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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Aug 08. 2022

널 너무 사랑하지만, 이건 아니야

가을이의 사고 일지



TV를 틀면 <개는 훌륭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고치는 프로그램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입질, 울부짖음, 공격성 같은 행동들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대개 견주의 실수(훈련 미숙, 반려견에게 부적합한 환경 제공)로 인해 문제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가을이를 키우기 전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일이 꽤 쉬운 줄 알았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을 볼 때는 오만하게  '난 강아지를 더 잘 키울 자신이 있는데'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하하. 그때의 내가 단단히 이상했던 게 확실하다. 누가 그랬던가 강아지를 키우는 건 말 못 하는 2~3살짜리 애를 키우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

코로나가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전면 대면 수업으로 수업 방침을 바꾸었다. 가을이와 룰루랄라 집에서 놀기만 하던 나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대면 수업, 과제, 시험, 멘토링 등 세차게 닥쳐오는 현실에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가을이에게 조금 소홀해졌었다.


바쁜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느낀 건지, 분리불안증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격적인 대면 수업을 하면서부터 가을이의 이상행동이 시작됐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다녀오면 집 안이 온통 난리가 났었다. 휴지통이 엎질러져 있고,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가 하며 어떨 때는 비닐까지 찾아 다 뜯어놓기까지 했다.

사고 현장

자기가 잘못한 건 아는지, 그렇게 사고를 치고 나면 소파 밑으로 숨어 1~2시간 동안 절대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 행동이 한 3번 정도 반복되고 나니 가족들 모두가 지치고 힘들었었다. 일 마치고 돌아오니 또 집을 청소해야 하니 침대에 누우면 녹초가 되기 일수였다.


매를 들까, 저녁밥을 주지 말까 등등의 강한 훈육 방법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기껏해야 큰 소리로 "그러면 돼요? 안돼요? 안되는데 왜 그랬어!"라고 외치는 게 다였다. 결국에 이 아이가 쓰레기를 뒤지는 환경을 제공한 것도, 불안함을 느끼게 한 것도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외출할 땐 휴지통을 가을이의 발에 닿지 않는 곳에 두고, 비닐도 눈에 안 띄는 곳에 숨겼다. 최대한 가을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도록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곁에 있어줬다. 그 이후에는 다행히 쓰레기통을 막 뒤지거나 비닐을 찢는 문제행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

가을이의 문제행동이 어찌어찌 해결된 후, 식탁에 모닝빵 봉지를 놓고 간 적이 있다. 외출하고 집에 와 보니 3개가 들어있던 모닝빵이 하나로 줄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호두과자를 좋아하지 않아 간식으로 나와있는 호두과자를 그냥 식탁 위에 던져놓고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호두과자를 감싼 종이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호두는 내 침대 위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먹을 것만 노리는 도둑이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용의자. 가을

상당히 귀엽고 영악한 이 도둑님께선 자신의 완벽 범죄를 꿈꾸며 빵과 과자를 훔쳤던 게 분명했다. 가을이의 도둑 행보를 지켜보며 어이없어하던 그때 머릿속에서 문뜩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가을이가 쓰레기통을 뒤진 날에는 분명 맛있는 걸 먹고 버린 쓰레기가 들어있던 날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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