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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사

이제 조금 실감이 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그렇게 여러번의 이사를 했지만

남편은 한번도 이사를 함께 한 적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러니 신기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일단 결혼하고서는 시댁에서 1년 정도 살았었다.

집이 물론 큰 평수였다만(같이 살려고 큰 집을 유지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리 잘해주고 살림을 시어머님께서 주로 하셨다하더라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생활비도 드렸었다.

나는 남편 월급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때 이미 자기자산제를 활용한 것인지는 모른다만

그리고 알아서 주지도 않는데 달라고 이야기하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지나가는 개에게 던져주었을 알량한 자존심이다.


첫 번째 이사는 시댁에서 분가를 나오는 것이었고

남편은 분가하는게 싫었던 것인지

나중까지 꼭 함께 살겠다고 약속한 부모님께 민망해서인지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라면서 출근을 하고

나 혼자 이삿짐을 날랐었다.

배는 남산만큼 불러서 말이다.

물론 짐이 많지는 않았다.

아이 물건도 사지 않았을 때이니 말이다.

그렇게 혼자 이리저리 왔다갔다 애를 썼더니

한달이나 남아있던 출산 예정일인 아들 녀석을

다다음날 덜컥 출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초산인데 아이가 안나온다

예정일이 훌쩍 지났다 하시는 분들에게

이사만큼의 운동량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순전히 내 경험에 의한 것이다.


출산 후 나의 겁이 발동하여 도저히 휴직을 할 수 없었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또다시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시도했다

그때도 물론 남편은 출근을 했다.

요새처럼 연가를 희망대로 쓸 수 없던 시기이기도 했고

당시 대기업의 분위기가 살벌했었다는 이야기이지만 내막은 알 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육체노동에는 젬병인 사람이다.

그러다가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할때쯤

도저히 큰 길을 건너는 위험한 위치의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은 직장에 나가는 엄마 입장에서 불안하여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학교근접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그때도 남편대신 이제는 훌쩍 커서 대학생이 된

첫해 나의 제자들이 이사를 도와주고

짐을 풀러주고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해주고 함께 짜장면을 나누어먹기도 했었다.

그 날 제자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진짜 사부님은 안오시는군요.

이사 다하면 나타나신다는 말이 맞군요.>

내가 거짓말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MSG를 조금 섞을때는 있어도.

그리고는 그 아파트를 IMF 때 날려버리고는

(온전히 남편의 주식 투자 등의 이유이다. 나의 잘못은 1%도 없다.)

더더욱 집을 얻거나 이사를 하거나 할때는 철저하게 타인처럼 행동했다.

아마도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혼자서(아니다. 아들과 함께였다.)

집을 보러다니고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다 하고 나면 남편이 쓱하고 손님처럼 등장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고 싶을까?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빼고도 이해 불가한 일들은 많고도 많다.


이번 이사는 함께 할까 잠시 생각해봤으나

있어봤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신경쓰느라 방해만 되고

아픈 사람에게 이삿짐 나르는 공간에 있으면서

찬 공기와 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먼저 이야기한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산 공장에 며칠 있어야는데

그때 가려 한다고.

그래 그렇지. 이사를 같이 할 사람이 아니지.

건강할 때도 안했었는데 지금프기까지한데

무슨 이사에 보탬이 되겠나.

쿨하게 그러라 했다.

다 정리하고 나면 그때 아산에서 조치원으로 넘어오라고 말이다.

아마도 이틀이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늘상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다른데 가서 요새 이사는 이삿짐센터가 다 하는 거 아니냐고 이런 말이나 안했으면 참 좋겠다.

다음 생에는 꼭 다른 여자와 함께 살면서 혼자 이사를 다하는 그런 삶을 살기를 몰래 희망해본다.

이제 이사가 다가왔음을 이 글을 쓰면서 실감한다.

(그날 짜장면 대신 위 사진처럼 칼국수나 먹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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