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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Jun 24. 2024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50

프레파라트 잘 만드는 편법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2학년은 식물과 에너지 단원에 들어가게 된다.

생명과학 부분의 수업이다.

생명과학 부분은 학생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영역이다.

왜냐면 생활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들을, 적어도 한번쯤은 봤던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3학년 한 학생이 이야기했다.

"도대체 중력가속도, 위치에너지, 진공속에서의 운동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왜 배워야 하는지 도대체 알수 없다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면 물리학 내용 중 역학 부분은 사실

알 필요도 별로 못느끼고 내용을 상상하기에도 쉽지 않다.

그러나 생명과학 부분은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우리 삶과의 연관성 부분에 있어서는 물리학 부분보다는 쉽게 머리가 끄덕여지는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생명과학에 대한 수업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현미경 관찰을 시작했는데

이번 주 수요일에는 프레파라트를 개인별로 만들어보고 관찰하는 시간이다.

프레파라트를 만드는데는 세심한 손 기술이 필요하다.

잘못 만들면 지문이 왕창 묻거나 기포가 많이 들어가거나하여 관찰 주체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관찰하고자 하는 샘플을 얇게 면도날 칼로 떼어서 슬라이드 글라스에 올려두고

물 한 방울이나 염색약 한 방울을 넣고 커버글라스를 덮어준 후 

주변의 물이나 염색약을 닦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나

나는 중학생의 수준에 맞는 편법을 사용한다.

무색 매니큐어와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하는 것이다.

관찰하고자 하는 샘플에 무색 매티큐어를 얇게 펴 바른 후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1분 정도 눌러주었다가 한번에 훅 떼어서

스카치테이프째 그대로 슬라이드 글라스에 붙여주는 방법이다.

마치 피부에 많은 털을 제거하는 방법처럼 말이다.

이 방법으로 하면 면도날 칼을 사용하지 않아서 손이 베일 염려가 없고

(생각보다 안 해본 작업이라 손을 많이 베여서 본의 아니게 혈액 관찰의 기회가 생긴다.)

스카치테이프의 힘으로 얇은 샘플이 쉽게 만들어지며

(보통 너무 두껍게 샘플을 만들어서 세포가 여러겹 겹쳐지니 관찰이 어려워진다.)

커버글라스를 덮지 않으니 얇은 유리가 깨질 염려가 없다.

(이 경우의 깨진 유리가 제일 위험하다. 내가 다쳐봤다.)

중요한 전문가 그룹의 연구가 아닌 만큼 이런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 안될 것은 없다.

물론 정석적인 방법에 대한 안내는 한다.

왜 이렇게 바꾸어서 하는지도 설명해준다.


그리고는 무엇보다도 먼저 식물의 위대한 힘에 대해 알려주려 한다.

위 사진처럼 물에 꽂아둔 방울 토마토 줄기에서 흰 뿌리가 나고 토마토가 열리는 것과

요즈음 해가 지면 피는 분꽃과 달맞이꽃의 특성과(요즈음은 낮에 피는 낮달맞이꽃이 더 많지만)

빛의 양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지고 꽃이 피는 방향이 달라지는 그 오묘한 위대함에 대해 알려주려 한다.

굴광성과 주광성이라는 용어는 몰라도 된다.

식물의 생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인이 햇빛과 물, 공기임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식물도 우리와 같은 생물임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중임을 알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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