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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Feb 12. 2023

잘 가! 내 사랑

부제 - 사연곡(思煙曲)

오 년 전 난 세상에서 가장 아끼던 친구를 떠나보냈다. 처음 그와 이별했을 때 눈물보다는 아찔함이, 절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마치 시체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말기 암 환자처럼 괴로워했다. 세월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친구를 꿈속에서 종종 만나곤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모든 사귐이 그렇듯,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날은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고, 뜨거운 서리가 창문을 가린 방에서 아무런 인사 없이 조우했다. 그는 흰색의 옷을 입었지만, 목에는 황금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유난히도 누렇게 떠 있어서 황달을 의심할 정도였다. 처음부터 그와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말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나는 그를 수줍어했고, 몇 번을 만나고 난 후에, 그를 간간이 생각해 냈다. 우리는 고등학교 내내 그렇게 친해지지 않았지만, 대학을 들어간 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대학을 진학하자마자, 그는 분신처럼 내 옆에 꼭 붙어 다녔다. 우리는 500원만 있으면 하루 종일 무료하지 않게 보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좋아해서 인지, 한산도나 거북선을 좋아했고, 88 올림픽을 열렬히 사랑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라고 했다. 그가 좋아하는 꽃은 장미였고, 가끔 그의 몸에서 박하향이 나기도 했다. 그를 나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워낙 인기가 많아 학교 같은 학번 남자아이들은 그가 없으면 이야기조차 나누려고 하지 않았고, 여자 학우들은 그를 좋아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가끔 그와 몰래 만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지 몰랐으나, 주위사람들은 나를 그의 추종자라고 부르며, 특히 부모님은 우리의 만남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를 아끼는 눈치였지만, 어머니는 싫어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를 찾기도 했고, 그가 없으면 허전해 허겁지겁 그를 만나러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가 느끼기에도 지나쳤지만, 그가 없이는 살 수 없기에 난 나 자신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그와의 인연을 끊어 보려 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이 그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그와 몰래 만나는 것도 점점 버거워졌다. 한 삼 개월 정도 그를 멀리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니힐리즘으로 가득 찼는지 느끼게 만들 뿐이었다. 한밤중에 그와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그의 몸짓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 뜨거움으로 인해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술이라도 취할라 치면 나는 그를 더 찾아 헤맸다.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날들이었고, 그와 함께하는 세상엔 두려움과 외로움 따위는 없었다.


문제는 아내로부터 터져 나왔다. 내가 아무리 다쳐도 화 한번 내지 않고 병상 옆에서 다소곳이 간호해 주던 그녀도 나와 그의 사이가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내는 매일 잔소리를 했고, 나는 그와의 이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그를 쉽게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그와 함께한 세월이 태산보다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날이 좋은 어느 날, 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아내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앓던 사랑니를 빼듯 미련 없이 그를 보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 역시 나를 잘 알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말없이 나를 놓아주었다. 그를 떠나보낸 후 그의 부재를 느끼고 한동안 무척 방황했고,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난 마구 먹어 대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그 친구와 헤어지면 분명히 더 건강할 거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더 게을러졌고,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몇 달을 그렇게 힘들게 지냈다.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라고 증명하듯 나 역시 그를 점차 잊어갔다.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가 떠난 후, 더 이상 그의 체취 따위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게 한편으론 슬플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진짜 나의 향기가 돌아왔다. 예전엔 그가 없으면 책도 못 읽었지만, 지금은 그의 부재에도 몇 시간을 내 서재에 앉아 일을 진득하게 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와 마셨던 커피는 더 이상 달달한 믹스가 아니었고, 쓴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맛있게 느껴졌다. 

재작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난 그가 몹시도 그리울 줄 알았다. 내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는 항상 말없이 위로를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그를 보내고 처음 겪는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난 그의 부재에도 잘 견뎌내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이 더 커서인지, 그가 생각조차도 나지 않았다. 그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왔을 때에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난 비로소 그가 없어도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독한 놈이라고 욕도 하지만, 언젠가 그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수근 덕 댔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나 만큼이나 그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시대의 흐름이 바뀌어서 그런지, 지금은 그를 몹시도 경원시한다. 그런 연유 때문 인지, 길에서 그를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의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나에겐 애틋한 옛사랑이었기에, 30년을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친구에게 예의를 지켜 이젠 세상 마지막 안녕을 고하고 싶다. 부디 어디가 서든 천덕꾸러기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과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잘 가! 내 사랑 담. 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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