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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Juliet Aug 31. 2022

A to Z 베스트 영화 뽑아보기

개강을 하게 되면 이런 한적한 짓거리를 할 시간이 없어지니, 관람한 영화 수도 500편을 돌파했겠다, 연대별 베스트를 뽑아볼까 잠시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적은 수의 영화를 관람했다는 한계 앞에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ㄱ부터 ㅎ까지 최고의 영화를 꼽는 글이 유행한 바 있는데, 힙스터 감성 1큰술, 문화사대주의 1작은술 섞어 A부터 Z까지 최고의 영화를 선정하려 한다.


(기준 : 레터박스. 따라서 A, The 등의 관사는 무시되었다.)






숫자



2001: A Space Odyssey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스탠리 큐브릭, 1968


(후보작)

12 Angry Men (12인의 노한 사람들 - 시드니 루멧, 1957)

The 400 Blows (400번의 구타 - 프랑수아 트뤼포, 1959)

1917 (1917 - 샘 멘데스, 2019)


그리 어렵지 않은 선택. 영화에 곧잘 지루함을 느끼는 타입인데, 이상하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처음 관람했던 어린 시절부터 매료되어 봤던 기억이 있다. 기억 속 최초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영화.






A



Annie Hall

<애니 홀> - 우디 앨런, 1977


(후보작)

Apocalypse Now (지옥의 묵시록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9)

Asako I & II (아사코 - 하마구치 류스케, 2018)

All Hands on Deck! (다함께 여름! - 기욤 브락, 2020)


대부 시리즈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지옥의 묵시록>을 리스트에 올릴 수 없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애니 홀>은 말 그대로 인생 영화 중 하나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사코>와 <다함께 여름!> 역시 각각 2010년대와 2020년대 베스트를 선정한다면 무조건 들어갈 훌륭한 작품이지만... <애니 홀>의 넘치는 재기와 위트를 이길 수는 없겠다. 내 인생 최고의 코미디 영화. 랍스터 데리고 극장도 가겠다는 대사가 이상하게 너무 좋다. 그 상황에서 애니, 아니 다이앤 키튼이 터뜨린 웃음도 좋고...






B



Boyhood

<보이후드> -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후보작)

Brief Encounter (밀회 - 데이비드 린, 1945)

Bicycle Thieves (자전거 도둑 - 비토리오 데 시카, 1948)

A Brighter Summer Day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에드워드 양, 1991)

Boogie Nights (부기 나이트 - 폴 토머스 앤더슨, 1997)

Before Midnight (비포 미드나잇 -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3)

Burning (버닝 - 이창동, 2018)

Bacurau (바쿠라우 -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2019)


초장부터 아쉬운 작품들이 너무 많다. 특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비포 미드나잇>, <버닝>. <비포 미드나잇>은 어차피 같은 감독 작품이니 미안함이 덜하긴 하다만... 아무래도 <보이후드>를 이길 수는 없겠다. 어떤 영화는 단 한 장면만으로도 영원히 기억되는데, <보이후드>의 후반부 'Fucking Funeral' 씬이 꼭 그렇다. 단순히 12년 동안 영화를 찍는다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이런 놀라운 걸작이 탄생하지 않는다. 그보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시간을 온전히 간직하는 링클레이터의 세심한 마법이 집약된 영화다. 오래된 생각인데, 링클레이터는 아주 많이 저평가되었다.






C



Close-Up

<클로즈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0


(후보작)

City Lights (시티 라이트 - 찰리 채플린, 1931)

Casablanca (카사블랑카 - 마이클 커티즈, 1942)

A Clockwork Orange (시계태엽 오렌지 - 스탠리 큐브릭, 1971)

Children of Men (칠드런 오브 맨 - 알폰소 쿠아론, 2006)


후보작 역시 이름을 빼기에는 아쉬운 영화들이었으나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키아로스타미의 (지금까지 본) 최고작. 카메라의 권능과 한계 모두를 무서울 정도로 정확히 알고 있는 영화, 그리고 카메라. 기적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기는 싫지만, 어떻게 <클로즈업>의 마지막 장면을 '기적'이 아닌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D



Dunkirk 

<덩케르크> - 크리스토퍼 놀란, 2017


(후보작)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 스탠리 큐브릭, 1964)

Drive My Car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2021)


후보작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이름을 올렸으나, 딱히 좋아하는 영화들은 아닌지라 역시 어렵지 않은 선택. 근작인 <테넷>은 매우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덩케르크>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놀란은 (포스트모던한) 시간의 마술사. 






