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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무엇이든 마지막은 약간 슬프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내일은 아침 일곱시반 잠실역 출발 셔틀버스를 타고

강의와 회의까지 마치고는 다시

저녁 다섯시반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다.

내일이 이사 전날이지만 스케쥴상으로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예정이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 눈에 띄는 무엇인가는 참지못하고 하겠지만 기력이 따라줄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내 마음 속으로는 오늘이 이 집 서울 광진구에서 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오전에는 오래전에 예약해둔 부분 도배를 처리하고

(나이 지긋한 두분이 오셔서 버리려고 마음먹은 작은 사이즈의 TV와 하이췌어 두 개를 가지고 가시겠다해서 좋았다. 나에게는 필요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함이 남아있는 물건이어서 다행이다.)

다소 오래걸리고 썩 멋진 도배 솜씨는 아니지만

가격도 적당하니 현안 하나를 해결했다.

그 분들이 도배를 할 때 나는 창틀 중심으로

고양이 털 제거에 최선을 다했다.

생전 처음 들어가보는 아들 녀석방 작은 베란다 바닥 청소도 하고

그 옆에 완강기가 있는 비상대피시설 바닥도 물휴지로 닦고

도배가 끝나고서는 바닥에 남아있는

접착제의 흔적까지 지우고

이곳 저곳의 묵은때를 정리하는 부지런을 떨었더니

당이 확 떨어지고 에너지 준위가 바닥이다.


가스렌지도 부속까지 빼내고 다 닦고

가스렌지 후드도 비누칠해서 닦고

낡은 후라이팬과 그릇들도 버리고

이제 정말 최후의 것들만 남았다.

오늘 저녁은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 올려서

시래기 된장국과 먹으면

냉장고 털이도 얼추 마무리 될 예정이다.

남편은 내일 10시쯤 아산 공장으로 가기 위한 짐을 드디어 오늘 오후 정리하기 시작했고

아직 남편방과 남편이 사용하는 화장실 청소가 남았는데

화장실은 내일 퇴근 후 이리로 와준다는 아들 녀석에게 부탁해두었고

방은 할 수 없이 이사 당일 물건 나가면서 재빨리 청소를 하는 신공을 부려야 할 것 같다.

오늘 청소를 하렸더니 스트레스를 준다면서

나를 지나치게 깔끔떠는 사람 취급을 하는데

도대체 언제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바뀌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아니다. 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속도와 마인드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거의 조선시대 후기 몰락한 양반의 생각 스타일이다.

이러니 서로가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나름 어얼리어답터에 트랜드에 민감한 스타일이다.


이 글을 쓰는 거실 식탁 겸용 책상도 목요일이면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10년 썼으니 그럴만 하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일몰의 태양빛이 강렬하기만 해서

블라인드를 오랜만에 내려본다.

내가 해서 놓고 가는 블라인와 중문이 아깝기만 하다.

떼어가면 뭐 하랴? 사이즈가 안맞는다.

이사갈 집은

그저께 출입문 도어락을 바꾸었고

어제 부분 도배를 하고

오늘 가스를 설치했으며

내일 입주 청소와 블라인드 부착이 남아있고

이 모든 일을 하느라 막내동생 부부가 엄청 고생했다.

목요일 저녁에 만나서 맛난 것을 사야겠다.


그런데 날씨가 수상하다.

내일부터 영하 8도가 된다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목요일 오후 눈 예보가 슬며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음모론과 의심의 촉이 발동되는데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잘산다는 속설

위로의 말이라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내가 서울을 떠나는 것이 그리 슬퍼서

함께 울어주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방금 이 집에서 아니 서울에서 마지막 세탁기를 돌렸고

내 방 화장실 청소를 마쳤으며

이 집에서 아차산 뒤로 넘어가는 일몰을 조용히 지켜볼 예정이다.

무엇이 되었든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약간은 슬프다.

그 사이에 오랜만에 10시에서 14시까지 브런치에서 <남편과 이사> 글이 반짝 인기글이 되는 기쁨이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 눈에도 남편이 이상하기는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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