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열정은 조용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천천히 일어나거라. 엄마 큰일 날 뻔했어!"
언젠가 급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나시다가 병원행 하신 시어머니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혈관이 놀라서 급히 수축하는 바람에, 순간 심장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증상인데요.
문득 무기력을 이겨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기력과 비교적 거리가 먼 단어는 '열정'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종종 열정이를 소환해 오려고 애써왔던 것 같습니다. 왠지 내 안의 무기력과 싸워서 이겨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열정은 무기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 열정'이 많아요. 도파민 효과와 비슷한 쾌감을 줍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무언가에 꽂혀서 시작할 때 준비물부터 챙기는 스타일입니다. 유튜브에서 미드로 공부하는 법을 보고는 꽂혀서, 미드 대본을 한가득 출력을 해놓고는 며칠 안에 시큰둥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대표적인 가짜열정입니다.
'진짜 열정'은 생각보다 잔잔하고 조용합니다. 시간을 연료 삼아 더 견고해집니다.
불타오르는 가짜 열정은 무기력을 이기지 못합니다. 침대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탈이 나기 쉬워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포지션을 바꿔나가야 몸이 놀라지 않아요. 진짜 열정이 서서히 내 정체성이 되어가는 것처럼요.
무기력을 이기는 대표적인 방법이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아요. 출발하기 전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날도 더운 것 같고, 몸도 피곤하고...
반면 5분만 걸어야지, 아파트 단지 한 바퀴만 돌아야 지는 비교적 부담이 덜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거 걸어서 뭔 소용이야. 됐다 관두자.' 같은 생각이 나를 붙잡습니다.
하지만 열정이 이끄는 '오늘은 제대로 걸어보겠어!'는 며칠 못 가기 쉬워요. 오히려 아이 등교시키고 돌아오면서 조금만 더 걷는 10분 루틴이 나를 걷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시작은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게 하길 권합니다. 이거 해서 뭔 소용이야, 싶은 것으로요. 그리고 내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게 하세요. 작은 루틴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요즘 저의 작은 행복은요.
아이 등교 후 아파트 둘레를 한 바퀴 살랑살랑 힘을 빼고 걸은 다음, 저렴하고 맛있는 무인카페에 들러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커피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적당한 노래를 틀어놓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작은 루틴이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줄 뿐만 아니라, 저를 걷는 사람, 쓰는 사람, 읽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상황은 나의 노력만으로 바꾸기 어렵고, 오히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 때문에 불안한 나머지 평정심을 잃고 무력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견고한 루틴을 계속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신미경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제목이 좋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자의 루틴들과 삶을 지탱해 주는 가치들을 읽다 보면 나만의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렇게 읽어 내려가다 내 삶에 들이고 싶은 루틴을 발견하면 나만의 방식으로 살짝 변형해서 가져오기도 합니다.
생활의 작은 조각에 내 취향을 담아 진짜 열정으로 뿌리를 내려보세요. 견고해진 루틴이 나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