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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가온해 Aug 13. 2024

소설 초안

1. 지구의 하루

 내 이름은 지구.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는 35살의 남성이다. 나는 요즘 이상한 변화를 느끼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무엇으로부터서 침공당하는 느낌이다. 물론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나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국가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주식이 폭락하고 암호화폐들이 폭락한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극적인 소식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 새벽에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 뿐이었다. 가게들의 불빛도 대부분 꺼져있었다. 하늘 위에는 달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생. 이것이 나의 신분이다. 나는 희미한 달을 보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나는 지금까지 일하고 있었던 알바생과 인수인계를 했다. 나와 그 사이에는 특별한 말이 오가지 않았다. 그저 수고하라는 말 뿐이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나는 지금 내 시간과 건강을 돈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만약 내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속으로 이런저런 불평을 하면서 일을 하다가도 편의점에 손님이 들어오면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손님이 나가면 다시 머리 속에서 잡생각이 들었다. 

 어떤 손님은 고급 자동차를 타고 애인과 함께 오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애인이 없는 30대 아저씨다. 내가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의 기준에서 나는 더 이상 실수를 용인 받을 수 있는 어린 나이가 아니다. 나는 매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순간의 실수가 최악의 경우를 불려오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았다.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뉴스들이 대부분이었다. 비극적인 뉴스들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 내게 현실로 온 문제들은 아니다. 

 그 순간 나는 편의점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동네 불량배들처럼 보였다. 일본 야쿠자 문신을 몸에 새긴 그들은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나는 일부러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게 다가와서 담배를 달라고 했다. 별 일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생긴 불안함이 왠지 치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게 담배를 달라고 하는 그들의 말의 억양이 나를 깔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참고 싶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는 결국 화가 치밀어올랐다.

 “꺼져.”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편의점 안에 물건들을 발로 차고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원래의 나였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내게는 용기가 생겼다. 나는 그들 무리 중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그리고 그 사람은 쓰러졌다. 다른 무리들은 내게 다가왔다. 나는 편의점 카운터 뒤에 있는 의자를 들어 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내가 승리했다.

 일이 너무 커진 것 같다. 그들은 심하게 다쳤다. 바닥 위에는 그들의 입 안에서 떨어진 치아들도 널려있었다. 아마 이제 경찰과 폭력조직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다. 경찰들도 무섭고 폭력조직원들도 무섭다. 일단 이 자리에 있으면 곧 경찰들이 찾아와서 나를 잡아가겠지. 

 나는 매장 포스기에 있는 돈을 챙겨서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이 곳의 일 따위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걸었다. 최대한 편의점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었다. 이제 계획이 필요하다. 이대로 자수를 하면 편할까.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심하게 다치게 했었기 때문에 분명 교도소를 가게 될 것이다.  

 다른 도시로 건너가고 싶지만 내게는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기에는 너무 위험이 클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훔쳐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마음을 먹고 이동수단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시동이 켜져있는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제법 비싸보이는 오토바이였다. 나는 주변을 한 번 살펴보고는 그대로 오토바이에 앉았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을 향해 운전했다.

 예상대로 서울로 가는 도로에는 경찰차들이 순찰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경찰들이 나를 수상히보지 않기를 바라며 시속 80키로로 운전했다. 몇몇 경찰들은 나를 쳐다보다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서울로 가는 도로 위는 더웠다. 벌써 8월이었다. 항상 똑같은 일상 속에서 나의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나는 35살의 아저씨가 되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상상처럼 멋있는 어른이 되지는 못했다. 그저 좀 더 교활해지고 못된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나는 악마일까. 아니면 그저 비열한 짐승일까. 

뭐가 되었던 간에 나는 이제 도주자 신세이다. 서울로 가면서 나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무척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아래 건너가는 구름들. 

