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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wow Dec 06. 2024

이거 싸구려아니야~

보리새우젓

고3수능이 끝난 딸과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 출석일수는 체험학습으로 대체한 지 오래고, 늦잠 자다가 일어나 계란 하나를 먹는 딸에게 늘어진 액체괴물처럼 소파에 누워있던 내가 말을 걸었다.

“시장갈래?”

“시장 구경 좋지요~”

나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시장가는 건 재밌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엔 내가 짐을 덜어주는 역할이었구나를 느끼곤 매번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철이 들었던 아이라면 당연히 엄마 짐 덜어주려 따라가 무거운 건 손수 내 손으로 들겠다 했어야 했다.

엄마의 양손에 김치거리들이 무지막지하게 들려있고, 내손에도 피가 안 통하도록 들려 있었지만 매번 투정을 부리고 무거운 걸 들어 한쪽팔이 길어졌다며 먹을 거 사달라고 징징댔다. 하지만 간식 하나 없이 반찬으로만 가득 찬 그때의 장보기는 며칠뒤면 또 따라가는 일을 반복했었다.

지금은 신도시에 살지만 어릴 적 다니던 시장은 지금 우리집에서 차를 끌고 40분은 달려가야 나왔다.

오늘은 옛 추억에 젖은 사람처럼 그 시장에 꼭 가고 싶었다. 우리 딸과.


우리 딸은 어릴 적 나와는 다르다. 철이 들었고, 엄마인 나를 배려하고, 나를 웃게 한다. 나의 엔도르핀.

어릴 적 항상 방문을 열면 책을 보던 예쁜 아이.

그런 아이가 이제 19살 끝자락에서 성인 되기를 기대하고 꿈을 꾼다.


“엄마, 버스 타고 갈 거예요?”

“아니, 날이 추워서 차 가지고 가자. 공영주차장에 주차해도 하이브리드 차량은 주차비가 절반이래”

나는 나의 어릴 적 살았던 동네까지 다다르며 옛 추억이 여기저기 샘솟았다.

‘저긴 내가 어릴 때 팔랑팔랑 달리던 언덕, 저긴 내가 매번 빵을 사던 자리..’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그 시장에 가지를 않았다.

왜냐하면 시어머님이 사시던 곳에서 이사를 내 어릴 적 동네 그것도 내가 다니던 시장 바로 앞으로 이사를 가셨다.

시장에 가면 시어머님을 만날 것 같다.

만약에 만나면 나는 분명 시어머님을 반갑게 인사할 것이다.

시어머님은 분명 나의 손을 잡고 “여기 시장 보러 왔니?”하시며 웃어주실 것이다.

나는 그 후 민망한 웃음과 어떻게 내가 볼일을 다시 보고 집으로 갈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어머님은 잠깐 집에 들렀다 가기를 바라실 것이다.

이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나리오로 그 시장을 꺼렸다.

그렇지만 오늘은 꼭 그 시장 가서 사고 싶은 것이 있었다.

생선 가게에서 파는 조기를 사는 일이다.

작은 조기가 아닌 팔뚝만 한 보리굴비 사이즈 조기말이다.

생물로 사다가 내가 비늘을 벗기고, 소금에 절인 후 약 15일을 이 겨울 찬바람에 말려 아주 맛있는 생선구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물론 다른 시장에도 있다.

하지만 그 생선 가게가 내가 오래도록 다닌 터라 물건의 품질과 가격이 나에게 잘 맞았다.


딸과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유난히 겨울바람이 차가운 시장길을 걸어가며 뜨끈한 어묵 국물 냄새와 바로 찌어내 온 떡의 하얀 김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모든 맛난 풍경을 지나치고도 어느 한 군데에선 딸과 멈춰서 발을 떼지 못했던 곳은 호떡이었다.

호떡이란 단어는 보기엔 그냥 호떡이다.

하지만 지금 저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깔끔한 옷태를 갖추고 최신식 기계에 버튼을 누르니 호떡반죽에 그 속 설탕까지 채워진 채로 동그란 모양으로 뚝하고 기름에 지지기만을 기다린 몸으로 나오면 할아버지께서 기름에 지지직 소리를 내게 하며 납작하게 짓누르신다.

뒤집고 뒤집으면 완성.

우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너무너무 깔끔해 보이신다.

그래서 더 사고 싶다는 핑계를 대 본다.


그러고 나서 바로 생선가게로 갔다.

“뭐죠!”

부드러운 말투도 아닌 퉁명스러운 말투로 반말이라니 나이 마흔 넘은 이 나이에도 저건 싫다.

조기를 사러 온 나는 생새우를 보고 가격을 물어버렸다.

“이 생새우 두 가지 가격이 얼마인가요?”

“왼쪽 꺼는 1킬로에 5,000원이고 오른쪽 꺼는 1킬로에 20,000원이야”

왼쪽 꺼는 거무스름한 새우들로 크기가 컸다. 지저분해 보인다.

오른쪽 꺼는 핑크색의 작은 새우들로 평소에 우리가 보던 새우다. 근데 너무 비싸네.

난 사기 싫었다.

