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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타쟌 Nov 11. 2024

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33

아리랑 마켓 2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일은 해군 선배 사장의 명령으로

풀타임으로 바뀌었다.

자기보다 거의 두 배는 됨직한 후배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는 듯

사장은 날 볼 때마다 더없이 밝고 환하게 웃었다.


배고프지? 하면서 매장에서 파는 김밥을 가져다주면서

다른 직원들 보기 전에 얼른 먹으란다.

음료수는 미리 뚜껑을 따서 갖다주고 뭐라도 더 챙겨주려 안달이었다.

그런 해군 선배  사장을 위해 나는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채소가게는 특성상 오래 보관이 불가능하다

하여 30프로 정도는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그 버리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한꺼번에 진열하는 방법을 버리고

조금씩 자주 진열하였고 버리기 직전에 있는 채소는 잘 다듬어서

마켓에 있는 김치 담그는 파트며 반찬 만드는 파트로 보냈다.

또한 이틀 후면 버릴 채소는 사장에게 미리 얘기하여 

세일로 때리니 매상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주문하는 양이 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오죽하면  채소를 납품하는 사람들이 요즘 장사가 안 되냐며

사장을 위로하더란다.

이런 풍경에 사장은 좋아라 하고 달라진 채소 파트에 신이 났지만 

일이 많아진 동료 직원들은 주둥이가 한 발이나 나와 내가 미워 눈을 흘기고 다녔다.


나는 채소 수급에 관한 매뉴얼을 구상하고 노트에 적어 사장에게

전달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더라.

종류에 따라 진열 방식도 달리하고 어떤 것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

방법도 나열해서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그대로 교육해서

날이 갈수록 사장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다녔다.

주인이신 왕 사장님과 둘째 사위 메니져도 좋아서 벙글벙글 하더라.

나의 세일 노하우 또한 눈여겨본 사장은 흐뭇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채소 진열대에 손님이 오면 뭐라도 집어가게끔 썰을 푸는데


오늘은 배추가 좋은 것이 들어왔다며 사모님께만 알려드린다고 하면 

그래요? 하면서 골라주세요 하는가 하면 오늘은 감자가 새로 들어왔으니

된장찌개로 조림으로 드시면 좋을 것 같다고 레시피도 슬슬 풀면

호기심에 귀를 쫑긋 하고 듣다가 웃으며 감자도 주세요 한다.


파를 세일할 때 면 파김치가 남자에게 최고인 거 아시죠? 하면서

찹쌀가루로 죽을 쑤어 멸치액젓에 고춧가루 풀어 담아 

적당히 삭혀서 돼지 등갈비찜에 넣어도 좋고

잘 삭힌 파김치를 참기름 둘러서 무쳐내어 하얀 쌀밥에 얹어 먹으면 


나갔던 입맛이 돌아온다고 큰 덩치가 설레발을 치니

아주머니 아가씨 할머니 너나없이 다들 좋아라 했다.

채소 파트만 오면 즐거우니 일부러라도 와서 상추며 고추며 마늘이며 

당장 안 사도 될 것들을 주섬주섬 카트에 실는 모습에


손님도 신나고 나도 신나고 사장은 더 신났다. 

피곤해서 인상만 북북 쓰고 다니던 사장은

언제부터 인가 발걸음이 사뿐사뿐 나붓나붓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더라.

주문량은 전보다 줄었는데 매상은 높아지고 


돈도 사랑도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 것인지

당시만 해도 사장은 집이 이십여 채에 건물 서너 개를 가진 부자였다.

그래도 절약에는 이골이 났는지 포장지 한 장 비닐백 하나

소홀히 여기는 법이 없었다.


옷차림도 작업복에 후줄근했지만 그들은 알부자 알부자 그런 알부자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사장이 저녁이나 하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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