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마켓 3
저녁을 먹자며 간 곳은 냉면집이었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냉면 좋아해?라고 물으니
아뇨 할 수가 있나 미리 다 정해놓고 넌 그냥 먹어라 하는 식이다.
내심 사장이 밥을 산다는데 삼겹살이라도 구워서 오래간만에 남의 살 좀 맛보나
기대가 컸는데 종이처럼 얇게 썰은 고기 두 장에
삶은 계란 반쪽이 전부 인 물냉면 이라니 실망이 가득한 눈으로
귀한 고기 두 점을 아꼈다 나중에 먹으려 젓가락으로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며 먹느라 애가 탔다.
돈 없으면 이런 대접이구나 생각하니 겨자로 얼얼했던 눈과 코에서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솟아나더라.
실실 웃어가며 이 집 냉면이 유명하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사장은 야채 파트는 이제 그만두고 정육 파트로 가란다.
아니 제가 뭘 잘못했나요? 물으니 웃으면서
그게 아니라 채소는 매뉴얼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된다고
이젠 정육부에 와서 매상 좀 올려보란다.
철렁했던 심장을 추스려 제자리에 갔다 놓고 알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오래오래 일 좀 같이하자며 악수까지 청하더라.
이튿날 출근해서 야채부에 인사하고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한 뒤
정육부에 갔더니 정육부 엔 어울리지 않을 비쩍 마른 사내가 책임을 맡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더 들어 보이고 눈매가 날카로운 게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모습에 저거 보통 아니겠다 생각이 들더라.
오순절 계통의 신학교를 다닌다는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미혼으로 미국 온 지는 오 년 차가 된다고 하더라.
예상대로 땍땍 거리며 마른 장작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퉁명스럽게 대하는 건 기본이요
뭘 물어보아도 먼저 째려보았다.
마음은 불편한데 어쩌랴 졸병이 알밤을 손으로 까라면 까야지
군대에 있으면 다른 것으로도 깠는데 흠.
정육부는 그의 성질 대로 꼼꼼하게 진열되었고
고기 한점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문제는 고기를 파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너 왔니 그래 나 여기 있다 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하니
손님들은 분위기를 먼저 알아차리고 서둘러 매대를 빠져나가더라.
이따금 손님이 뭘 물어보면 귀찮아하는 억양으로 대하니
두 번 묻지 않고 고기를 집어 들고 가던지 눈치만 슬슬 보고 지나갔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채소부에서 하는 방식으로 손님을 대했다.
젊은 새댁이 오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양념된 불고기를 권하고
사오십대 주부가 오면 미리 손질된 것이 아닌 가격이 저렴한 덩어리 고기를
권하였다. 어차피 주부 경력이 많은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을
읽은 것이라고나 할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면 도가니라든가 쇠꼬리 사골 등을 권하였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관절 이곳저곳이 삐그덕거리니 내가 권하는 도가니에
썰을 조금 풀어대면 "그려 참말이여" 하면서 입가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져갔다.
정육부가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었는지
내가 하는 행동이 얄미웠는지 마른 장작 신학생은 나에게 다른 일을 시키더라.
손님이 오면 지가 나서고 나에겐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시키고
그러니 나는 나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다.
그런데 정육부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사물을 보는 예리함이 있었던 나는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
얼마만큼 있었는지 따위를 잘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