어떻게 구매의사가 없다는 표시를 하고 다른 집으로 갈까 고민하는데 반말을 내뱉던 아주머니가 봉투를 하나 뚝 뜯어내신다.

뭔가 하고 지켜보니 나의 새우를 담으려 하신다.

“왼쪽? 오른쪽? 어떤 거 줘? “

이 타이밍에 안 산다고 하면 싸우자고 할 표정이다.

대충 5,000원 버림 셈 치자.

“왼쪽 1킬로만 주세요 그럼”

아, 이런 지출 싫다. 억지로 산 느낌. 싫다고 말 못 했다. 아깝다. 마음에 진짜 안 드는 새우다.

그리고 봉투를 받기 전 둘러보니 조기가 보인다. 아 새우 말고 저 조기가 먼저 보였다면 조기나 주세요 했을 텐데.

나와 딸은 조기를 16마리 4만 원에 사고, 새우와 함께 집으로 왔다.


딸은 카페에 가자고 했지만 우선 새우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우리 외할머니는 새우를 대량으로 사다가 새우젓을 담가 파시는 분이셨다.

장사수완이 얼마나 좋으셨는지 그 시절 은행에 가서 돈을 맡기는 걸 모르시던 할머니는 장롱서랍 이곳저곳에 가득가득 돈으로 채워놓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그리고 나는 새우젓을 잘 담근다.

특히 11월, 12월에 새우를 사다 담그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판단하여 꼭 이 시기에만 담근다.

하지만 이렇게 거뭇 거리는 새우는 처음이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이유를 아셨을 텐데.


“엄마, 나 새우 샀는데 너무 거무스름해. 안 사고 싶었는데 강제로 산 것 같아.”

“뭐야 검잖아, 저걸 어찌 먹어.”


카톡으로 대화를 했지만 새우에 민감한 엄마는 약간의 짜증이 느껴졌다.

며칠 전 생새우를 싼 걸로 사 왔다며 아빠에게 짜증이 나있었던 걸 안다.

나마저 싸구려 사 왔냐고 타박하는 게 분명하다.

내가 사려고 산 게 아니라니깐.

새우젓 담그는 법

새우를 흐르는 물에 5초 정도만 살짝 세척한다.
그리고 불순물을 찾아 건져낸다.( 비닐이나 잡다한 것들이 섞여있을 수 있음)
그리고 물기를 빼주었다.
새우 1 킬로그램에 천일염 300그램을 살살 섞어준다.(새우가 부서질 수 있으니 조심)
그리고 유리병은 끓는 물에 식초 두 방울 넣고 유리병을 뒤집어 10초 열탕소독한다.
바짝 말린 유리병에 소금을 섞은 새우를 넣어준다.
그리고 다 넣은 후 맨 위에 천일염 100그램을 추가하여 덮어준다.
뚜껑 덮은 후 실온에서 5일을 보관한다.
5일 후 천일염 100 그램 와 생수 200ml를 섞어 추가해 준다.

총 새우 1 킬로그램에 소금 500그램이 들어간다.


새우젓 보관
새우젓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온도에 예민한 새우젓의 색이 변질될 우려가 있다.
자주 열고 닫지 않는 김치냉장고 맨 밑서랍에 보관하거나,
지퍼백에 여러 개로 나누어 냉동보관한다.



그리고 난 다 담은 새우젓을 사진을 찍어봤다.

분명 여태 몇 년 동안 담갔던 새우젓 색과 다르다.

어둡게 찍힌 건지 새우가 거무스름한 건지 나 조차도 혼란스럽다.

검색에 들어갔다.

[새우가 거무스름해요]

[검은 새우]

[새우젓 담그는 새우 검은색]

별 문장을 만들어 검색하고 또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산 새우의 이름이었다.

“보리새우”

내가 산 새우는 보리새우가 섞인 새우였다.

보리새우는 크기가 크고, 거무스름하면서, 감칠맛이 더 많다. 새우젓으로 담그기도 한다.


당장 엄마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다.

“엄마, 보리 새우래.”

난 다짜고짜 보리새우부터 말해버렸다.

“오늘 내가 산 새우가 보리새우인데 감칠맛이 더 깊고 저걸로도 새우젓을 담근데.”

“그래? 난 잘 몰랐지”

이제 와서 잘 모르는 사람처럼 대답을 한다.

새우에 정말 예민한 우리 엄마이거늘.

매 해마다 새우젓 담갔다고 사진을 보내면 내가 담근 새우젓이 더 예쁘다며 답장으로 사진이 온다.

그래서 보면 진짜 엄마의 새우젓의 색이 더 예뻤다.


이래서 거무스름한 새우젓이라 찝찝하던 마음이 해결되었다.

아까만 해도 구박하던 새우젓 병을 예쁘게 쓰다듬으며, ‘맛있게 돼라 보리새우야’라고 말해줬다.


나는 조기에 소금을 가득 뿌려 12시간을 방치하기로 하고 베란다에 통째로 던져두고, 새우젓이 담긴병은 아일랜드식탁 가장 가운데에 두고는 지나갈 때마다 뿌듯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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