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숫물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평소 나는 일할 사람이 필요하거나 일할 자리가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주거나
소개팅을 해주거나 특강을 구성하고 강사님을 섭외해주거나 하는 일을 즐겨했다.
요새는 이런 일들을 묶어서 HR(Human Resources) 라고 한다.
사람들의 효율적 관리나 적합한 인적관리를 의미한다.
필요한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추천하고(주로 기간제 교사나 실무사님이 었지만)
서로의 성향과 맞는 남녀를 소개해주고(실제로 성공률이 꽤 된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과학의 날이나 학교 행사일에 목적에 적합한 강사를 소개해주는 것 등도
넓은 의미의 HR에 포함된다고 스스로 확대해석하고 있다.
학교 담임이나 교과 선생님들도 나름의 HR이 필요하다.
학급 일을 성향에 맞게 배정하는 일이 그것이다.
물론 희망을 받기도 한다만 손을 들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마도 3월 첫 주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는데
회장, 부회장을 제외하고 중요한 것이 있다.
학급 출석부 관리(매우 중요하다. 이동 수업시 출석부를 챙기고 교과선생님이 사인을 하셨는지를 확인한다.)
디지털 기기 관리(학급의 컴퓨터와 전자 칠판 작동 및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요새는 디벗까지 있어서 책임이 막중하다.)
이 일을 위해서는 꼼꼼하고 성실하며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학생이 누군지를 재빨리 판단하여야만 한다.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스캔해야 한다.
매 수업 시간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일을 하는 학생에게는
많은 칭찬과 적절한 보상을 주어야 마땅하다.
나의 마지막 학교에는 야구 선수 학생들이 학급당 4~5명씩 있었다.
자주 원정 경기를 가거나 시합을 나가는 복잡한 일이 많아서 학급에서의 특별한 역할을 맡기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 같은 학급 구성원인데 아무 일도 맡기지 않는 것도 형평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고민 끝에 나는 야구부만의 특별한 미션을 부여했다.
비정기적으로 해도 되는 과학실 청소와 환경정리 업무이다.
시합이나 연습 등에 지장을 주지 않는 날.
과학 수업으로 늘 사용하는 3층 과학실 정리를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내가 매일 쓸고 닦는데 그날은 대청소의 날인셈이다.
특히 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어항 청소를 주로 했다.
어항 물 갈아주기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갈아 줄 물은 미리 하루 전에 받아서 소량의 소독약을 넣고 햇빛 비추는 곳에 놓아둔다.
먼저 금붕어들을 모두 소량의 물과 함께 비닐에 넣어서 이동시킨다.
그리고 무겁고 큰 유리 어항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벽면에는 이끼가 끼어있으니 깨끗한 솔로 이끼를 제거해준다.
해가 비치는 곳에 어항이 있으면 이끼가 마구 생긴다.(우리가 청소하다가 찾아낸 사실이다.)
그 이후 어항 쪽은 블라인드를 내려서 햇빛을 차단해준다.
이끼 제거가 끝나고 나면 어항을 들고 와서 어항의 연결 부위들을 잘 닦아준 후
전날 받아놓은 물과 함께 금붕어를 조심스럽게 옮겨준다.
이 작업은 힘이 필요하므로 야구부들에게 딱이었다. 그들의 전완근이 꼭 필요한 일이다.
그 미션은 야구부들에게 학급에 대한 소속감과 학급일에 배제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주었다.
청소의 그날 점심시간 3층 과학실은 그들의 세상이 된다.
각종 수다와 놀이와 노래와 춤과 지난 일들을 나에게 조잘조잘 풀어놓는다.
어쩌면 야구 선수 학생으로서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야구를 오랫동안 봐왔던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도 한다.
최고의 투수는 누구였냐? 최동원
최고의 타자는 누구였냐? 장효조
그들은 잘 모른다만.
그리고 금붕어의 일생에 대해서는 아마도 다른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쌓았을 것이다.
한 마리가 죽을때마다 같이 안타까워해주었다.
어항 청소가 끝나고 나면 나는 많은 격려와 함께 간식을 제공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야구와 금붕어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도 함께 했던
어항 청소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때 나와 함께 이 시간을 보냈던 녀석들은 이제 고등학교 야구선수가 되었고
고등학교 3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빠르면 3년 뒤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도 한다.
졸업할 때 약속했었다.
<최강야구> 프로그램에서 만나자고...
(고등학교 우승팀하고는 시합을 한다.
잘해서 우승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최강야구> 프로그램이 존속될지
요새 미궁에 빠져있다.
방송사와 프로덕션과의 힘겨루기중인가본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만 하다.
장 단장님. 힘내세요.
내가 슬프고 우울한 이유 중 한가지이다.
결코 정년퇴직을 해서 슬프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