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Feb 10. 2024

먹고 싶은 마음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를 하다


이로써 두 번째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처음에 한 검사는 MAST라는 급성알레르기를 발견하는 검사였고, 이번에 한 검사는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였다.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란 증상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 여러 가지 식품들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급성알레르기 결과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아마도 내 오랜 불편한 증상들은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 결과가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하게 되었다. 프로 홈프로텍터로서 병원에 가는 것이 귀찮았기에 이 검사 또한 집에서 셀프로 채혈해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집에서 피를 묻힌 종이를 택배로 보내면 결과를 알려준다니 세상 신기한 경험이었다. 허나 막상 채혈을 하려고 보니 자주 소화가 되지 않아 사혈침으로 자주 따던 내가 우습게 생각한 것에 비해 꽤나 끔찍한 과정이었다. 나오지 않는 피를 얻어내기 위해 피멍이 들 때까지 꾹꾹 손가락을 눌렀다. 열심히 짜보낸 덕인지 그 결과는 앞선 과정보다 더욱 처참하리만큼 자세하고 상세하게 나왔다.




나의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 결과



이제 앞으로 무얼 먹고살아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질 차례만 남아있었다. 1, 2단계로 안전한 구황작물, 해물들의 이름을 읽다 보면 아, 이러다 흡사 농촌이나 어촌 생활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까지 했다. 단순 비건식이 가능한 정도였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 같을 정도다.


결과를 받은 당일 저녁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열받는 일이 있어 아무래도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날로 요리까지 하고 싶진 않아 배달앱을 켰다. 정말로 이제는 이별해야 할 많은 음식들이 유혹해도 이제는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 정말로 없었다. 계란초밥이 들어있지 않은 초밥세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치나 연어, 새우로만 이루어진 그 세트가 그나마 안전해 보여 혼자서 3만 원어치를 간장(=대두) 없이 맛없게(?) 먹어버렸다. 매일 아침 이렇게 저렇게 해 먹기 좋은 "완전식품" 계란은 남편에게 몰빵 하기로 했으며 땅콩버터를 새로 산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아몬드브리즈를 못 먹어도 타격이 없었던 건 냉장고에 가득히 쟁여놓은 오트 바리스타가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어차피 커피도 나가리인 이상 별 의미가 없는 듯 보였다.




이번 설명절을 보내면서 다양한 음식과 간식을 마주하게 되었고 약간의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주자인 전은 내가 먹지 못하는 밀가루와 계란물에 담가졌고 그전을 위해 두 시간이 넘게 얼굴과 몸은 기름과 열기에 지져져 갔다. 검사 이후 며칠간 내가 스스로 차리는 집밥 외에는 집에 딱히 유혹이 될 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았을뿐더러 외출이 적으니 노출되는 맛있는 것들도 마트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이런 나의 심경변화가 당황스러웠다. 절제적 식습관으로 삶은 통제하는 것에는 충분히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오랜만에 받아보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과 이 결과를 기대하는 소망이 생겼다는 게 설렐 정도였다. 이전까지는 정확한 자료 없이 오로지 매일매일 내가 무엇을 먹었을 때 몸이 별로인지를 판단하고 그 감에 의존해 고무줄처럼 이 음식 저 음식을 먹었다 말았다 했던 날들의 반복이었다면, 이번 결과로 무언가 또렷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림과 동시에 다시 큰 돌에 막힌 기분이 들기를 반복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은 나의 금단현상에 반응했다. 그는 당연히 그 결과지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너무 참고만 지내면 그게 건강에 오히려 좋지 않을 거라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고 싶은 걸 조금씩은 먹자고 말해줬다. 어차피 이 검사는 앞으로 절대 먹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라 참고용으로 한 검사이며 높은 단계의 것들은 인지하고 조심해 먹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자고 말이다. 그의 말이 너무나 일리가 있기도 하지만 각오를 무르면서까지 충분히 받아들이고 싶을 정도로 인내심의 바닥이 나고 있다. 그렇지만 겨우 일주일뿐이지만 꿀피부는 아니더라도 맑은 느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고, 그간 못 자던 잠도 푹 자고 있으니 이제 와서 그르치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더불어 비싼 돈을 주고 한 검사 결과이니 만큼 이곳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단 몇 개월만이라도 절제를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부푼 희망은 여전히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마음먹으면 못할 일 없다고 하지만 난 좀 무른 사람이었나 보다. 끊은 지 얼마 안 된 담배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극심한 왔다 갔다를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주일 동안 'BEEF'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