 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서울 외곽으로 들어왔다. 도심 깊숙하게 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았다. 나는 오토바이를 사람들이 찾지 못하게 구석에 숨기고는 걸었다. 그리고 허름한 여관을 발견했다. 낡은 여관이었다. 나는 여관에 들어가서 주인을 불렀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나타나서는 장기투숙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한 달 투숙하면 30만원이야.”

“좋아요.”

나는 바지 속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세었다. 50만원이 전부였다. 나는 여관 주인에게 30만원을 건넸다. 앞으로 한 달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앞으로 이곳에서 노가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범죄는 저지르면 안된다. 그렇다면 금방 경찰에게 잡힐 것이다. 

 방세를 지불하고 나는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 갔다. 그곳에서 라면과 생수를 샀다. 여관으로 돌아와서 여관주인에게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었고, 허름하고 더러운 주방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주방에서 라면을 끓였다. 지금 내 상황은 예전과는 다르게 더 비참해지고 가난해졌지만 별로 마음에 동요는 없었다. 어쩌면 내 현실이 침공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이런 미래 때문이지 않았을까. 답답하고 의미없는 하루가 이렇게 변화할 거라는 걸 과거의 내가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걸까.

 라면이 익은 후 주방에 있는 더러운 식기들을 물로 한번 헹구고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그 때 내 옆방에 있는 사람이 주방으로 왔다. 그 사람은 폐인처럼 보였다. 뚱뚱하고 지저분하고 사회성도 없어보였다.

 “형씨 안녕. 여기에 있을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사실 강원도 춘천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문신을 한 불량배들을 심하게 폭행해서 도주 중이에요.”

나는 솔직하게 그에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내 일을 말하고 싶었다. 이 사람이라면 그래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선호야. 반갑다. 몇 살이니?”

“35살이에요.”

“나는 45살이야. 형이라고 불러.”

“그래요.”

 나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라면을 나눠먹었다. 동지애가 생긴 것 같았다. 선호형은 주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좀 더 많은 자본이 있었는데 많은 돈을 잃고서는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너는 이 시대의 히어로야.”

선호형은 갑자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리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이 띵했다. 내가 이 시대의 히어로라고?

 무미건조 하던 내 삶이 바뀐 것 같았다. 그 순간 느꼈다. 늘 감정의 변화가 적었던 내가 더 큰 감정들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고, 흑백 같던 세상이 화려해보였다.

 “내가 너를 도와줄게. 어차피 너는 지금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

선호형은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그럼 저는 무엇을 하면 되죠?”

“세상을 심판해. 악인들을 심판해. 그런다면 좀 더 정의로운 세상이 올거야.”

나도 모르게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드디어 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서 세상이 밝고 즐거워보였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선호형은 이런 나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형. 그런데 히어로는 무엇을 해야하죠?”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나쁜 사람들은 어디서 찾죠?”

“나는 항상 나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어. 너가 내 곁에 있다가 나쁜 사람들이 보이면 심판하면 돼.”

“좋아요!”

나는 어린 아이의 웃음처럼 기쁘게 웃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선호형의 옷을 빌려입었다. 나에게는 큰 사이즈의 옷들이었지만 그래도 입을 수는 있었다. 우리는 길을 걸었다. 밤하늘의 별은 매우 많았다.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다가 선호형이 손을 들어 한 여자를 가리키며 말을 했다.

“저기에 있는 여자를 봐바.”

“봤어요. 병원 계단에서 담배를 피는 여자가 보이네요.”

“어떤 느낌이 들어?”

“잘 모르겠어요.”

“내가 장담하는 데 저 여자는 악인이야. 심판해야해.”

 무게감. 나를 짖누르는 무게감. 이 시대의 히어로가 행해야 하는 행동의 무게감.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선호형은 그런 나를 말 없이 쳐다보았다. 

 일단 나는 선호형이 말한 여자 곁으로 계단을 올라 걸어갔다. 그리고 그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가 악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악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밀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코에서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도망가자.”

선호형이 말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도망쳤다.

