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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연 Jul 18. 2022

MBTI보다는 강점 가드닝

정체성 제한하지 않기

본인의 MBTI 유형을 알고 계신가요?


저는 두 번의 시도로 두 가지 유형의 결과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두 번의 결과가 공통적으로 ‘I’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첫자리는 외향형 ’E’와 내향형 ’I”를 구분 짓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요.


결과를 받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만약 ‘E’가 나왔다면 두 번째 시도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거 영 엉터리 구만,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꼬리표 같은 내향형 ‘I’는 저를 표현해주는 수단이 되어 주면서, 동시에 저를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하곤 했습니다. 걸을 때마다 자꾸 발에 차이는 돌부리 같은 존재 같달까요.


생각해보면 저라는 사람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갈증이 많았습니다. 그 갈증의 뿌리를 찾아보니 ‘열정’ 이더군요. 열정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요즘, 왜 저는 그간 이 뜨거운 것을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성적인 저의 성격으론 그 뜨거운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열정이란 씨앗은 결국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초라한 열매에 실망할까 애초에 그 씨앗을 심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죠. 내 안에 싹을 틔울 힘이 없다고 생각하니, 완벽한 환경을 갖추는 것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고르고, 예쁜 화분을 고르 듯 눈에 보이지 않는 내공을 쌓는 데에만 몰두했어요. 내공이 커지면 그제야 씨앗을 심어볼 생각으로요.


하지만 완벽한 환경이란 지극히 이상에 불과했습니다. 측정할 수 없는 내공은 언제까지 키워야 할지, 아니 크고 있기는 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작은 목표를 향한 명확한 경로 때문에 목표에서 벗어난다.”
우리와 꿈 사이에 놓인 장애물이 우리를 막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저지하는 것은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정체성에 대한 선입견이다. 목표를 이룰 능력이 나에게 없다는 생각이다.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더 이상 내향인이란 말로 저를 표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몇십 년 전에 비전문가에 의해 개발된 성격 테스트에 나의 정체성을 맡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차분한 열정인’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단색으로만 존재하던 정체성에 여러 색을 입혀주니, 깊지 않은 내공이란 환경에도 열정은 싹을 틔우고 잎을 키워냅니다. 비록 아직 자랑할 만한 열매를 키우진 못했지만, 초라하거나 조급하지는 않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차분히 키워낼 자신감이 어느새 열정 옆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직접 붙여준 정체성 이름표도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되어 버릴지 모릅니다. 그땐 제 안에 또 다른 강점을 찾아내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려 합니다. 때가 되면 조금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고, 시든 잎은 떼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나라는 식물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니까요.


최근 며칠간 바쁘게 일상을 보내느라 잊고 있던 화분을 들여다보니, 그새 새로운 잎을 키워내고 있더라고요. 분홍빛을 띠는 여린 새잎은 언제 보아도 설레고 기특합니다.


나의 강점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기쁨은 오죽할까요. 어느 날 문득 머리를 내미는 새잎을 기다리며 오늘도 햇볕을 쬐어주며 세심히 돌보는 중입니다.


당신의 식물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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