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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연 Jun 22. 2022

인생은 블랜딩 커피처럼

나를 지키며 타인과 함께 하는 삶

핸드드립을 실습하던 중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주전자와 드리퍼가 부딪혀 말 그대로 달달달달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도 떨었다.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왜 이렇게 손을 떠냐며 물으셨고, 아마 먹고 있는 공황장애 약이 독해서 그런 것 같다며 되도록 담백하게 들리도록 대답을 했다. 선생님의 반응은 신선했다.

“공황이에요? 나도 공황이야!”

“우리 공황이들은 체력 관리를 잘해줘야 해요.”


‘우리 공황이’ 라니! 이렇게 귀여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유쾌한 표현은 5년간의 공황 경력 중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의 경력은 20년을 넘어가고 있었기에 이상할 것도 없었다. 방금 내린 커피가 식도록 ‘공황이’의 슬기로운 생활을 전수해 주셨다. 산뜻하고 따뜻한 위로가 선생님의 커피와 닮아 있었다.


타인의 위로로 일상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타인은 타인의 몫을 살아내야 한다. 몫을 채우고도 남아 베푸는 이도 있지만, 제 몫을 해내기도 급급한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 친구, 동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도 예외는 없다. 냉정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가족도 개인이 모인 공동체라는 걸 잊으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그로 인해 고통 속에 사는 가정도 주변에서 많이 본다.


공황장애 약을 잠시 끊었을  빠른 속도로 불안이 찾아왔다. 가만히 누워있기도 힘들 정도로 공황이 왔기 때문에 제대로  수면도   없었다.  몫을 해내지 못하니 남편이 체감하는 일상의 무게는 나날이 더해졌다. 매일같이 나의 컨디션을 살피고 용기를 주던 남편도 시간이 길어지자 엉망이  냉장고와 모든 연락을 끊어버린 나를 보며 한숨을 쉬곤 했다. 결국 몸과 마음이 바닥을 보이고서야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힘들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삶은 어떻게든 내가 이끌고 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무리 공감능력이 뛰어난다고 한들, 본인의 삶보다 더 집중할 수 있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의 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조언인지, 괜찮다는 위로인지는 본인만큼 잘 아는 이가 없다. 다시 병원에 다니면서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반복한 일이 있는데, 바로 나에게 말 걸기였다. “오늘 하루 애쓰느라 수고했어. 잘하고 있어. 더 좋아질 거야” 처음 나에게 받는 위로에 눈물이 났다. 자기 연민으로 시작한 위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단단했다.


내 몫의 일상을 살아내니 남에게 나눌 몫이 생기는 날도 더러 있다. 이젠 나에게뿐 아니라 타인에도 말을 건넬 여유가 생긴다. “오늘 하루 애쓰느라 수고했어.”


오늘 아침엔 산미가 강한 원두와 묵직하고 다크한 원두를 블랜딩 해서 커피를 내렸다. 산뜻한 맛 뒤로 부드러운 묵직함이 받쳐주어 기분 좋은 맛이 된다. 산뜻한 묵직함. 말장난 같이 어우러진 커피맛처럼 우리의 일상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 제 맛은 잃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맛이 만났을 때 근사 해지는 커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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