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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Dec 22. 2023

크레센도

유튜브에서 리스트의 ‘초절기교’를 켰다.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쿨 연주다. 1년 6개월 전 처음 보고는 거의 듣지 않았다. 다른 연주들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것만은 볼 수 없었다. 너무 처연하고 숭고해서 다시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어제 ‘크레센도’ 영화를 보고 와서 큰맘 먹고 열었다. 다큐멘터리 특성상 짜깁기로 편집된 그의 연주를 보고 나니 갈증이 생겼다. 1시간 7분 동안 작곡가와 음악과 하나가 되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마지막 왼손을 들어 올리며 연주를 마친다. 온 몸은 손끝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나면서 다리가 풀리는 모습. 연출되지 않은 실황의  장면이다. 음악을 넘어 존재 자체가 드라마다.    

  

사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쿨은 시작부터 여러 가지 서사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와 전쟁이라는 인류의 재앙이 이 대회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엄청난 예술성을 가진 최연소 연주자가 나타나서 정치적 이슈를 뒤집으며 예술성 자체가 거대한 이슈가 되었다. 반 클라이번이라는 인물 자체가 냉전시대의 아이콘이었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참가자들의 참가 승인 여부,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참가자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도 18살짜리 소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코로나로 1년이 연기되어 5년 만에 열리는 바람에 간신히 참가하게 된 최연소 참가자라는 정도의 사실 외에는.    

  

영화는 참가자들의 다양한 일상의 모습과 백스테이지의 모습, 그리고 매 라운드마다 다음 라운드 진출자를 호명하는 순간의 참가자들의 명암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계 정상급의 젊은 피아니스트(18~30세)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호기롭게 나머지 휴가(?)를 즐기기도 한다. 무대 위 연주 이외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다. 간간이 심사위원이나 참가자들의 인터뷰와 연주자들의 연주 영상이 교차로 편집되어 있다.

     

코로나로 유튜브나 줌 등이 일상이 된 요즘 모든 콩쿨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그 덕분에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생중계로 대회의 모든 연주를 지켜보게 되었다. 본선 진출자 30명의 1라운드를 시작으로 2,3라운드를 거쳐 6명의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날것의 실시간 글들이 빼곡히 달려있다. 임윤찬의 1라운드 첫 곡은 심사위원이 대회 과제곡으로 작곡한 현대음악이었다. ‘팡파르 토카타’. 음 듣는 현대음악이 이렇게 설득이 되다니 놀라웠다. 3라운드에서 드디어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으로 방점을 찍더니 결선에서 라프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연주자들에게 극한의 난곡으로 알려져 있던 리스트와 라프마니노프가 이렇게 쉽고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테크닉의 한계를 안고 연주하는 대다수의 연주들은 청중들에게도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테크닉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전달되는 음악의 아름다움. 정상에 올라서야만 조망할 수 있는 산 전체의 아름다움.


그는 음악의 메신저를 자처한다. 전달자.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천명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의 연주에는 자기 자신이 없다. 그래서 표현의 과장이나 감정의 과잉이 없다. 곡 전체의 균형과 조화가 완벽하다. 우주와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바흐를 연주하면 바흐가, 리스트를 하면 리스트가 된다. 진정한 음악의 전달자다. 패기 넘치는 젊은 연주자들에게서 보기 드문 덕목이다. 겸손함이다. 음악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일상에서의 겸손함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와 연주를 함께 했던 지휘자들의 평이다.

무엇보다 임윤찬만의 가장 큰 특징은 내재되어 있는 타고난 리듬감이다. 이것은 그의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도 울림이 없다면 음악으로서의 가치는 다. 그의 음악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의 음악은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클래식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심폐소생술이다. 덕분에 클래식 음악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다. 임윤찬의 연주를 처음 듣고 느낀 생각. 임윤찬의 삼사십 대 연주는 또 어찌 될까.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하나. 조금만 살고 싶은데 임윤찬 때문에 조금 더 살아야 하나.     

 

영화의 뒷부분. 라프마니노프 3번이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다가와 임윤찬에게 악수를 청한다. 진지하고 정중한 태도로. '내 인생의 최고의 연주였다'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 순간을 함께 해서 영광이었다'.  나이 지긋한 단원들의 헌사는 어린 연주자에게 바치는 경외와 사랑이었다.      


종종 주인공의 인생이 영화나 노래의 제목대로 되는 경우를 본다.

임윤찬에게 바치는 헌사. '영원히 크레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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