    2. 구치소

 며칠 뒤 나는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유치장에 가게 되었다. 선호형과는 미리 계획을 세웠다. 나는 이미 수배자 신세이니 선호형이 나를 계속 면회를 오고 영치금을 넣어주기로 했다. 경찰들에게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그들은 범행의 동기를 찾고 싶어했다. 내가 왜 문신을 한 불량배들을 폭행했는지. 내가 왜 처음보는 여자를 계단에서 밀었는지. 나는 그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선호형은 매일 나를 찾아왔다. 선호형과 만날 때면 위안이 드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구치소로 이송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재판장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정신질환이 있습니까?”

판사가 말했다.

“의료기록은 없으나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 옆에 앉은 국선변호사가 말했다. 국선변호사는 내게 정신질환을 주장하라고 했다. 그것만이 내가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신질환이 없다. 나는 이 시대의 히어로이다. 나는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다.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위하여 국립정신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판사가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말했다.

  3. 국립정신병원

 2주 뒤 나는 국립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구치소보다는 국립정신병원이 더 나아보였다. 이곳에는 침대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유가 억압되지 않았다. 그 동안 구치소에서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에는 10개의 침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내 침대였다. 그 동안 비워있었던 침대는 내 자리가 되었다. 

 “이제 방이 꽉 찼네.”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와서 나를 환영했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주고 받고 다른 룸메이트들이 자기 침대로 돌아갔을 때 끝까지 남아있던 키가 크고 뚱뚱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들어왔어?”

“폭행으로 들어왔어요.”

“반갑다. 나는 너랑 비슷해. 나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어.”

“대한민국에서는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알고 있어요.”

“나는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한국에 와서 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었어. 그러다가 길에서 만난 불량배에게 시비가 붙어서 폭행당하는 중에 더 이상 맞지 않으려고 가방에 있던 흉기를 꺼내서 찌르게 되었어.”

“우리나라는 정당방위가 없어요.”

“나도 알아. 하지만 변호사를 통해서 내가 미국에서 유학다녀왔기 때문에 법을 잘 몰랐다는 것을 호소하려고 해.”

“재판은 끝났나요?”

“1심에서 5년을 받았어. 2심을 준비하는 중이야.”

비록 내 앞에 있는 남자는 흉악범이지만 미국 유학 경력과 영어강사라는 직업이 있었다는 점에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나와 말이 통할 것 같았다. 우리는 통성명을 했고 나는 그를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형의 이름은 성규였다. 

 성규형은 항상 자기 침대에 누워서 영어로 된 책들을 읽었다. 성규형은 상당히 똑똑해보였다. 성규형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영어만 잘하고 다른 과목들은 못한다고 했다. 

 “성규형 나도 영어 배울 수 있을까요?”

나는 성규형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성규형은 내게 영어단어책을 건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해봐.”

“고마워요.”

그렇게 나는 영어단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국립정신병원은 식사도 잘 나왔다. 구치소에서 먹던 음식들과는 많이 차이가 났다. 항상 고기 반찬이 있었고, 뷔페식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국립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하루에 1시간씩 우리는 밖에 나가서 운동을 했다. 밝은 햇빛 아래 운동장을 뛰어다니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구치소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갇혀서 걷기만 했었는데 이곳은 넓어서 너무 좋았다.

 어느 날, 선호형에게서 편지가 왔다. 국립정신병원 간호사가 내게 편지를 줬다. 그리고 며칠 뒤면 내 담당 의사가 배정될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선호형의 편지는 항상 같았다. 내게 건강하게 지내라는 내용이었다. 그 날 나는 저녁에 선호형에게 답장을 썼다. 곧 면회를 와달라고 썼다. 

 며칠 뒤 나는 내 담당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여자의사였다. 그녀는 큰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피해자들을 왜 폭행했어요?”

내게 이렇게 묻는 그녀의 말에는 전혀 추궁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순간 충동이 들었어요.”

“제가 기소장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읽어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을 때렸네요.”

“맞아요.”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쾌락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쾌락이 사라진 후에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내 인생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재판은 어떻게 진행돼요?”

