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도도새)
여행을 하면 꼭 미술관을 꼭 가보려고 한다. 내가 몰랐던 미술품이나 작가 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강릉 여행에서도 강릉시립미술관에 들렸다. 강릉시립미술관은 고지대에 있어서 올라가는 내내 등산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강릉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립미술관에서는 마침 김선우 작가의 개인전이 전시되고 있었다.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인데 다행히 2시에 도착해서 2시에 시작하는 도슨트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설명을 듣는 사람이라서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도슨트님이 설명을 잘 해주셨고, 스토리텔링도 있어서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재밌게 이해할 수 있었다.
김선우 작가는 도도새로 작품을 전개하는 작가이다. 도도새는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에 존재했던 날지 못하는 새이다. 이새는 멸종되었다. 천적이 없는 편안한 섬생활에 적응하여 결국 날 수 없게 되었다. 결국엔 멸종에 이르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유하여 작업을 해나간다. 현실에 안주해 결국 몸의 일부가 퇴화되고 결국 멸종해 버린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두가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사회에 나와 적응해 나가면서 도도새와 같이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회사에 들어갔을 때, 획일화된 사회 시스템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달콤했지만, 언젠간 나도 복제인간처럼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아져야 한다고 느꼈다. 사회에 나오기 전 나는 문화와 생활방식이 많이 다른 해외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내가 사랑했던 작업들은 창작을 엄청나게 요구하고, 혼자 작업하는 공부이다. 그래서 귀국 후 사회 적응이 더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도도새는 편한 안 삷에 적응하여 멸종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멸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멸종되지 않으려면 방법은 환경에 대한 적응도 필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도새처럼 적응했다간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도도'란 스페인어로 바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마다 가르카르에 도착했을 때, 사람을 보고 도방 가지도 않는 도도새를 보고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도도새는 포르투갈 선원들의 신선한 식량이 되어주었다.
현대사회의 '도도'가 되지 않으려면, 도도새처럼 나 자신을 퇴화시켜 이사회에 맞춰 들어가는 역진화가 아닌, 이사회가 원하는 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진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온전히 나를 보전하면서(퇴화 하지 않으면서) 현대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도도새 와는 정반대의 진화 방법이다.
또한, 도도새처럼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한 생물이 진화를 거치는데 몇십 년, 몇백 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일생 동안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한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발휘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