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with 케이팝] 시(詩)는 노래가 되고 싶다
현대문학에서 시수업은 그래도 할 만합니다. 난해하지 않고 간결한 시는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임하니까요. 그래도 케이팝 하나가 있으면 더욱더 분위기가 살아나고 즐거운 수업으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정호승의 이별 노래를 이동원의 노래와 함께합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 정호승, ‘이별 노래’
문학교과서(좋은책 신사고)에 실려 있는 정호승의 ‘이별 노래’이다.
정호승의 시는 이동원이 부른 이 ‘이별 노래’를 비롯하여,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에 이르기까지 노래가 된 게 많다. 대중음악, 가곡, 동요, 합창곡까지 합치면 60곡이 넘는다. 김소월 다음으로 많은 시인이다.
이별의 노래이자 사랑의 노래
이 시는 사랑하는 ‘그대’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헤어지더라도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노래하고 있다. 고려가요 ‘가시리’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는 주제 의식, 가치관, 그리고 표현 형식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화자의 시적 상황을 보면, 이별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별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려서인지 임을 잡거나 애원하지 않는다. 이미 소용없다는 걸 아는 걸까? 체념의 심정이다. 단지 바라는 것은, 떠나는 그대가 조금만 늦게 떠나 주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만 늦게 떠나 준다면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에 늦지 않는다고”
참, 어이가 없다. 이 말도 안 되는 역설이 갖는 애절함이란, 이 말도 안 되는 비문(非文)이 갖는 간절함이란, 바로 사랑의 깊이요 무게이다. 차라리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것보다 사랑의 깊이나 무게가 몇십 배 몇백 배 더할 것이다. 이거 이론적으로는 설명 불가요 이해 불가이다. 심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도 불가항력일 수밖에. 아, 여고생들에게 이 사랑을 어떻게 말해주나?
그다음을 보면, 화자는 ‘그대’가 떠나는 곳으로 먼저 가서 떠나가는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겠다고 말한다. ‘노을’이 비유하는 게 뭘까? 이건 바로 ‘그대’를 향한 희생적인 사랑이다. ‘진달래꽃’에서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려주겠다고 했는데, 이건 뭐 그 이상(以上)이라 해도 할 말 없겠다. ‘그대’가 떠나는 곳으로 자신도 함께 간다. 그 이유는 ‘그대’를 위한 헌신 때문이다. 도대체 어느 임께서 떠날 수 있으리오? 세상에 그 누가 매정하게 가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어서 화자는 떠나는 임을 위해 ‘별’이 또 되겠다고 말한다. 혹 힘겨워할까 봐 ‘그대’를 위로하는 밤하늘의 별 같은 존재가 되겠다고 하니, 이 바보 같은 사랑, 더 이상 뭘 말하리오?
마지막에선 수미상관법을 이용하여 1연을 반복하는데, 사실 이건 반복이 아니라 부정이다. 임과의 이별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별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이별 노래가 아니라 사랑 노래이다.
그래서일까? 가수 이동원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별 노래가 사랑 노래로 들린다. 이동원 특유의 음색 덕분이다. 얼마 전에 들었던 그의 노래가 이제는 영영 세상과의 이별 노래가 되어버렸다.
사족이지만, 궁금하다. 과연 ‘그대’가 떠났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늦게 떠났을까? 분명한 것은 시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 분명한 것은 시는 이해하면 괜스레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슬퍼진다. 그래서, 그냥 가슴에 와닿게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버즈가 노래했던가?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고.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한다고 하는 너
Oh 못난 내 사랑아 고작 이것밖에 못 하겠니
내 눈물들이 내게 따지듯이
내겐 너를 사랑할 자격도 없다 해도
언젠간 꼭 맘에 드는 근사한 선물을 할 게 조금만 참아줘’
시도 마찬가지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