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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y 25. 2024

오랜만에 가진 딸과의 <저녁 데이트>

오랜만에 딸과 데이트 길에 나섰다.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바람에 집에 딸과 둘만 남았기에, 아내가 평소에 즐기지 않는 삼겹살을 먹을 계획을 세웠다.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차창 밖에 보이는, 집 근처에서 열리고 있는 동네 장터 겸 주민 노래자랑을 보더니 딸이 말했다. 아빠, 저기 구경 가자. 가서 나 솜사탕 좀 사주라. 그새 천막들 사이에 세운 솜사탕 차량을 본 모양이었다. 알았어. 일단 집에 들어가서 차 주차하고 다시 나오자. 그렇게 말하고 차를 아파트 주차장으로 몰았다. 딸은 오는 동안 차 안에서 검색하더니 삼겹살 말고 숯불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매일 퇴근길에 그 앞을 지나다 보면 손님들도 많은 것이, 아마도 닭갈비가 맛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딸은 저녁에 추울지 모른다고 겉옷을 하나 걸치고 가겠다고 해서 집으로 올라왔다가 옷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집 안에서도 들릴 만큼 요란스러운 노래자랑 반주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딸은 내 팔을 끼고 매달리다시피 걸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집 앞의 골목시장에 있는 가게들이 가설 천막에 입주(?)해서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는 전국노래자랑보다 더 열정적인 노래와 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과 연세가 지긋한 노인 분들이 객석을 꽉 채웠고, 무대 방향으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른바 푸드코트 천막 안에 앉아 각종 안주에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집 바로 앞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은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아빠, 집 앞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을 보니 무슨 시골 마을에 사는 것 같아. 딸이 웃으며 말했다. 

    

행사장을 지나 솜사탕 트럭에서 솜사탕을 하나 샀다. 딸이 솜사탕을 먹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중국에 있는 아들은 부러워 죽으려고 한다. 엄마는 제주도에 놀러 가고, 동생은 아빠와 산책 겸 저녁 먹으러 나와서 솜사탕을 뜯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솜사탕을 들고 이디야 커피로 향했다. 딸이 탄산음료를 안 마시기 때문에 닭갈비 집에서 마실 음료를 아예 사서 들고 갖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흑당 버블티도 큰 컵으로 하나 샀겠다, 그 길로 곧장 닭갈비 집으로 향했다. 

     

걷는 도중, 부녀가 함께 즐겨 구독하는 웹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웹툰에서 나온 ‘고자’ 이야기가 나왔다. 알다시피 유행어가 있지 않은가? “이보시오, 의사 양반.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고자라니.”하는 그 유명한 TV 드라마 '야인시대' 말이다. 딸이 이야기 도중에 웃길래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 ‘고자’ 좋아하면 결혼해서 애도 못 낳는데. 그랬더니 그건 안 된단다. 딸은 결혼하면 반드시 아이는 둘을 낳겠다고 했던지라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은 생각도 안 해봤다고 한다. 


그래서 놀릴 요량으로 그래? 정우성이 고자라면?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 그건 좀 고민되겠는데?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다. 그냥 정우성을 포기해야지.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차은우가 고자라면? 그랬더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차은우를 택하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차은우 나이를 검색한다. 그리고는, 에이, 차은우 1997년생이네. 갸도 안 되겠다. 하는 거다. 딸은 동갑인 엄마와 아빠가 노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항상 자기도 동갑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차은우는 연하라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런 실없는 이야기로 웃고 떠드는 사이에 닭갈비 집에 도착했다.

     

매일 손님이 넘쳐서 가게 옆에 대기실 공간까지 만든 가게인데, 다행스럽게 우리가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가자마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닭갈비를 주문하고 콜라를 시켰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소주를 마셔 주어야 하지만, 내가 이유가 있는 일시 금주 중인지라 어쩔 수 없이 콜라를 주문한 것이다. 원, 참. 소주 안주를 앞에 두고 소주를 안 마시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나는 콜라, 딸은 흑당 버블티, 그렇게 우리 부녀는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오는 길에 잔뜩 배가 부른 딸이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애교를 떤다. 그것도 재주일세. 술 한 잔도 안 마시고 술 취한 척하는 거 말이야. 내 말이 재미있었는지 딸은 내 팔에 매달린 채 계속 조잘거린다. 그렇게 원래는 작가 부녀답게 저녁을 먹으면서 심도 있는 창작 이야기를 하자고 했었는데,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딸과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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