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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Jan 12. 2024

내 인생에 이제 왁싱은 없다

털의 역사와 셀프 왁싱 부작용 경험담

* 이 글은 어떤 제품이나 업체, 또는 셀프 왁싱 자체를 비하할 의도가 없습니다. (그럴 영향력도 없습니다...)

개인의 면역력이나 상태에 따라 다르기에 잘 맞고 가성비 좋게 즐겨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전 매우 예민한 몸을 가진 편입니다)




 이미 유명한 가수,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은 한 번씩 겨드랑이 털을 노출하는 사진에 구설수가 오르내리곤 한다. 최근 한 댄싱 프로그램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한 외국 여성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취향일 수도, 사회의 암묵적인 압박일 수도 있는 여성들의 겨드랑이 털에 대한 논의는 AI시대로 가고 있는 이때조차 끊이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는 자연스러움, 나다움이 강조되면서 틀에 박힌 개념이나 외모에 대한 강박을 버리게 되는 흐름이 잔잔하게 일었고 수긍이 되었다. 어떤 방법이더라도 이런 트렌드에는 꼭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레이저 제모 뒤에 조금 적어진 덕도 물론 있겠지만 반바지를 입고 지하철에 타기 전 한 두 가닥이라도 발견하면 없애버리던 인식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자란 털을 감추지 않고 타는 뻔뻔함을 점점 실험해 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남들은 훨씬 나에게 관심이 없음을 깨달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아주 쉽게 변한 것 같지만, 털과의 끈질긴 역사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 뒷자리에 앉는 게 익숙한 학생은 초경도 빨리 왔을 것이고, 겨드랑이에서도 신기한 현상이 발생하는 건 당연했을 터. 여름용 체육복을 입고 돌계단 위에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던 바로 그때, 우리 반에서 축구를 잘하고 키가 제일 큰 녀석이 털 이야기를 꺼낸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여자애들 쪽을 바라보며 "야, 너네 겨드랑이 털 있냐!?ㅋㅋㅋ"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이가 당시 나의 겨드랑이에 몇 가닥을 볼 정도의 시력이었다면 걔는 몽골 출신이었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마음에 찔렸다. 우리 사이에 흔치 않은 털이 먼저 나고 있었으니까.


그 이후로 모든 털에 집중했다.

동절기 스타킹을 신지 않는다면 이틀에 한 번은 꼭 밀어줘야 했던 다리털을 비롯한 다른 여자애들의 손가락 털이나 인중 털은 중2부터 집중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선풍기 바람에 흩날리는 다른 학우의 흰 팔 위의 털을 보며 움츠러들었다. 본인은 당당해 보였는데 이상하게 나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잡지에서는 각종 제모 방법과 털 때문에 난감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성에 관심 있는 그때에 '여자의 털에 깨는 남자들이 많구나. 에라 이 몹쓸 털!'을 학습해 나갔다.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 이유가 왠지 인중털을 들켰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남자친구를 사귀면 버릇처럼 털이 많다고 공개선언하였고 이에 대한 반응을 예의 주시했었다. 다행히 내가 만난 연인은 콩깍지가 씌었을지 모르지만 개의치 않았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내 모든 행동이 좌지우지되는 건 아니었지만 털을 뛰어넘는 사랑은 내게 털을 덜 신경 쓰게 하는 약간의 쿠션이 되어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애증은 날로 커졌다. 시도해 본 제모 방법은 면도기로부터 시작해 탈색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으며 각종 상처나 인그로운헤어, 염증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중에서도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팔털, 인중털, 겨드랑이털, 다리털을 모두 조지는 레이저 시술을 결제했을 때의 지갑의 출혈이 정말 컸으나 효과를 본 부분이 적었다는 점은 가슴 아픈 기억 중 하나다.




Y존까지 케어하는 실정이 된 후부턴 정말 털이 지긋지긋했다. 엄마는 항상 이런 나에게 휴게소 화장실에 붙어있는 무모증 치료에 대해 언급했다. 털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고.