“아마도 1년에서 2년 정도 살게 될 것 같아요.”

“그럼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변호사가 심신미약 진단을 받으면 더 적게 징역을 받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많이 차이가 날까요?”

“저도 전문가는 아니라서 모르겠어요.”

 여자의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 속내를 모두 털어났다. 그녀는 나를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자의사와 상담이 끝난 후 나는 임상병리사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나는 간호사들이 안내해주는 대로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로 가서 나는 영어공부를 1시간 했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서 다른 재소자들과 탁구를 쳤다. 탁구를 30분 정도 치던 도중 간호사가 나를 찾았다. 그리고 임상병리사와 면담이 있다고 말을 하고는 나를 데리고 상담실로 갔다. 

 임상병리사는 마른 남자였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지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저는 당신의 정신상태를 알아볼거에요. 어릴 때 이야기부터 해볼래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될까요?”

“학교는 어디서 다니셨어요?”

“강원도 춘천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어요.”

“대학교는 안가셨어요?”

“네”

“피해자들을 왜 폭행하신 거에요?”

“순간 화가 났어요.”

“그 화를 조절못하신 건가요?”

“네.”

 간단한 면담을 하고 그는 내게 여러가지 문제지를 주며 테스트를 했다. 대부분 쉬웠다. 나는 빠른 시간 내에 테스트를 끝냈다. 테스트가 끝나고 그는 나갔다.

 그는 매일 나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매일 한 시간 정도 나는 테스트를 받았다. 수십일 동안의 면담과 테스트 후 임상병리사는 내게 정신분열증으로 판정날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들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한다. 낯선 사람들을 폭행한 댓가로 나는 도망을 다니고, 유치장을 가고, 구치소를 갔으며,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범죄에는 처벌이 따라야한다. 내가 지금 그것을 실감하고 있다. 구속이라는 처벌을 받고 있으니 너무 힘들었다. 매일 힘들었다. 만약 내가 다시 기회를 받는다면 다시는 폭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들 덕분에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어른이다. 그렇기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선호형은 내게 매일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이제 선호형이 말하는 이상에는 관심이 없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선호형이나 희생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선호형은 내 영치금이 300만원이 채워져있게 유지해줬다. 이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국립정신병원에 온지 한달이 되는 날, 나는 룸메이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재판 잘 받고 집행유예로 나가기를 바란다.”

영어강사 일을 했던 성규형이 내게 말했다.

 “형도 꼭 집행유예로 나가기를 바랄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성규형과 마지막 악수를 했다. 간호사들과 여자의사가 와서 내게 정신분열증 약을 주었다.

 “잘 챙겨먹어요.”

나는 그들의 호의에 감사함을 느꼈다. 의료진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 경비원에 의해 건물 밖으로 나가자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나를 구치소까지 호송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내 손에 수갑을 채웠다. 국립정신병원에서는 민간인이 된 것처럼 편했는데 나는 다시 재소자 신분이 되었다.

   4. 결말

  경찰들은 4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구치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 구치소에 가자 교도관들이 나를 인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5인실 방으로 갔다. 5인실 방에는 12명이 있었다. 너무 비좁았다. 하지만 내가 범죄를 저지른 탓에 받는 처우이기에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반갑다.”

새로 배정받은 방의 방장이 말을 했다. 구치소 방들은 각각 한 명의 방장이 있다. 방장들은 방의 운영을 책임진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모두들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피해자들은 재판장에 나와서 증인심문을 받으며 자신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 말했다. 문신불량배 한 명은 평생 손가락 두 개를 움직이지 못하고, 내가 병원 계단에서 밀친 여자는 얼굴뼈가 5개가 골절이 되고, 영구히 제거할 수 없는 2개의 철심을 박았다고 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숨이 막혀왔다. 나는 어떻게 될까. 너무 무서웠다. 증인들이 증언을 모두 한 후 검사가 말했다. 검사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징역 5년을 선고해주십시오.”

