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처음이라 떨리고 긴장되는 버스킹 날이다.
어제 밴드반 단톡에 오늘 8시까지 와서 음악실의 악기를 나르고 준비하자고 공지는 올렸으나
몇 명이나 삼십분이나 일찍 등교할까 싶었다.
학생들이 교사보다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시대이다.
다양한 학원과 학원 숙제에 치인 삶이다.
그들의 방과후가 더 바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해야지 싶어서
시험문제 출제 정리를 하다가
8시 3분에 음악실 문을 열고 보니 와우..
15명 중 반 이상이 와서 벌써 공연 장소를 정리하고 있었다.
뭉클했다. 그래... 이거였다.
이렇게 이쁜 녀석들이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학교에 있었던 것이었다.
학교를 떠나고 싶을만큼 힘들었다가도
이런 이쁜 녀석들이 있어서 참고 다시 뛰고 했었던거다.
악기와 스피커를 나르고 세팅하고 각자 튜닝을 하고 맛보기로 한 곡을 맞춰보는 그 시간동안
다른 학생들은 흥미로운 눈길로 우리를 지켜보아주었다.
이런 바쁜 날은 시간이 잘도 간다.
점심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학생 식당으로 가서 밴드반 아그들을 먼저 배식받도록 했다.
빨리 먹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을 벌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마이크 상황을 점검해야했다.
방송반만을 믿으면 안된다.
기기라는 것은 중요한 행사일수록 안될 확률이 높다. 왜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역시나 마이크가 문제이지만 행사 시작을 늦출수는 없다.
5교시 시작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행사로 다른 수업에 지장을 주면 안된다. 나의 철칙이다. 모든 수업은 중요하다.
그럴때에 대비해서 떼창이라는 나의 준비가 있다.
시작만 한다면 연주는 밴드가 하지만
노래는 모두가 싱어가 되는 신비한 기적의 힘을 믿는다.
다행히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마이크도 되고
제 시간에 연주도 시작되었고
무사히 연주는 끝났고
많은 관람객들의 박수와호응에 힘입어
만족스러운 첫 버스킹이 되었다.
이번 버스킹은 사실 전지훈련을 가느라 학교 축제에 참가하지 못하는
1,2학년 야구부를 위한 사전 공연인셈이었다.
운동 선수를 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 학창생활에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것도 알지만
그리고 그런 노력이 모여서 실력이 되는것도 알지만
1년에 한번 하는 학교 축제를 같이 못 즐긴다는 아쉬움은 매우 클 것 같았다.
밴드 공연을 한번 보여주는 것이 나을 듯 하다는 나의 판단은 적중했고
야구부 아그들은 모두 공연 잘봤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밴드부에게도 또 하나의 멋진 경험이었을것이나
아직 축제때 한번의 공연이 더 남았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
잘했다는 칭찬과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럴 때가 나는 즐겁기 그지없다.
오후에는 겨울방학 대비 원데이 특강 방과후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AI 와 요리,스포츠가 제공되었다)
에그까나페 만들기 활동이 진행되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세태를 반영하듯 남학생 신청자가 더 많았다. 미래의 요섹남들이다.
살짝 들어가보니
오이 껍질을 서툴게 까고 잘게 잘게 썰고 있고,
햄도 잘게 잘게 썰고,
계란은 삶고 있었는데
과연 오늘 정해진 시간중에 다 끝나려나 싶었다.
그런데 퇴근 시간 바로 직전에 학생들이 한명 두명씩 올라오더니
수줍게 선생님들에게 만든 요리 작품을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가져갈 것에다 하나씩을 더 만든 모양이다.
나에게도 하나를 주고는(하트도 여러개 그려주었다) 빨리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 스토리에
자신을 태그하여 올려달라는 요청을 해서 못이기는 척 들어주었다.
내일 아침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될 것 같다.
예전처럼 가사실습을 하고 선생님들께 맛보기를 먼저 돌리는 그런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장난하지 않고 열심히 만든 것을 학생들이 잘 나누어먹는 것으로 만족인 현실이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는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고
그리고 선생님까지 생각해준다면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미션이 완수된 날이다.
매일 매일이 미션 도장깨기 중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을것이다.
(집에 돌아와보니 며칠 있다가 내려간 남편의 빈 자리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걱정도 많이 된다. 다른 병도 아니고 암이 아닌가? 항암제의 독함을 느끼고 있다. 입벌리려면 턱관절도 아프고 손발이 저리고 차갑다고 한다. 그 정도인게 다행인듯 싶지만 마음은 아프다.
일요일에 다시 올 때까지 방 환기도 시켜두고,
베갯잎과 시트도 깨끗이 빨아두고
소고기 무국과 콩나물국 준비도 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