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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Jul 27. 2022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너와 함께 살아보려 한다.

무작정 시작된 가을이와의 여정


이모께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이모 제가 가을이 키울까요?"라고 자주 말한 적 있다. 그럴 때마다 이모는 두 팔 벌려 환영이라며 얼른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대답을 들으면서 '어떻게 가을이를 데리고 가지? 내 가방 안에 넣어서 갈까'하는 쓸데없는 생각만 속으로 했었다.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기에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만 펼칠 뿐이었었다.


나는 가족들이랑 함께 산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으려면 먼저 가족들의 동의가 필수였다. 하지만 원래 어머니께서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첫 관문부터 난관이 예상됐다. 어머니께선 길거리를 걸어 다닐 때 옆에 산책하는 조그만 강아지가 보이면 슬쩍 길을 피하실 정도셨다.


어머니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걸 뻔히 아는데 옆에서 자꾸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긴 힘들었다. 그래서 가끔 흘리는 말로 "가을이 우리가 키우는 거 어때?"라고 말만 할 뿐이었다.


어릴 적 가을이가 할머니 집에서 하숙했을 때 엄마도 가을이를 만났었다. 엄마의 기억으론 가을이는 미용을 해서 털이 멋지게 휘날려진 강아지였다고 했다. 젊고 팔팔해 가을이는 맨날 앵두가 자신에게 가까이 가면 괴롭히고 무시했었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내가 방학 중 사촌 동생을 돌볼 때, 어머니께서 한 번 이모집을 들리신 적 있었다. 그때 가을이를 보고 놀라시며 "너 왜 이리 늙었냐"라고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그리고 측은한 표정으로 몇 번 가을이 털만 쓰다듬어 주시며 가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서 나지막이 가을이를 본 소감을 말해주셨다.


"걔가 참 자기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한 개였는데, 이젠 다 늙어서 어린 아기들 사이에 있으니 그냥 뒷방 늙은이 같네. 세월이 야속해. 젊고 팔팔했던 개를 소파에 축 쳐져서 밥만 먹는 늙은이로 만들고."


어머니가 보기에도 가을이가 과거와 너무나 달라져 안타까우셨던 것 같다. 그저 추측해보건대, 어머니께서도 이제 청춘과 조금 떨어져 노년이라는 새로운 길목에 들어설 때쯤 되니 가을이의 늙음이 남 일이 아니신 것처럼 느끼신 것 같았다.


그리고 방학이 끝난 9월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설거지를 하시면서 갑자기 "가을이 우리가 키우자."라는 결단의 말씀을 하셨다. 되게 뜬금없는 순간이었지만 가을이와 가족이 될 최적의 타이밍임을 느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니.
가을이가 불쌍하면서
남 같지가 않더라.

털 깎은 가을이

곧장 이모께 연락을 드리니 오는 말은 '환영'이었다. 지금은 주변 숍이 예약이 다 차서 강아지 털과 발톱을 다듬지 못하니 숍 다녀오고 나서 바로 연락을 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다.


9월 25일,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과제에 찌들어 있을 때쯤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대망의 날이었다. 난 친구와 카페에서 공부하다 말고 500m 떨어진 강아지 용품점에 가 케이스를 샀다.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과 방금 전에 산 강아지 케이스를 가지고 9시쯤 이모네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비닐봉지 안에 강아지 사료와 목줄 등의 가을이 용품이 한껏 담겨 있었다.


다행히 가을이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나를 한껏 반기며 평소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게 꼬리만 흔드는 가을이를 잠깐 쳐다본 뒤 주저하지 않고 케이스에 담았다. 내가 가져갈 커다란 비닐봉지 2개 중 하나는 백팩 안으로 넣고 하나는 손에 든 채 케이스까지 들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타니 정신이 없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중량감을 느끼고, 가을이의 놀람&무서움이 합쳐진 낑낑거림을 들으니 얼른 집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내 다리에서 느껴지는 가을이의 온기가 걱정과 두려움을 노곤하게 풀어줬다.


그날 밤, 가을이는 우리 집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적응의 시간을 가졌다. 화장실을 알려주고 밥그릇을 챙겨준 후 가을이가 내 품에서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곁을 내주었다. 한동안 내 주위에서만 놀던 가을이는 어느새 자기 몸 크기에 알맞은 베개 위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잤다.


고요하고 깊은 잠을 자는 가을이를 내 눈앞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같이 잠을 잔다는 게 가족이 된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첫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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