여자검사의 말은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이것이 나의 업보인가.

검사가 구형을 하자 판사가 말을 했다.

 “4주 뒤 오후 2시 30분에 선고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자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합의 조차 보지 못했다. 합의를 보지 않으면 구형 그대로 산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다. 법정에서 나와서 구치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나는 계속 울었다.

 구치소로 돌아오자 내 방의 재소자들이 내 구형량을 물어봤다. 나는 그들에게 5년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몇몇은 나름 유쾌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밥도 잘 먹지를 못했다. 하루만 갇혀있어도 지옥같은 이곳에서 5년을 살아야한다는 사실에 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4주가 지나고 나는 재판장으로 가게 되었다.

 재판장에 가기 위해 교도관들이 나를 방에서 꺼낸 후 수갑을 채우고 밧줄로 묶었다. 

“좋은 결과 나오기를 바란다.”

교도관들이 법정으로 향하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해줬다.

 여러 사람들이 차례대로 법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분 울상을 짓고 있었다.

 “피고인 지구.”

판사가 나를 호명했다. 그러자 교도관들이 내 손에 묶인 수갑을 풀어주고는 법정으로 나를 들여보냈다. 

 “피고인은 구속 기간 동안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으며 이 전에 어떠한 범죄전력도 없었던 점. 피고인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비록 합의는 하지 못했으나, 피고인이 앞으로 민사재판을 통해 책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점 등을 이유로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다. 다만 이 형의 집행을 3년간 미룬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법정에서 나와서 대기실에 들어가자 교도관들은 웃으면서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재판이 끝난 후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밧줄로 상체를 묶었다. 하지만 나는 수갑도 차지 않고 밧줄로 묶이지도 않았다. 구치소로 돌아가서 나는 석방되었다. 너무 행복했다. 판사님에게 고마웠고, 사회에 고마웠다. 내게 마지막 기회를 준 사회에 감사하며 앞으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구치소에 나오자 선호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호형은 고급 외제스포츠카를 타고 있었다. 선호형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그 동안 가난해보였던 선호형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명품 선글라스에 명품 옷을 입고 있었다.

 “축하해. 이제 어디로 갈거니?”

선호형이 물었다.

“춘천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런데 너가 때린 사람들이 너에게 복수하려 하지 않을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그냥 맞고서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내 말에 선호형이 큰소리로 웃었다. 

 “춘천까지 데려다줄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선호형의 자동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으로 가는 길은 맑았다. 밖은 더웠지만 자동차 창문들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서 시원했다. 그 동안의 일들이 값진 경험으로 남은 것 같다. 

 1시간 30분이 지나고 나는 춘천에 도착했다. 선호형은 내가 주거하는 원룸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선호형과 작별인사를 하고 원룸에서 나는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했다. 이제 나는 폭행 전과자가 되었고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선호형은 정체가 무엇일까. 나를 충동질해서 여자를 밀게 하고, 주식을 해서 많은 돈을 잃었다고는 말했지만 선호형은 고급 외제스포카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선호형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심심해서 역활극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용당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내 정신질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앞으로 꾸준히 약을 먹어서 사건사고를 예방할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선호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은 정체가 뭐에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30분 정도가 지난 후, 답장이 왔다.

[사실 나는 직업이 건물주야. 월세를 받고 있어. 삶이 너무 따분해서 가난한 사람 행세해보려고 낡은 여관에서 지내고 있었어.]

 내 예상이 맞았다. 약간 기만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신감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아마 선호형은 앞으로도 다른 장난감들을 만들어서 연극을 하겠지.

 나는 편의점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대신 문자를 보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너 때문에 너무 고생했다. 수고해라.]

 내일도 지구는 살아있다.

                     



2. 우주의 하루

 내 이름은 우주. 나는 35세의 여자이다. 나는 서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취업 대신 카페 창업을 선택한 나는 매일 12시간 정도 일을 한다. 비싼 임대료와 높은 인건비 때문에 항상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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