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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연 Sep 10. 2023

무기력할 때일수록 보잘것없이 작고 잔잔하게

진짜 열정은 조용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천천히 일어나거라. 엄마 큰일 날 뻔했어!"

​​

언젠가 급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나시다가 병원행 하신 시어머니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혈관이 놀라서 급히 수축하는 바람에, 순간 심장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증상인데요.

​문득 무기력을 이겨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무기력과 비교적 거리가 먼 단어는 '열정'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종종 열정이를 소환해 오려고 애써왔던 것 같습니다. 왠지 내 안의 무기력과 싸워서 이겨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열정은 무기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 열정'이 많아요. 도파민 효과와 비슷한 쾌감을 줍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무언가에 꽂혀서 시작할 때 준비물부터 챙기는 스타일입니다. 유튜브에서 미드로 공부하는 법을 보고는 꽂혀서, 미드 대본을 한가득 출력을 해놓고는 며칠 안에 시큰둥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대표적인 가짜열정입니다.


​'진짜 열정'은 생각보다 잔잔하고 조용합니다. 시간을 연료 삼아 더 견고해집니다.

불타오르는 가짜 열정은 무기력을 이기지 못합니다. 침대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탈이 나기 쉬워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포지션을 바꿔나가야 몸이 놀라지 않아요. 진짜 열정이 서서히 내 정체성이 되어가는 것처럼요.


​​무기력을 이기는 대표적인 방법이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아요. 출발하기 전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날도 더운 것 같고, 몸도 피곤하고...


​반면 5분만 걸어야지, 아파트 단지 한 바퀴만 돌아야 지는 비교적 부담이 덜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거 걸어서 뭔 소용이야. 됐다 관두자.' 같은 생각이 나를 붙잡습니다.


​하지만 열정이 이끄는 '오늘은 제대로 걸어보겠어!'는 며칠 못 가기 쉬워요. 오히려 아이 등교시키고 돌아오면서 조금만 더 걷는 10분 루틴이 나를 걷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시작은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게 하길 권합니다. 이거 해서 뭔 소용이야, 싶은 것으로요. 그리고 내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게 하세요. 작은 루틴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요즘 저의 작은 행복은요. ​

아이 등교 후 아파트 둘레를 한 바퀴 살랑살랑 힘을 빼고 걸은 다음, 저렴하고 맛있는 무인카페에 들러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커피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적당한 노래를 틀어놓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작은 루틴이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줄 뿐만 아니라, 저를 걷는 사람, 쓰는 사람, 읽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상황은 나의 노력만으로 바꾸기 어렵고, 오히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 때문에 불안한 나머지 평정심을 잃고 무력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견고한 루틴을 계속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신미경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제목이 좋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자의 루틴들과 삶을 지탱해 주는 가치들을 읽다 보면 나만의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렇게 읽어 내려가다 내 삶에 들이고 싶은 루틴을 발견하면 나만의 방식으로 살짝 변형해서 가져오기도 합니다.


​생활의 작은 조각에 내 취향을 담아 진짜 열정으로 뿌리를 내려보세요. 견고해진 루틴이 나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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