E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이터널 선샤인> - 미셸 공드리, 2004


(후보작)

Eureka (유레카 - 아오야마 신지, 2000)


몇 달 전 이별을 겪고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봤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봤는데, 그때는 짐 캐리가 왜 저렇게 오버를 하나 싶었다. 몇 차례의 이별을 겪고 나니 달리 보인다. 정말 잘 만든 영화이기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각기 다르겠지만, 특히 내게는 엔딩 장면의 울림이 가장 컸다. 사랑의 재시작을 미리 걱정하는 클레멘타인에게 'Okay'라고, 정말 아무 일 아닌 양 대답해줄 수 있는 조엘의 용기를 나는 언제쯤 가지게 될까. 






F



Fantastic Mr. Fox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 웨스 앤더슨, 2009


(후보작)

Fargo (파고 - 코엔 형제, 1996)

Fight Club (파이트 클럽 - 데이비드 핀처, 1999)

First Man (퍼스트맨 - 데미언 셔젤, 2018)

First Cow (퍼스트 카우 - 켈리 라이카트, 2019)


물론 웨스 앤더슨의 최고작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그러나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의 압도적인 유머 앞에서는 그러한 생각이 어쩔 수 없이 흔들린다. 






G



The General

<제너럴> - 버스터 키튼 & 클라이드 브럭만, 1926


(후보작)

Grand Illusion (거대한 환상 - 장 르누아르, 1937)

The Godfather (대부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2)

The Godfather: Part II (대부 2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4)

Gran Torino (그랜 토리노 - 클린트 이스트우드, 2008)

Guardians of the Galaxy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제임스 건, 2014)

The Grand Budapest Hotel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웨스 앤더슨, 2014)


버스터 키튼의 야심이 온통 집약되어 있는 대작. 단 하나의 길을 왕복하며 이렇게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버스터 키튼이 위대한 액션 배우인 동시에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H



Her

<그녀> - 스파이크 존즈, 2013


(후보작)

Hell or High Water (로스트 인 더스트 - 데이비드 맥켄지, 2016)


삼성 빅스비 스칼렛 요한슨 에디션은 언제쯤 출시되나요?






I



Inside Llewyn Davis

<인사이드 르윈> - 코엔 형제, 2013


(후보작)

In the Mood for Love (화양연화 - 왕가위, 2000)

Ida (이다 - 파벨 파블리코스키, 2013)

Inside Out (인사이드 아웃 - 피트 닥터, 2015)


겨울이 오면 얼음판 위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르윈 데이비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겨울의 정취를 잔뜩 머금은 영화. 사계절이 반복되듯 르윈의 험난한 일상도 반복된다. 그러니 르윈의 겨울도 언젠가는 가고 봄이 올 것이다.






J



Joint Security Area

<공동경비구역 JSA> - 박찬욱, 2000


(후보작)

Jackie Brown (재키 브라운 - 쿠엔틴 타란티노, 1997)

Jojo Rabbit (조조 래빗 - 타이카 와이티티, 2019)


<비상선언>의 흥행 참패는 전적으로 박찬욱의 탓이다. 송강호랑 이병헌을 데리고 이리도 재미있는 영화를 찍어 놓으니 '송강호랑 이병헌만 있으면 끝내주는 영화가 나오는구나!'라고 누군가는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K



Kill Bill

<킬 빌 1 & 2> - 쿠엔틴 타란티노, 2003 & 2004


(후보작)

The Kid (키드 - 찰리 채플린, 1921)

The King of Comedy (코메디의 왕 - 마틴 스코세이지, 1982)

Klaus (클라우스 - 세르히오 파블로스, 2019)


많은 사람들은 <바스터즈>, <장고> 등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타란티노의 재능은 <저수지의 개들>로부터 <킬 빌>까지 그가 만든 다섯 편의 영화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무엇보다 두 편의 <킬 빌>이다. 특히 1편 마지막 설원에서 펼쳐지는 결투가 끝내주게 좋다.






L



La La Land

<라라랜드> - 데미언 셔젤, 2016


(후보작)

La Strada (길 - 페데리코 펠리니, 1954)

Life, and Nothing More...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2)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지구 최후의 밤 - 비간, 2018)


<라라랜드>는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다. 극장에서만 아마 네 번 봤으려나. 당연히 <라라랜드>가 대단히 뛰어난 영화이긴 하나, 그 이상으로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이동진의 말을 빌리자면) 누구에게나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영화가 있는데, 내게는 <라라랜드>가 그렇다. 어떻게 보면 천운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인생 영화를 묻곤 하는데, 이때 <라라랜드>만한 영화가 없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치지 않고서도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있다.






