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올여름, 진상 할머니 때문에 제대로 홍역을 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센터를 다닌 지 오래된 블랙리스트 회원님이었고, 매번 재등록 시즌 때마다 정신적으로 시달리게 하는 분이었다
반말에 몸 툭툭 치는 것은 기본패치.
안 되는 거 해달라고 역정 내는 건 기본.
매번 말씀드렸던 것과 다르게 왜곡하기에,
오해 방지 겸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말씀드린 답변은 정리해서 한번 더 메시지로 보내곤 했다
최근 재등록 시즌에는 무턱대고 찾아와서는 만료된 지 한참 지난 회원권을 다시 살려달라고 했고, 기간도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달라고 조르는 등 원하는 대로 안 해주면 신고하겠다며 언성을 높이고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안 하여 대표와 상의하에 전액 환불해 드렸던 일이 있었다
그걸로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여기저기 내 험담을 하고 다녔으며, 센터에 해코지한다는 둥 전혀 영양가 없는 협박임을 알면서도 고객이라는 이름하에 속 시원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억울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
이후 또 다른 진상들이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힐까 봐 두렵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내가 왜 그 모지리 하나 때문에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입어야 하나 싶어 애써 스스로 진정시키곤 했다
며칠간 할머니들만 오면 경기가 일으켜졌다
여느 날 평소와 같이 출근하여 센터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콜백을 해보니 할머님이셔서 갑자기 등골이 서늘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방문상담 예약을 잡아드렸고 그분은 예약시간보다 많이 일찍 온 탓에 잠시 화장실 다녀온 나를 기다리며 상담테이블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더니 전혀 개의치 않아 하시며 괜찮다고 했다
회원권 안내도 잘 들어주었고 궁금한 부분은 질문도 하며 서로 대화가 잘 이루어졌다
상담이 마무리되어 이내 자리를 일어나며 할머니 고객님께서는 나에게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두 번이나!
젠장. 이 말은 내가 평생 말해보기만 했지 받아본 적이 없는 말인데..!
가뜩이나 교양 있는 할머님이 흰색 옷을 입고 이 말을 거듭하는 데 더욱이 천사같이 빛나보였다
나는 90도 인사와 함께 "방문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마음속으로는 "당신 같은 분이 계시기에 잠시나마 암담하게 바라봤던 세상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같은 장소에서의 똑같은 나
하지만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모습과 태도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며칠간 매너 없는 사람에게 상처 입었던 내 마음을 마치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위로해 주라고 보낸 것만 같다
오늘 처음 본 누군가의 친절함에 난 왜 눈물이 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