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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Oct 19. 2023

비대면 공감

공감과 존중의 차이

-닭장 같은 고시원에서 마시는 믹스커피 한잔이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캐러멜마키야토로 변신하는 놀라운 경험. 생존하기 급급한 내 인생도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유튜브의 ‘조성진 베토벤 비창 2악장’ 연주 영상에 달린 댓글. 거기에 많은 대댓글이 달려 있다. 댓글 내용도 뭉클하지만 거기에 달린 100여 개의 대댓글들은 또 다른 감동이다. 조성진의 음악에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하나같이 그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 예술의 선한 영향력이 가상의 공간에 만들어낸 아름다운 장면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보이지 않는 불특정 다수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나도 그이를 위하여 힘찬 격려를 보낸다. ‘당신의 급급한 인생도 반드시 꽃을 피우리라’

대면 공간에서의 물리적인 거리, 불통, 소외감, 양극화등으로 공감에 굶주려 있는 인간들은 비대면 공간 안에서 훨씬 더 자유롭게 공감을 피력하고 환호한다. 불특정 다수의 익명성이 주는 보호막도 한몫한다. 어쩌면 상대방을 응원하면서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0월 2일 새벽 2시 30분, 헝가리 부다페스트, 바르톡 방송국-

임윤찬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녹음했다. 그 새벽에 지구 반대편에서 연주되는 순간을 생중계로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임윤찬 출현 이후로 만들어진 임윤찬 갤러리. 그곳에는 임윤찬의 모든 연주 정보가 빠짐없이 들어있다. 임윤찬의 모든 연주 스케줄 1~2년 치를 기본으로 매 연주회마다 좋은 정보가 쏟아진다. 연주를 미리 예고해 주고, 끝나면 전문가의 악보를 첨부한 직관평부터 사진과 동영상들이 올라온다. 모두들 경탄하고, 환호하고, 공감하고 즐긴다. 모두의 놀이터가 된다. 신나는 어른들의 놀이터다.

나이·직업 등의 개인 정보 금지, 타연주자 언급 금지, 존대어 금지. 각자 모두는 부리로 불린다. 에부리바디에서 온 은어로 나부리, 너부리, ~부리 등으로 칭한다. 오프라인에서의 연대나 만남 또한 금지. 혹 서로 부리임을 인지한다 하더라도 스칠 뿐이다. 일반적인 팬덤의 행태는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 임윤찬의 연주 자체에만 집중할 뿐이다. 깔끔하다.

라디오 생중계가 예고되자 VRadio라는 앱을 깔고, 국가를 찾아 들어가서 도시를 찾고, 방송국을 찾으라는 설명 부리. 스마트 기기에 능숙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찾아들어가 듣고 녹음할 수 있었다. 들을 때는 기기의 내장저장공간이나 앱의 녹음항목에서 들으라는 친절 부리. 한밤중에 들으며 녹음하기에 소리가 너무 클까 염려했는데 볼륨을 죽이고 녹음해도 재생 음량과는 상관없다는 실험 부리. 임윤찬의 음악 앞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 부리들. 피켓팅에 실패하면 위로하고 격려한다. 언젠가는 유럽에서의 연주를 볼 수 있기를 꿈꾸고 격려하고 기원해 준다. 전 세계의 한국 부리들과 모이는 거대한 공감방이다. 시공을 넘나들며 즐기는 또 다른 우주이다. 많은 이들과 공감하며 노는 것은 임윤찬의 음악과는 또 다른 생활의 활력소이다.     

  

-응, 트로트-

안드라스 쉬프의 피아노 콘서트에서 친구 딸 부부를 만났다. 아저씨는 같이 안 오셨냐는 물음에 나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다. 존중이 공감은 아니다. 남편이 거실에 TV를 켜놓고 트로트를 즐기는 동안에는 집밖으로 나와서 운동을 하거나 카페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즐긴다. 둘만 살면서 방문까지 닫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적당히 자리를 피해 혼자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흥이 많은 남편에게 트로트는 삶의 활력소이다.

내가 피아노가 도무지 늘지 않는다고 호소하면, 꾸준히 하면 될 거라고 위로한다. 책을 보고 글을 쓰면 열심히 하라고 또 격려한다. 콘서트에 가면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는 인사로 존중을 표시한다. 그 나이에 쓸데없는 짓 말라고 면박하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존중하고 이해하지만 같이 즐길 수는 없다.

가족모임에서 사촌 동생이 그 나이에 뭐 하러 피아노를 치냐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지인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피아노는 스트레스받는다고 그림을 권유한다. 공감은커녕 존중도 이해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대답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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