 제법 낭만적인 풍경의 갈대밭 한가운데, 쭈그리고 앉아서요. 


“젠장, 어떡하지.. 


생명의 은인이란 즉,,, 앞으로 내가  


케이크를 먹고 맛있다고 느껴도 이 여자의 덕분,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 자리에 앉아도 이 여자 덕분, 


앞으로의 내 인생 전부 다 이 여자 덕분,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 생명의 은인! 대체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는 은혜지?” 


이런 엘리트 씨의 무너짐도 모른 채 니노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코우를 걱정하며 이번에는 수건을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여담으로, 무언가를 줄 때 니노의 표정과 목소리는 굉장히 덤덤합니다. 온화한 무표정과 함께 그 은은한 목소리에 묘한 다정함이 묻어 나올 뿐입니다. 이게 뭔가, 몸의 긴장을 툭 풀어지게 만듭니다) 


이 와중에 수건을 가지러 집까지 간다는 니노의 말에 (당연히) 기함을 한 코우는 은혜 과부하에 걸려 상태가 나빠진 몸을 이끌고 그녀의 뒤를 따르는데, 


코우가 몸을 일으킨 그 순간 도착해버린 니노의 집. 


순간 이동이 아닙니다. 코우가 물고기 뱉어 낸 후 줄곧 쪼그리고 앉아 있던 그 노을 진 갈대밭 바로 옆이 니노의 집이었던 겁니다. 바로 아라카와 다리 밑. 그러니까 니노는, 코우가 엮이게 된 첫 번째 하천 부지 주민입니다.  

열고 들어갈 문도 없고 마치 공연 시작 전의 무대처럼 커다란 커튼만이 쳐져 있는 출입구. 단이 높은데 계단이 없어 대충 걸쳐 놓은 사다리. 코우 기준으로 이건 집이 아니고 공사장의 임시 컨테이너 창고만도 못한 그런 레벨. 그런 집의 커튼 사이로 열심히 수건을 찾는 니노를 보며 코우는 잠시 당황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머릿속 내가 제일 잘났어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하죠.  


‘그래,, 가난하구나.’ 


여자애 혼자 이런데 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과 함께 (누가 봐도 위험 따위 느껴본 적 없을 것 같은 여자애지만 지금의 코우에게 그건 포인트가 되지 않으므로) 번뜩이는 코우의 눈동자. 


‘이건 그야말로.. 빚을 갚을 찬스!’

 


엘리트라면 다가온 기회는 결단코 놓치지 않는 법.  

누가 보면 빚을 갚으려고 안달이 난 게 아니라 사기라도 쳐서 빚을 지우려고 안달이 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간드러진 언변으로 약장사 식 어필을 시작하는 코우. 마치 재봉틀 바늘 움직이듯 매끄럽고 빠른 말 속도입니다. (코우의 성우 카미야 히로시가 이런 또박또박 빠른 말투 연기를 매우 잘합니다.) 


“이런 집은 어려움이 참 많겠네요. 위치상 습한 데다 소음도 심할 거고 당신 같은 여자 혼자선 위험할 테니까요, (마치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약간 민망하다는 듯이) 그러고 보니 저 최근에 주식으로 돈을 좀 벌어서 (팔짱을 낀 채 한쪽 팔을 턱에 가져다 대며, 비즈니스맨스러운 포즈) 8억 정도 마음대로 쓸 수 있거든요. 괜찮으시면 당신을 위해 집을, 집을 선물해도 될까요?” 


대단한 계약 하나는 따낸 듯 씩- 올라가는 코우의 입고리. 


그리고.. 


“필요 없어.” 


… 

니노의 대답. 엘리트 씨의 8억짜리 어필을 미동도 않은 채 듣고 있던 니노의 대답입니다. 아주 간결하고, 단호합니다. 누구라도 당황스러울 반응이지만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상징인 난 놈 중의 난 놈 이치노미야 코우 씨에게는 도저히 도출 불가능한 결과였겠죠. 좀 전의 여유는 잃은 채 이런 집이면 춥지 않겠냐는 다소 유아적인 코우의 질문(=닦달) 에도 니노는 한결같은 말투로, 


“안 추워.” 


휘이- 


둘 사이에 바람이 불고, (코우의 마음에도 아마 시린 바람이 불어왔을 겁니다.) 


“아니, 추워요. 실제로 저 엄청 추운데" 


휘이-  


다시 한번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아, 하지만 그건 그거잖아. 넌 지구인이고 난 금성인이고” 


휘이- 


또다시 바람이 붑니다.  


“식사는요?” 


“강에서 잡아. 금성인 이니까.” 

불어오는 바람을 덤덤히 맞으며 앙 손은 호주머니에 무심히 찔러 넣은 채, 코우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는 니노.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은 금성 출신입니다. 


‘아야야야야! 사차원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남주인공은 곧 머리에 하얀 띠라도 둘러 매고 자리 깔고 누우셔야 할 것 같은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거의 발악을 해가며 보답을 하겠다는 코우에게 니노는 약간 짜증 섞인 듯한(드디어) 표정으로 묻습니다. 


“이 별에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람을 구하냐?”  


금성인에 대해 아는 바는 없다만, 분명 지구인스러운 질문은 아니죠. 니노의 질문에 멈칫하는 코우. 그리고 잠시 뒤, 안 그래도 안 좋았던 코우의 상태가 숨도 못 쉴 정도로 악화됩니다. 코우에게는 지병이 있었던 겁니다. 이치노미야 가문의 지병으로 빚을 지면 천식을 일으킨다고 하네요. 네, 그렇다고 합니다. 지켜보는 시청자와 니노의 표정이 어떻든 간에 코우 본인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제발 도와주게 해달라고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요.  


“너, 좀 편하게 살아.” 

니노가 말해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급기야 서 있지도 못해 무릎까지 꿇어버린 코우입니다. 그런 코우를 뒤로 한 채 부드러운 걸음으로 물가 쪽을 향하는 니노. 


“아, 원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건 아니야.” 


그 말에 순간 눈을 빛내며 니노를 올려다보는 코우, 그런 코우를 돌아보며 역시나 한결 같이 담담한 말투로 니노가 내뱉은 한 마디. 


“내가, 사랑을 하게 해주지 않을래?” 

노을빛으로 가득 찬 하늘 아래 투명한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강물, 그 조화로운 풍경을 배경 삼아 휘날리는 니노의 금빛 머리카락과 그녀의 깨끗하고 우아한 미소, 그리고 해당 작품의 정체성(개그 만화)을 일깨워 주는 듯한 코우의 떡 벌어진 입, 그리고, 


타인에게 빚을 지지 말 것 


“네" 

코우의 대답입니다. 이치노마야 가의 가훈은 절대적, 생명의 은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들어주어야 하는 법. 그러므로 코우는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금성인이라고 우기는 사차원이라고 해도 은혜는 은혜! 나는 이 여자와 사랑을 한다고요, 내일부터!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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