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능날이다.
이렇게 세상이 조용한가 싶게 고요하고 긴장된 아침이 지났다.
교사들은 수능 대박이라는 말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대박이라는 뜻은 로또 당첨 같은 곳에 어울리는 단어이다.
평소에 열심히 노력해서 시험을 잘 보는 것은 대박이 아니라 실력이다.
오지 선다형을 적극 활용하여 모르는 답을 찍어서 쏙쏙 맞추어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이
말 그대로 수능대박에 해당하는데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
한 두 문제 정도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수능대박이라는 단어보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지금은 아파서 누워만 있는 동생의 고등학교 입시 시험날이었다.
얼마전까지는 지금의 수능과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있었던 셈이다.
가뜩이나 몸이 약했던 동생을 데리고 시험 공부를 시키는 힘든 날들이 2주일 정도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시험 당일 아침 일찍 부모님과 동생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험장으로 향했고
학교를 안가도 되는 나는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있었다.
(아버지가 깨워서 늦잠을 잘 수가 없는것이 우리집 시스템이었다.)
그 전화벨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고요한 오늘 아침과 비슷했다.
심상치 않은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려서 받았더니 동생의 담임 선생님이시란다.
동생과 부모님이 타고 시험장으로 가던 버스가 교통사고가 났댄다.
맨 뒷촤석에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뒤에서 오던 버스가 앞 버스를 박았다고 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귀에서 멍멍 울려서 무슨 소리인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눈물이 먼저 나서 어느 병원인지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동생은 시험을 봐야한다는 일념으로 그 학교 보건실에서 따로 시험을 보고 있다고 했다.
시험을 안보면 고등학교 입시를 재수해야 되는 시스템이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 이후로 나는 울다가, 발을 동동거리다가, 이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기도하다가를 반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막막한 시간이 지나고 시험이 끝나고서야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동생은 머리를 부딪혀서 어지러움증을 호소했으나 링거를 맞으면서 보건실에서 시험을 보았고
어머니는 다행히 외상이 없어서 보건실 밖에서 대기하고 계셨다고했고
아버지는 사방에 찰과상이 있어서 외과에서 치료를 받고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동생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병원에 갔고 각종 검사를 끝내고 저녁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머리를 부딪힌 곳에 출혈 등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구역질등의 후유증으로 이틀 정도 집에서 쉬고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우리집에 찾아온 첫 번째 교통사고 였다.
그 뒤로는 자잘한 접촉사고뿐이었던것에 감사한다.
그날 평소에도 약속시간보다 삼십분쯤은 일찍 나가는 아버지의 습관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사고가 났고 그 후에 한참을 우왕좌왕했는데(지금처럼 119가 출동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제 시간에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발빠르게 보건실에서 시험을 보게 해준 것을 보면 그 시대였어도
시험일의 사고 대처 매뉴얼이 잘 작동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매뉴얼은 엄청 꼼꼼하게 준비되어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일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매뉴얼이 잘 가동되어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머리를 부딪힌 충격에서였을까 동생의 시험 성적이 평소보다 더 잘나온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오늘도 아마 시험장 입실까지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문닫기 1분전에 들어오는 수험생 사진이 더이상은 안실리기를 바란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혼비백산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지금은 그나마 휴대폰도 있고 응급의료 체계도 잡혀있지만 그래도 비상상황이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정신이 반쯤 나가고 나면 오히려 시험볼 때 집중력이 살아날 수도 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에 해당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 번 멘탈이 흔들렸는데 다시 바로잡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수능대박을 바라기보다는 평소에 하던대로 그리고 그만큼의 성적이 나왔다면 그것에 감사하면 된다.
수능점수가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 살아가는데에는 수능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좌절할 것도 슬퍼만할 것도 아니다.
아무리 이런 말을 해주어도 오늘은 속상할 많은 수험생들이 있을 것이다.
시험을 잘 본 학생들은 소수일 것이니 말이다.
모든 수험생들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오랜 시간 고생한 감독관님들과 수능 출제위원들에게도 오늘 하루는 길고 힘들었을 것이다.
조금은 특별한 날임에 틀림없지만 365일 중 하루이다.
내일은 다시 내일 할 일이 생긴다.
극T인 나의 생각이 어쩌면 조금의 위로가 될수도 있겠다 싶다.
특별한 날보다 특별하지 않은 날이 더 많고 더 소중한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