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주일 동안 나는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 때문에 거의 열흘 만에 글을 쓸 여유를 얻은 것 같다. 아마 며칠 후였으면 브런치 관계자로부터 틀림없이 글 독촉 메시지가 날아왔을 터이건만 때마침 오늘 조금의 여유를 찾는다.
이유는 지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기분 좋은 그림소재를 발견했고 온통 머릿속에 그림에 대한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구도와 스케치, 채색, 배경 색 선정, 마지막으로 제목 정하기까지 온통 그림과 함께 한 이 주간이었다.
오늘에 사 완성된 그림. 물론 완벽한 완성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그림을 멈출 수밖에 없으니 완성이라 표현했음을 독자분들께서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어느 날 발견한 낡은 사진 한 장이 나를 들뜨게 했고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었다. 97년 여름. 태어난 지 한 돌이 되기 전 늦둥이 막내를 비롯한 삼 남매의 사진이다. 그 사진 하나가 그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내내 옛 추억을 소환하며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 어느 그림을 그릴 때보다도 행복했다. 아마 인생 가운데 가정적으로 가장 행복한 시기라 하면 바로 이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이들이 태어나 이들에게 있어 엄마, 아빠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되었던 그 시절. 그때의 추억으로 따뜻했던 두 주간이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워낙 모두가 좋아했던 사진이라 그림을 시작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무척 흥미로워했었고 그림을 본 반응도 여러 가지다. 큰 애는 그때가 아홉 살 무렵이라 그래도 당시 상황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막내가 신고 있던 신발이 검정 고무신이었다나? (어렴풋이 당시 복고풍 유행으로 아이들에게 고무신을 사 주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둘 째는 왠지 자기는 실제모습과 별로 닮지 않은 것 같다며 약간은 섭섭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엄마가 그린 그림을 통해 보는 소감이 어떠할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현장에 나가 그리는 스케치도 좋고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그림에 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그림을 통해 까마득히 먼 옛날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니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 흑백으로 편집해서 보니 마치 먼 옛날 흑백 사진처럼 정겨운 느낌 >
그림의 제목을 정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소모되었다. 너무나 많은 제목들이 떠올랐기에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내가 아이들을 한꺼번에 부를 때 써먹던 별명 아닌 별명을 붙이기로 했다. 아이들 이름 끝 자만 하나씩을 떼어 붙여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 제목은 "97년 여름-내 사랑 택라민"
주변 지인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제목을 이야기하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 간에 세 아이의 이름 앞자리 맞추기 게임에 돌입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림 속의 그 시절, 그러니까 97년 여름 이들을 한꺼번에 부를 때 편의상 택라민이 아닌 떡.라.면. 으로 부르기도 했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저절로 비실비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림을 그리며 이토록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은 적은 아마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