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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Nov 06. 2024

서울 골목 투어 스물 일곱번째

애매모호함과 확실함의 사소한 차이

이틀간의 중간고사를 마치고 오늘은 남산에서 학년별 자율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어떤 체험을 하게 해줄까 고민 고민하다가

지난번 생태연수를 내가 미리 체험해봤고

그날 강사님을 필두로 각 학급별 숲해설가 4명을 섭외했다.

시험 후 스트레스를 날리는데 도움이 되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으며

남산 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생태게임 위주로 활동을 구성해달라는 어려운 부탁을 드렸었다.

10시부터 활동 시작인데 야외를 움직이면서 하는 활동이라

늦게 오는 사람은 낙오이고 나와 함께 남산 계단을 뛰어야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었더니

다행히 제 시간 안에 모두 모였다.

딱 한 명 늦게 온 학생은 나와 1:1 개인 상담을 하는 시간을 본의아니게 갖게 되었고

나는 생각보다 어려운 환경의 그 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봐야 겠다는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았다.

담임 선생님과 복지 선생님, 상담 선생님과 내일 의논을 해봐야겠다.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 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으나 생각보다 괜찮았고

바닥에 널린 낙엽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생태게임을 진행하면서 식물과 그리고 친구들과 친해지는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남산에서 찍은 멋진 사진들은 띵커벨에 모아서 서로 공유하고 우수작은 간단한 시상을 하려 한다.


이어서 남산에 있는 과학체험관, 수학체험관을 관람하고

플라네테리움에서 계절별 별자리 여행을 시뮬레이션으로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 시간 정도 야외활동을 한 후라 편한 의자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깜깜한 상태에서 가상현실상의 천구상의 별자리 이동을 살펴보면

저절로 졸릴게 뻔하지만 그래도 일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일 수도 있으니 시도해보았다.

나는 학생들과의 체험활동을 준비할 때 항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학생들은 개인차는 있었지만(모두가 다 좋아하고 잘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없다.)

과학관 전시물을 적극적으로 체험해보기도 하고

곳곳의 퀴즈 문제를 풀어보기도 하고

나에게 생태 활동한 낙엽하나를 살며시 쥐어주기도 하고

각각의 방식으로 즐거워하면서 2시간의 활동을 끝냈다.

남산을 올라오고 내려갈때는 학교 주변에서 탈 수 있는 남산순환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만이 올라다닐 수 있는 남산순환도로 옆 경치를 천천이 살펴보는 경험 또한 처음이었을 것이다.

다소 아쉬운 점은 단풍이 완전히 들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활동을 마치고는 조퇴 처리를 하고 오랜만에 근처에 사는 발령동기 교사 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산 도서관 앞에서 숨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후암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내려오게 된다.

보통 남산을 갈때는 서울역에서 걸어올라가거나 충무로역에서 걸어올라가는 길을 택하곤 했었다.

어느쪽이든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는 길은 꽤 힘든데 내려오는 길은 룰루랄라 휘파람이 나온다.

남산에서 후암동으로 내려와 용산고를 거쳐서 숙대입구역으로 가거나

남산에서 해방촌으로 내려와 이태원쪽이나 한강진역쪽으로 가는 두 방향 길을 모두 좋아한다.

나름 유명한 시장도 있고 자그마한 카페들과 맛집과 핫플이라 구경나온 사람들도 많다.


오늘은 후암동 근처 사는 사람들만 아는 맛집인 점심 백반 한 가지만 하는 할머니 오마카세집으로 갔다.

(나이가 드니 이런 노포 스타일의 식당이 슬며시 좋아지더라.)

옛날식 구옥에(후암동에는 일제시대 적산가옥들이 아직도 꽤 남아있다)

입구는 비좁아 신발을 가지런히 놓을 곳도 없고(정리할 사람은 물론 없)

할머니 한 분과 따님 한 분이 일을 다하느라 15분 정도는 기다려야했지만( 그 사이 포르투칼 여행기를 들었다)

10가지가 넘는 반찬은 모두가 정갈하고 간이 적당했고 양도 적당했고

메인 메뉴인 고등어구이는 비린내 하나 없이 적당하게 바싹 잘 구워졌고

시래기와 배추와 늙은 호박이 들어간 된장국은 시원 칼칼했다.

후암 시장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을 돌아 돌아가서 다시 찾아가라하면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방문의사 완전 있다.

디저트로는 진한 생강편이 밑에 깔리고 대추와 잣이 동동 떠있는 따뜻한 차 한잔까지 마셨다.

동기 부부와 헤어져서 천천이 산책을 하면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동안 길도 좋고 나무도 좋고 아직도 보이는 남산타워뷰는 너무도 좋았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특급호텔의 피자와 스파게티가 슬며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가격은 오늘 점심이 1/10 수준도 안되지만

감칠맛은 거의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의 온도차 때문이려나?

눈에 안대를 쓰고 음식맛만 보았다면 오늘 음식이 미세하게 이길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흑백요리사>를 몇번 봤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서일까?

아니면 한식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 나의 입맛을 저격한것일까?

파김치를 잘라놓지않아 한번에 먹기에 힘들었던것 빼고는 좋았다.

여하튼 많이 춥지 않았던 오늘 날씨에 또 감사하면서

골목 투어인지, 수업 이야기인지, 먹거리 이야기인지 구분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오늘 글을 마무리한다.

산다는 것은 항상 애매모호하다.

확실한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급적 확실함을 추구하고자 한다.

모호함을 즐기거나 선호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자연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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