하다 하다 브라질리언 왁싱이라는 것을 처음 해본 날은 잊히질 않는다.

깔끔하고 노곤해지는 조명과 향기, 음악과 대비되던 고통...

헬존이라는 죽음의 골짜기를 뜯을 때에는 '어우 아프겠다 어우'하며 같이 안타까워해 주시는 왁서분이 있어 식은땀이 나도 참아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약간의 수치를 느끼며 흘린 땀도 포함이다.


그래도 두 번째, 세 번째는 처음에 했던 하드왁싱이 아니라 슈가링 왁싱을 주기에 맞춰 받으니 확실히 덜 아팠다. 나름 단골로 삼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안심했지만 이내 나는 이사를 멀리 와버렸다.

그 후로 나의 정글은 당분간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었다.




마나가하섬



최근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당연히 물놀이를 할 계획이었다. 새로 산 비키니도 입어야 하니 그곳 또한 오랜만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 집 주변에는 마땅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사람 낯도 가리는데 새로운 왁서분을 찾아야 한다니 부담스러웠다.

무엇이든 셀프로 해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 절대 일어나면 안 됐을 도전 정신이 일었다.

마침 쿠팡에서도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경험을 토대로 방향에 맞게 한다면 와이낫?이라는 강한 확신에 휩싸였다. 아마 이때 내 뇌를 악마가 지배한 것이 틀림없다.


바다에 들어갈 수 있게 일정도 맞춰서 정확한 날짜에 돌입했다. 나름 잘 계획된 시술이 아닐 수 없었다.

후처리용으로 평소와 같은 알로에젤 정도만 준비했다. 전처리제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있으면 좋은 가루파우더 같은 걸 놓친 것이 약간의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지만 이미 시작된 후였다.

업체에서 올려준 영상을 보며 차근차근해나가면 되겠지.


첫 번째 비키니 라인의 한 구역을 시범 삼아했을 때 매우 클린해지고 아픔도 덜했다. 맛을 본 나는 급속도로 과감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놀란 살이 붉어지고 엉겨 붙은 쪽에선 물로 씻어내려야 할 만큼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도저히 진행할 수 없었던 헬존을 제외하고 어찌어찌 보기에는 잔털 없이 매끈한 비키니라인이 완성된 것에 만족스러웠다.




출국날이 다가왔다.


보통 샵에서 받고 왔을 때에는 가려움증보다는 모낭염의 부작용 정도를 항생제 연고 조금 바르는 것으로 잠재웠었는데 이상했다. 조금 그러다 말겠지 했던 가려움증은 점점 팬티 라인까지 부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약국에서 디판테놀 연고를 사다가 발랐다. 이때 나는 먹는 알레르기약(항히스타민제)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 증상은 더욱 심해져 벅벅 긁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두드러기 모양과 열감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여행 첫날, 컨디션이 제일 중요해서 새벽에 도착한 뒤 바로 잘 잠에 들어야 하는 일정인데 큰일이었다.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알로에 젤을 바르고 5분 있으면 다시 가려웠다. 긁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보니 잠이 오질 않았다.



allegra


다음 날 여행지 마트에 나가서 황급히 가려움증에 바르는 젤과 먹는 약을 구매했다. (사실 내 캐리어 속 상비약으로 챙겨둔 두 알의 알레르기 약이 있었던 것을 귀국 후 깨달았다)


다행히 약발이 들어서 한 풀 꺾인 증상에 물놀이는 한없이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회복을 기다려야 했지만. 하마터면 여행을 몽땅 망칠 수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번 발진을 겪은 탓에 앞으로 모근에서 털을 뽑는 행위는 일절 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이 들며 털에 대해 더욱더 관대해지기도 하겠지만, 몸이 놀라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거나 나의 제모 역사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걸까?

(다음부턴 그냥 비키니라인만 살짝 정리하던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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