M



Man with a Movie Camera

<카메라를 든 사나이> - 지가 베르토프, 1929


(후보작)

Modern Times (모던 타임즈 - 찰리 채플린, 1936)

My Neighbor Totoro (이웃집 토토로 - 미야자키 하야오, 1988)

Mysterious Object at Noon (정오의 낯선 물체 -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00)

Mulholland Drive (멀홀랜드 드라이브 - 데이비드 린치, 2001)

Million Dollar Baby (밀리언 달러 베이비 - 클린트 이스트우드, 2004)

Mother (마더 - 봉준호, 2009)

Melancholia (멜랑콜리아 - 라스 폰 트리에, 2011)

The Master (마스터 - 폴 토머스 앤더슨, 2012)


M에 정말 걸출한 영화들이 많았다. 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우디 앨런의 <맨하탄>, 워쇼스키즈의 <매트릭스>,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노아 바움벡의 <결혼 이야기>, 데이비드 핀처의 <맹크>... 그러나 단 하나의 최고작을 꼽기란 어렵지 않았다.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보기'라는 행위의 성격과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N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엔 형제, 2007


(후보작)

The Navigator (항해자 - 버스터 키튼 & 도널드 크리스프, 1924)

The Notorious (오명 - 알프레드 히치콕, 1946)

North by Northwest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알프레드 히치콕, 1959)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에는 얼마간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완결성을 갖춰 창조한 문학적 세계를 해체해 영화적 세계로 재구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가령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빼앗은) <어톤먼트>는 괜찮은 영화이긴 하나 이언 매큐언의 원작에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큼은, 코맥 맥카시의 훌륭한 원작을 뛰어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코엔 형제의 뇌의 현신, 안톤 쉬거.






O



Oldboy

<올드보이> - 박찬욱, 2003


(후보작)

Our Hospitality (우리의 환대 - 버스터 키튼 & 존 블리스톤, 1923)


산낙지는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해요.






P



Playtime

<플레이타임> - 자크 타티, 1967


(후보작)

Paths of Glory (영광의 길 - 스탠리 큐브릭, 1957)

Play It Again, Sam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 허버트 로스, 1972)

The Purple Rose of Cairo (카이로의 붉은 장미 - 우디 앨런, 1985)

The Power of Kangwon Province (강원도의 힘 - 홍상수, 1998)

Phoenix (피닉스 - 크리스티안 페촐트, 2014)

Parasite (기생충 - 봉준호, 2019)

The Power of the Dog (파워 오브 도그 - 제인 캠피온, 2021)


물론 <플레이타임>의 몇몇 장면들 - 예컨대 박람회장의 복잡한 버튼들, 바삐 움직이는 여행사 직원들, 필요 이상의 손님을 받는 레스토랑 - 에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을 비판하는 함의가 존재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플레이타임>은, 그리고 자크 타티는 그렇게까지 신랄할 생각이 없다. 모든 감독들이 줌-인 하여 인간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스크린에 담으려 할 때, 왜 타티만은 카메라를 계속 뒤로 옮겨 민주적인 미장센을 실천하려 했을까? 어쩌면 자신의 피와 땀이 들어간 '타티빌'을 한없이 우주에 가깝게 만듦으로써 주인공의 특권적 위치를 부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플레이타임>의 위대함은 그러나 도시의 가로등이 백합과 닮아있듯 도착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독하게 웃음에 천착함으로써 인간의 불규칙성을 찬미하는 데에 놓여 있다.






Q



Quo Vadis, Aida?

<쿠오바디스, 아이다> - 야스밀라 즈바니치, 2020


(후보작)

없음


차마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뽑을 수는 없었다.






R



Rear Window

<이창> - 알프레드 히치콕, 1954


(후보작)

The Rules of the Game (게임의 규칙 - 장 르누아르, 1939)

Reservoir Dogs (저수지의 개들 - 쿠엔틴 타란티노, 1992)

Ready Player One (레디 플레이어 원 - 스티븐 스필버그, 2018)


모든 알파벳을 통틀어 가장 선정하기가 어려웠다. <저수지의 개들>과 <레디 플레이어 원>도 매우 뛰어나지만, <게임의 규칙>과 <이창> 사이에서 고민했다. 지금으로서는 <이창>이다. 내일 이 글을 새로 쓴다면 바뀔 수도 있겠다. 영화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위대한 두 작품 사이에서 <이창>이 도착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크린에의 매혹, 그리고 무엇보다 그레이스 켈리의 마력에 가까운 장력에 끌린다. 






S



Sherlock Jr. 

