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옆지기가 유튜브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번 추석 연휴는 길었다. 달력의 붉은 숫자는 자그마치 7개. 앞 뒤로 개천절과 한글날을 낀 추석 연휴는 말 그대로 휴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냥 교대 근무일이었다. 어차피 빨간 날이라고 노는 직장이 아닌지라.
타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딸이 추석 연휴라 집에 왔다. 4학년이라 수업도 몇 개 없고, 추석 후의 중간고사도 한 과목만 보면 된다고 여유가 있다. 개천절부터 시작하여 11일을 쉰다. 월요일에 수업이 없어 아주 여유 있게 쉬고 있다. 반면 작년에 제대하고 올해 복학한 둘째 아들은 추석 연휴 끝나면 시험이라 여유가 없어야 하는데도 여유가 있다. 공부를 안 하니 여유가 많을 수밖에.
긴 연휴에도 불구하고 추석전날과 추석날 근무를 했다. 그리고 추석 다음날이 휴일이라 오일장을 갔다.
딸이 오일장 옥수수를 먹고 싶다 하니 옆지기가 추석부터 장날을 기다렸다. 딸은 오일장에서 파는 옥수수가 제일 맛있다 한다. 음식 솜씨 없는 엄마를 둔 입맛이라 파는 게 맛있겠지, 쩝.
3년 전 봄, 상추 모종을 사러 오일장에 다녀온 것을 마지막으로 오일장 방문이 처음이다. 3년 만에 가는 오일장은 낯설지 않으면서 낯설었다. 익숙한 장터 구조에 익숙한 간판들. 자주 가던 튀김집, 자주 들렀던 반찬가게, 오천원하던 슬리퍼를 한 켤레 구입하여 여름 내내 잘 신고 다녔던 신발가게. 그렇게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가게들이 즐비하였지만 추석 연휴라 텅 빈 매대만 덩그러니 놓인 반찬가게 앞을 지날 때는 낯설었다. 그리고 늙어서 호기심이 없어진 나 자신과 배 고픔과 상관없이 이것저것 먹던 딸과 옆지기가 배 고프지 않다며 국수를 마다하는 그들의 태도가 낯설었다.
오일장을 방문하지 않았던 3년 동안 오일장이 변한 것은 아닐진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변해서 일 텐데, 나는 장이 낯설다고 한다. 싱싱한 채소판매대를 지나치지 않았던 내가 "저거, 지금은 싱싱해도 냉장고에 한 3일 이상 있으면 시들해져."라고 말하는 내가 새롭다. 예전처럼 다섯 식구가 아닌 셋만 지내는 생활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큰 아들, 작은 아들, 딸까지 북적였는데 이제는 말없는 작은아들만 남아 조용하다. 토요일 오후면 식구 셋 다 있어도 각자의 방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우리 집의 풍경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렇게 연휴가 길거나 방학 때, 딸이 와야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생기고 어딘가를 같이 가기도 한다.
얼마 전, 옆지기가 유튜브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성별에 상관없이 60대 노인에게 제일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뭘까?'
'돈?'이라는 내 대답에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건, 바로... 딸'이라는 옆지기의 말에 '아~!'라는 감탄이 나왔다.
여자나 남자나 상관없이 60대 노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돈도, 직장도, 배우자도 아니고 바로 "딸"이란다.
딸이 없는 60대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맞는 말 같다. 말없는 아들과는 밥때가 되어도 얼굴 볼 수 없다. 현관에 벗어 놓은 신발을 보고서야 아들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딸은 불쑥 들어와 옆자리를 꿰차고 이런저런 이야기에 TV도 같이 본다. 딸이 없다면 절대로 보지 않을 남자 아이돌 그룹의 영상을 말없이 같이 지켜보던 옆지기를 보면서 60대에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딸"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한 마디 말없이 하루를 보내고 입냄새 나는 저녁을 몇 개월 지내다 딸이 오면 이것저것 할 말이 많아진다. 자랑할 것과 보여 줄 것들이 즐비하다. 딸이 없을 때 사들인 옷가지들, 물품들, 취미를 위해 준비한 소품들, 다꾸 재료들 그리고 그동안 꾸몄던 다이어리 등을 보여주며 호응을 기대한다. 그렇게 딸이 오면 나도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출근할 때 손 흔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 늘었다.
60이 되면 집에서던 밖에서던 말 걸어주는 사람이 줄어든다. 그래서 60대는 차츰 인간관계가 멀어지고 말 수가 줄어들어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평소 혼자 지내길 좋아하는 나 조차도 가끔 말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왠지 서글프다. 그런데 딸은 말 걸어주고 이야기 들어준다. 심지어 같이 하자고 강요하는 것이 싫지 않다. 딸의 소중함은 타 지역으로 진학하여 부재하는 시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계속 같이 지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을 것이다.
"60대 노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바로 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진실인 것 마냥 느껴지는 것은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고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우리 60대들의 현실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말 걸어주는 자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딸이 아니라도 딸처럼 말 걸어주고 같이 TV 볼 수 있는 아들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아들 많은 집은 딸 같은 아들이 있다. 그런 아들이라면 딸에서 느끼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자식이 있다면 60대도 외롭지 않으리라. 떨어져 살아도 간간히 전화해서 안부 물어주는 그런 자식이 있다면 말이다. 아들은 잘 그러지 않기에 우리는 "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60대 노인에게 제일 필요한 딸"이라는 말에서 "60대 노인에게는 정감 있고 말 걸어주는 자식"이 생각난다. 이렇게 나도 60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