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도 중요한 약간의 차이
중요한 일들이 있는 다음 주를 생각하며
나름 패션에 관심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옷태가 나는 체형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천부적으로 색감이나 나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고르는 눈썰미는 있다고 생각해왔다.
비싸다고 좋은 옷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
나와 어울릴까 아닐까가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로망을 가지고 있는 옷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가을의 멋쟁이들이 주로 입는다는 바바리코트이다.
정확한 옷 종류의 명칭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릎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가을 색의 코트를 휘날리며 낙엽깔린 거리를 걸어다니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인지 2년에 한번쯤은 숨겨져있던 코트 본성이 튀어나와
지금까지의 실패를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는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사곤한다. 작년에 샀던 그 옷이 문제이다.
작년에도 두어 번, 올해도 두어 번 입어보았는데 입었던 날마다
어색하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불편했다.
그 날의 출근복장에 그런 생각이 들면 그 날 하루 수업이 효과적이지 않는다. 내 옷이 아닌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옷 길이의 문제인 듯 하다.
코트 형태의 옷은 기본적으로 키가 큰 사람에게 어울린다.(모든 옷이 다 그러하다만은)
키가 크지도 않은 내가 그런 형태의 옷을 입으면 긴 옷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무릎 위 2cm 길이를 넘어서서 더 긴 상의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고작 2~3cm 차이겠지만 옷에 있어서는 그 차이의 폭이 매우 중요하고 옷을 입는 사람에게는 민감하게 다가온다. 이제 확실히 코트에 대한 집착과 로망을 버려야겠다.
그러고보니 사소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중요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귀를 가리거나 드러내거나의 차이로 헤어스타일과 인상이 달라지고
바지길이로 발목이 살짝 보이냐 안보이냐에 따라 키도 크고 날씬하게 보이기도 하고
겉절이 김치가 조금 덜 익었냐 아니냐에 따라 칼국수집 맛집도 결정되고
수능 문제 한 문제를 더 맞추느냐 아니냐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게 되고...(이번 주에 수능이 치뤄진다.)
평소에는 42도로 유지되던 커뮤니티 사우나 온탕의 온도가 오늘 43도가 되니 뜨거움이 확 느껴졌었다.
이런 예로 본다면 사소한 차이가 대세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큰 차이는 말할것도 없지만 말이다.
요즈음 아들 녀석과 함께 보는 유일한 일본드라마가 있다. 응급구조 의학 관련 내용이다.
미국드라마가 막 들어오던 시절에 법의학관련 드라마를 열심히 본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예로 들만한 내용들도 있다.
드라마에서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직업 본능이 발동한다.
그런데 응급구조가 필요해서 출동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모두 사소한 실수나 방심 그리고 안일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치 내가 나에게 안어울리는 긴 코트를 다시 집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의 저질 체력을 잠시 잊어버리고는
다음 주 월, 화, 금에 중요한 약속을 잡는 어리석음에서 출발한다.
월요일은 명동에서 개인적인 만남이 있고
화요일은 교육청에서 회의 출장이 있으며
금요일은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과 마지막 천체 관측을 약속한 날이다.
수요일 오후와 수능날인 목요일에 푹 쉰다면 아프지 않고 잘 버틸수 있을려나 모르겠다.
아참 그리고 다음 주 일요일은 내 최애 방송인 <최강야구>의 올해 마지막 직관이 잠실에서 진행되는 날이다.
물론 티켓팅에 성공해야 하지만 이 날씨에 잠실 직관의 기빨림을 체력적으로 잘 버틸 수 있으려나 걱정이다.
그래도 잠실 직관은 내 생애 마지막일테니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티켓팅 성공도 사소한 약간의 차이(0.1초 정도?)의 손놀림으로 성공과 실패가 나누어진다.
이렇게 사소하고도 중요한 약간의 차이를 우리는 행운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운이 함께하는 일주일이 되기를 오늘 저녁 반쪽인 달에게 빌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