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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Jun 15.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54

여름 특식은 여름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이제 아무리 더위를 안 타는 내가 생각해도 찐 여름이다.

담벼락에 여름을 지키는 꽃 능소화도 피었고

(예전에는 6월에는 장미라고 했는데 이제 장미는 다 시들었다.)

올해 들어 첫 빙수, 수박, 망고 쥬스도 먹었고

이번 주에 처음으로 긴 바지가 아닌 바지를 입고 출근했고(물론 반바지는 아니다.)

퇴근 후 집에서 20여분 정도 좋아하지 않는 에어컨도 돌렸다.

이제 옷을 정리하고 반찬만 준비하면 나의 여름 준비는 끝날 듯 하다.


너무 더우면 식욕이 떨어졌었다.

통통했던 시절에도 그랬던 듯 한데 나이가 드니 그 증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르신들이 겨울보다 여름에 더 힘들어하신다는 말이 맞나보다.

그래서 갑자기 더워지면 밥에 물을 말아먹게 되곤 한다.

녹차 얼음물을 준비할 정도로 수준 높지는 않으니 그냥 얼음 동동 띠운 물이면 된다.

반찬으로는 오이지무침, 양념 깻잎, 멸치볶음이 딱이다.

김치 종류로는 열무김치, 고구마순 김치, 꼬들빼기 김치이다.

외식 메뉴로는 냉모밀, 물냉면, 보리굴비구이, 강된장쌈밥 순이다.

다른 사람들은 삼계탕을 손꼽을텐데 나는 이열치열은 잘 믿어지지 않더라.

과일로는 수박, 포도, 참외인데 1순위인 수박은 너무 커서 선뜻 사기가 그렇다.

이 여름 음식 랭킹 순위는 순전히 내 취향일 뿐 이론적인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아들 출장인 이번 주 집에서 먹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다.

불을 쓰면 집이 더워지는 것도 싫고

혼밥을 위해 내 정성을 쏟아 붓는 일도 힘들고 하니

가정주부로서의 진정한 나의 휴식기가 되는 셈이다.

어제 저녁은 1,000원짜리 애호박 하나 사서 1/3 잘라서

양파와 함께 달달 볶고 김가루 넣어서

냉장고에 남아있는 찬밥 하나 꺼내서 달달 볶아 먹었다.

계란을 넣을까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호박과 양파 본연의 단 맛을 느껴보고자 넣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어제 먹지 않은 계란과 야채 잔반 처리용 볶음밥과 사과 반쪽이다.

점심 약속이 있으니 조금만 간단하게 먹고 점심을 즐기는 것이 목표이고

점심과 그 이후 디저트 약속까지 있으니 저녁은 가볍게 지나가도 될 것 가다.


내일은 오랜만에 재래시장에 가서

꼬들꼬들한 할머니표 오이지도 몇 개 사고

거칠거칠 호박잎도 한단 사고

반찬집에서 작은 멸치 볶음도 사고(이상하게 내가 하는 멸치볶음은 매번 마음에 들지 않앟다.)

쌉싸름하지만 묘하게 입맛도는 고들빼기 김치도 조금 사야겠다.

아 참 학교 텃밭에서 가져온 깻잎 스무장 남짓은 어제 양념에 재어 두었다.

학교에 새로 심은 포도나무에 포도가 열리기 시작하고 있으니 맛볼 날을 기다리면 된다.

이제 음식에서도 찐 여름 나기가 시작되고 있다.

긴 여름동안 지치지 않는 것의 기본은 먹거리이다.


<이 글을 쓰고 오늘 아침 재래시장에 가서 오이지, 호박잎, 콩나물, 옥수수 삶은 것을 샀고  

꼬들빼기 김치는 없어서 고구마순으로 김치를 담갔으며

오이지무침과 호박잎 찌고 강된장 만들고 콩나물국 끓여서 식혀두는 중

1,000원에 7송이 바나나와 반 잘라놓은 맘모스빵과 슈크림빵까지 산 나는 먹거리도 레트로 열풍에 빠진걸까.

닷새간 출장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아들은 내일 다시 출장을 가는데 음식은 왜 이리 많이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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