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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Nov 10. 2024

서울 골목 투어 스물 여덟번째

버텨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한달에 적어도 한번쯤은 아픈 동생을 보러 나선다.

보러나서기전에는 걱정반 근심반으로 보러나서는데

보고나면 다시 걱정반 근심반으로 가슴이 아프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동생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가족들 옆에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는 것은 형벌이다라는 생각이 짧은 시간에도 수 십번씩 오고가는 고행길이다.

그래도 안보고 오면 내 할 일을 다하지 않은 것 같은 마음과 걱정과 죄스러움이,

보고나면 안좋은 상태에 대한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이 며칠은 가게 되니(자주 안좋은 꿈을 꾸게 된다,)

이 마음을 다스리는데는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것이 최고이다.

어제는 한때 익숙했던 목동 7단지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3단지에 있는 동생을 보고(어제는 상태가 더 좋지 않아 보였다.)

정처없이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목동 아파트 7단지였다.


결혼해서 2년간의 시댁살이 후 아이를 출산하고는 이곳에 살았었다.

그때만 해도 신축 아파트였고 비어있는 곳이 많아서

골라서 전세를 들어가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도 집값이 현실적이지 않는 것이냐.

단지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곳에서의 시기는 가장 이뻤던 아들의 전성기였고 내 삶에서도 가장 걱정이 없었던 시기였는 듯 하다.

물론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와 늘상 잠이 부족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아들녀석의 재롱을 실컷 볼 수 있었던 행복한 곳이었다.

생애 90퍼센트의 효도를 다한다는 딱 그 시기였다.

나머지 10퍼센트는 이제 손자손녀로 그 몫이 다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아들 녀석이 다녔던 유치원도 그대로

아들 녀석 생애 첫 번째 여자 친구와 함께 사라져 애를 태웠던 피아노학원도 그대로

(같은 건물 한 층 위의 미술 학원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둘이 손을 꼭 잡고 앉아있었더랬다.)

내가 똑딱이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던 곳도 그대로

기름 냄새 가득 파마를 말던 상가 이층 미용실도 모두 그대로인데

세월은 훌쩍 흘렀고 나는 이제 많이 늙었다.


그리고는 한 참 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회복에 힘쓰던 그 시기에 다시 2년 정도 7단지에 살았었다.

아들은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던 때였고

나는 아픈 기색을 아들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으며

그때도 기력없고 심난한 마음은 산책으로 달랬었

길 건너 추어탕과 추어만두로 기력을 보충하곤 했다.

그러고보니 내 인생의 동반 운동은 산책이었음에 틀림없고

산을 오를만한 기력없는 관계로 주로 골목 투어를 했던 것이 오래전부터였다.

7단지 주변 산책을 마친 후 나는막내 동생 부부와 브런치와 수다를 떨고

백화점 지하에서 아들 녀석을 위한 샐러드를 하나 사는것으로( 집에서는 하기 힘든 무화과와 부라타 치즈가 듬뿍 들어간것으로다가)토요일 주요 일과를 마감하였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거닐면 쉽게 보지 못하던 식물들이 보인다.

자연과 세월이 준 생물다양성의 확인이다.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은 비슷비슷한 화단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꽃들이

오래되었고 가꾸지 않았지만(심지어는 버려진 곳이지만)

저절로 식물군이 형성된 곳에서 찾아진다.

큰 나무들 아래 자신의 존재를 살며시 그러내는 작은 꽃들이 그들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알아봐주지 않아도,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 그들이

지금 큰 병마를 버텨내고 있는 동생을 보는 듯 안스러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동생에게는 이마를 한 번 짚어봐주거나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 밖에는

저 작은 꽃에게는 최선을 다해서 사진을 찍어주고 파이팅이라고 속삭여주는 것 밖에는 말이다.

어제 나의 인스타그램 사진은

추워진 날씨에 콘크리트 위로 홀로 피어나서 흔들리고 있는 꽃 사진이고

그 아래 코멘트는 <버텨라> 였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 꽃에게도 아픈 동생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산책은 나에게 운동이자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행위이자 잊고 싶은 것들을 떨쳐버리는 수양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발가락 티눈만 심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늘은 또 어느 곳을 걷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게 될지 궁금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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