<셜록 주니어> - 버스터 키튼, 1924


(후보작)

Sunrise (선라이즈 - F. W. 무르나우, 1927)

Singin' in the Rain (사랑은 비를 타고 - 스탠리 도넌 & 진 켈리, 1952)

Spirited Away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미야자키 하야오, 2001)

Sully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6)

Soul (소울 - 피트 닥터, 2020)


S 또한 훌륭한 작품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존 포드의 <역마차>,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샘 멘데스의 <007 스카이폴>,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 등 역시 걸출한 작품들. 그러나 (M에서 그랬듯) 최고작 한 편을 선정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통통 튀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용감함도 매력적이지만 <셜록 주니어>는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순도 높게 담겨 있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우디 앨런이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종반부에서 다소 위악적으로 여주인공의 눈물을 전시하며 '세상은 영화가 될 수 없다'라고 선언할 때, 버스터 키튼은 머리를 긁적이며 '과연 그럴까?'라고 반문한다. 






T



Through the Olive Trees

<올리브 나무 사이로>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4


(후보작)

Tabu (타부 - F. W. 무르나우, 1931)

Taste of Cherry (체리향기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7)

Titanic (타이타닉 - 제임스 카메론, 1997)

There will be Blood (데어 윌 비 블러드 - 폴 토머스 앤더슨, 2007)


<펄프 픽션>은 영원히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기수로 추앙받을 훌륭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마음 같아서는 <펄프 픽션>의 황금종려상을 당장 빼앗아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 주고 싶다. 물론 <드라이브 마이 카>, <아네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등의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들을 애써 무시하고 <티탄>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2021년의 실수에는 비할 바 아니다.






U



The Umbrellas of Cherbourg

<쉘부르의 우산> - 자크 드미, 1964


(후보작)

Up (업 - 피트 닥터, 2009)

Uncut Gems (언컷 젬스 - 사프디 형제, 2019)


영화를 보다 보면 <쉘부르의 우산>이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가슴 절절한 사랑에 잔뜩 몰입한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번의 사랑과 두 번의 이별. 눈 내리는 주유소에서 지난날의 연인이 삶에 남긴 자국을 어루만지는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V



Vertigo

<현기증> - 알프레드 히치콕, 1958


(후보작)

없음


솔직히 말해 <이창>을 <현기증>보다 좋아한다. 그렇지만 <현기증>을 뽑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현기증>을 놔두고 <베테랑>이나 <검사외전>을 뽑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이 세 편의 영화밖에는 'V'로 시작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W



Where Is My Friend's House?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87


(후보작)

The Wind Will Carry Us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99)

War of the Worlds (우주전쟁 - 스티븐 스필버그, 2005)

Wife of a Spy (스파이의 아내 - 구로사와 기요시, 2020)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요아킴 트리에, 2021)


R 다음으로 어려운 선정이었다. 후보는 역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두 편이다. 반복과 대구의 미학이 엿보이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중 가장 시적이라고 할 만한 두 편. 세상의 모든 순수함이 집약된 꽃과 카메라맨의 양심을 회복하는 회화적인 풍경 사이에서 전자에 마음이 기운다. 키아로스타미는 세상이 결코 순수하고 순진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그럼에도 집요하게 세상의 형편없는 단면을 배격함으로써 순수함에 매달린다. 키아로스타미의 위대한 집착.






X



X-Men: Days of Future Past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 브라이언 싱어, 2014


(후보작)

X-Men: First Class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 브라이언 싱어, 2011)

X-Men: Apocalypse (엑스맨: 아포칼립스 - 브라이언 싱어, 2016)


브라이언 싱어가 만든 세 편의 엑스맨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본 것이 이 세 편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몇몇 사람들은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히어로 영화사에 남을 명작으로 칭송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 편 모두가 고만고만하다고 생각한다(엑스맨 시리즈에 네 번째 영화는 공식적으로 없다). 






Y



Yi Yi

<하나 그리고 둘> - 에드워드 양, 2000


(후보작)

Young Mr. Lincoln (젊은 날의 링컨 - 존 포드, 1939)

The Young Girls of Rocheforst (로슈포르의 숙녀들 - 자크 드미, 1967)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위로 놓는 평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하나 그리고 둘>이 더 좋다. 인생의 반복성과 우연성 사이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곁에 두고 양양의 몸으로 현신한 에드워드 양은 그저 묵묵히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것으로 수만 마디 말을 대신한다. 그러나 양양의 부단한 노력은 아쉽게도 현재가 아닌 과거의 뒷모습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에드워드 양은 때로 감독의 자리에, 때로 소년의 자리에 서며 이와 같은 겸허함을 시각화한다. 언젠가 이토록 거대한 <하나 그리고 둘>이 담은 모든 것을 알아볼 날이 올까? 생각건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보는 것들을 보지 못하겠지. 그날이 오면 양양이 그러했듯 조용히 '이제 나도 다 컸구나'라고 읊조리면 될 뿐이다.






Z



Zodiac

<조디악> - 데이비드 핀처, 2007


(후보작)

Zama (자마 - 루크레시아 마르텔, 2017)


미스테리오는 이때부터 아이언맨이 싫었다. 무려 12년이 걸린 군자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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