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스물 아홉번째
바뀌어진것과 바뀌지 않은 것들
어제는 교육청 회의 출장이 아홉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는 바람에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쓸 기력이 없었다.(혹시 기다리신 분들이 계셨을라나)
오늘은 수능 예비소집일이다.
중학생들에게 오늘은 왜 오전 수업만 하고, 내일은 학교에 안나오는 것일까라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각각이다.
우리가 학교에 나오면 시끄러워서 그런 것 같아요, 아침에 교통이 막혀서 그럴 거 아닐까요,
그러다가 알게 된다. 아하 선생님들이 시험감독으로 나가야 하는 것을...
나처럼 나이가 많거나 수험생 부모이거나 특별한 질병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사들은 대부분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된다.
오늘은 예비소집이므로 수험장 학교에 가서 유의사항 등을 전달받고
내일은 역할에 따라 엄청 일찍 출근을 완료하고 수험생 못지않게 정신을 차려서 시험 감독에 임해야 한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수험생도 학부모님들도 감독관님들도 모두 힘든 하루이다.
오늘 오전수업은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연극으로 진행하는 시간과
각종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연수를 운영하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곤드레밥, 차돌된장찌개, 더덕무침을 먹고(오랫만에 맛난 급식으로 기억된다.)
조퇴를 하고 오후에는 경복궁 근처 나들이에 나섰다.
지난번 창경궁에 이어서 궁투어를 하는 중인데 다음 차례는 덕수궁이나 운현궁일 예정이다.
예정대로 내년에 서울을 떠난다면 쉽게 볼 수 없으나 보고 싶어질 곳 중에 하나가 고궁들일 것 같았다.
오늘의 산책 코스 선택의 이유는
한때 나의 주된 산책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어서였고( 2016년부터 2년간 사직동에서 살았었다.)
내일부터 비가 오고 기온이 내려간다니 이 최상의 날씨를 즐기고 싶어서였다.(수능 추위 대신 수능 강수가 오는 모양이다. 안그래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떨리기 마련이다만...)
광화문 뒤편이지만 이곳의 공기는 느낌이 다르다.
서촌이라는 명칭으로 더 익숙한 사직동과 익선동 그 주변에는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항상 많은데
오늘은 노란 은행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
나도 그들 틈에서 사진을 틈틈이 찍었다. 그들과 다른점은 인물 사진이 아니라는 것뿐.
다들 내 맘과 똑같아서 마지막 가을을 즐기러 나온 것일게다.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경복궁에서 운좋게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오래된 아름드리 은행나무도 보고(여전히 압도적인 크기와 노란잎을 자랑한다)
경복궁 뒤편의 인왕산과 북한산도 눈에 담고는(올해 단풍은 아직도 절정이 아닌듯 하다만)
길을 건너 서촌 구석구석을 천천이 둘러보았다.
정동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때, 사직동에 살때 시간이 나면 걸었던 그때 그 산책 코스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에 포함되는 것도 같다.
그때는 아프셨지만 엄마와 아버지도 살아계셨고
아들에게 이쁜 여자친구도 있었고
첫 제자들과 다시 모임이 시작되었고
미래학교에서의 어렵지만 도전해볼만한 미션들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50대 초반으로 꽤 젊었었다.
서촌은 미술관과 갤러리 그리고 나름의 멋짐을 가지고 있는 카페와 맛집들이 줄 서 있는 곳이지만
7년전과는 업종이 바뀐 곳도, 건물 자체가 다시 리모델링된 곳도 많았다.
그 사이 코로나19라는 큰 산을 넘기에 모두가 벅찼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유행도 바뀌었을테니 지역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늘상 관광객들이 줄서 있던 친숙한 삼계탕집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다행이었고(오늘은 줄이 없더라.)
부산에서 맛나게 먹었던 미역국 전문점이 생겨서 신났고(정말 맛나는데 서울에서는 볼 수없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새 건물들에게 눈길을 주는 시간이 흥미로왔다.
나는 건축투어에도 꽤 관심이 있는 편이다.(중요한건 건축을 할 땅과 돈이 없다는 점일뿐)
아직도 관심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은 늙지 않았다는 나를 보여주고픈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 바뀐 것들과 바뀌지 않은 것들의 비율을 살펴보면 반반정도 되는 듯 하다.
바꾸는 것도 바뀌지 않은 것도 모두 고생했을것이다. 산다는게 모두 고행길임에 틀림없다.
경복궁과 고궁박물관을 돌고 서촌길을 천천이 돌고 마지막은 내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를 거쳐서
광화문역에서 귀가길에 올랐다.
그 사이 나의 취향과 딱맞는 단골 옷집에서 기모가 들어간 겨울바지를 하나 사고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다.)
비싸지만 김장 양념이 맛난 반찬 가게에서 다음 차시 도시농부반 동아리 활동때 사용할 김장속 양념을 예약하고(그것까지 아이들이 만들기는 많이 버겁다.)
아참 아까 조퇴하면서 학교 앞 치킨집에 들러 금요일 천체관측시 먹을 간식도 예약하였다.
9시 이후에 먹으면 1+1이라니 9시에 마치고 아이들과 치킨을 먹고 해산하면 되겠다.(날이 맑아야할텐데)
이렇게 산책 중에도 학교 일을 챙기는 본능이 있는 나의 직업 의식을 발휘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 산책의 기회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나는 추우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언제 그리 돌아다녔던가싶게 겨울잠 자는 곰스타일로 바뀐다. 추운게 제일 싫다.
오늘 하루 만보를 걸었는지 안걸었는지는
고질적인 티눈이 있는 발가락이 아파오는지 아닌지 느낌으로 저절로 알게 된다.
로또에 당첨되어 여유가 생긴다면 나는 주저없이 오늘 걸은 그 길목에 있는 작은 집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마음의 평안함을 주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