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예연 Jul 10. 2022

책이 책을 부르는 알고리즘

To. 책과 친하지 않은 이에게

평소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큰 서점, 작은 서점 할 것 없이 전부 좋아합니다. 서점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이 뛰는 것을 보면 좋아하는 마음을 자신 있게 고백해도 되겠지요?


특정 관심 있는 코너뿐 아니라 서점 전체를 구석구석 둘러봅니다. 부끄럽게도 경제에 있어서는 어린이 수준이지만 경제코너에 가서 제목을 훑으며 트렌드를 읽습니다. 가끔은 괜스레 궁금해져 한 권을 품에 안고 데려 오기도 합니다. 요즘은 쉽게 쓰인 글이 많아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거든요. 담백하게 쓰인 에세이도 좋아합니다. 일상에서 흘러가는 것을 붙잡아 써 내려간 통찰에 감탄하기도 하고, 타인의 삶에서 훔쳐올 것은 없는지 염탐하는 마음으로 읽기도 합니다. 문학은 말이 필요 없지요. 그저 서술하는 방식이 아닌 문학의 형태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이렇게 서점 한 바퀴를 꼼꼼히 둘러보다 보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지점이 생깁니다. 기꺼이 시간을 들여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을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사느라 잊고 지낸 좋아하는 작가의 글일 수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필사 노하우에 관한 책일지도 모릅니다. 거기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알고 싶은 내용은 나의 관심사에 닿아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책 한 권에서 시작됩니다. 그 책이 바로 답을 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제안해줍니다. 이런 것도 있는데 어때? 하면서 말을 걸어옵니다.


여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앨런 베넷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책이라는 것은 신기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끔은 책을 읽는 속도보다 구입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도 여전히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는 100만 원 상당의 책이 담겨 있을 정도이니까요.


책 하나로 시작된 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만나게 됩니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도서가 쏟아져 나오던 몇 년 전 이야기인데요. 조금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이긴 하지만 그 본질에 완전히 매료가 되고 말았습니다. 집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고요. 그렇게 제 삶에 들인 미니멀리즘은 집뿐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도 스며들었습니다. 비어 있는 거실 한편에 요가매트를 깔아 움직이고 호흡하며 마음과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여행의 모양새도 달라지게 되었는데요. 관광지보다는 숲 속에 위치한 숙소에 머물며 산길을 산책하고 요가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시간을 만들어가며 진정한 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미약하게나마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운동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플라스틱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용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이것은 사업의 사자도 모르던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서관에서 만난 책 한 권이 저를 이곳까지 이끈 셈입니다. 참 신기하죠.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에요.


하고 싶다, 라는 원초적인 마음 하나만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모르는  투성이었습니다. 의지할 곳은 유튜브와 책이었는데, 결국 유튜브 콘텐츠의 원천 역시 책에서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소위 성공을 말하는 유튜버들은 모두 책을 추천했거든요. 처음엔 상품을 팔아야 했으니 마케팅 관련 책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노출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 펼친 책들은 브랜딩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브랜딩에 필수인 콘텐츠까지, 관심은 가지에 가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업은 접었지만, 잠들기  침대 머리맡 조명에 의지해 읽어 나간 브랜딩 책은 여전히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느새 사업을 위한 독서가 아닌 즐거움이 자리하고 있었고,  알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이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시도한 작은 일들이 모이니 어느덧 나라는 브랜드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누구라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결정과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선택 능력은 그가 처한 상황과 지식에 제한되며, 상황이 확장되면 선택지도 확대된다.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의 세계를 넓혀간다는 느낌으로 책을 만나보세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본인의 세계를 굳히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한편에 다리를 놓아 다른 세계와 연결 지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세계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또 다른 세계가 연결되고 나만의 것으로 흡수되는 경험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말하고 싶어요.


책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기에 그 안엔 귀 기울여 볼만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평생 가지고 갈 가치관을 찾게 되기도 하고, 내 안에 잊고 있던 열정을 건드려 주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내 곁에 좋은 사람을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이라고 이미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시작은 블로그의 글이나 인스타그램의 짧은 글귀일 수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상일 수도 있고요.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면 책의 지면을 통해 하는 말에도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랍니다. 한 꼭지의 글이나 한 편의 영상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내공이 담겨 있거든요.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평소 책과 친하지 않더라도 가볍게 나들이하는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보면 어떨까요. 쳇바퀴 도는 알고리즘에서 빠져나와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나와의 데이트를 기획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