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독 피곤함을 느낀다. 그동안 쉬지 않고 일한 까닭인지? 아니면 단순히 환절기에 따른 신체 변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예전 같지 않은 컨디션이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졸음이 오고, 잠시라도 넋을 놓고 있으면 눈이 감긴다. 그러다 보면 여지없이 아내의 호통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하긴 그런 핑계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나는 잠을 잘 잔다. 물론 장소는 어디라도 좋다. 일단 신체적 긴장감이 느슨해지기만 하면 눈이 감긴다.
나는 집 거실 소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책상 앞이나 심지어 전철 안에서 서 있는 자세로도 손잡이만 잡고 졸곤 한다. 흔한 동남아 여행지의 마사지실에서도 눈만 감으면 잠에 빠진다. 아내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졸지 말라고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잠자고 있으면 아무래도 마사지사가 대충 마사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사지사의 손길이 내 몸을 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잠에 빠져든다. 마사지를 끝내고 나오면 밖에서는 아내의 한 소리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밤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잘만 잠에 빠진다. 간혹 아내가 이제 불 끄고 자자고 할 때 내가 잠이 안 온다고 하면, 웃기지 말라고 한다. 등만 붙이면 자는 사람이 무슨 잠이 안 온다고 하느냐며, 불이 켜있으면 자기가 잠을 잘 수 없으니 얼른 불을 끄라고 한다. 나는 잠자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냐며 아내에게 짜증을 내면서 자리에 들지만, 역시 아내 말대로 일이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아내보다 먼저 잠이 든다. 그러니 아내의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잠에 빠졌다는 말은 입에 올릴 수도 없다. 체질 자체가 이러니 요즘 들어서 부쩍 피곤함을 느끼면서 잠에 잘 빠진다는 말도 어찌 보면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잠을 잘 자는 것에 대한 일화가 있다. 몇 살 때의 일인지 나는 기억이 없는데, 내가 밥상 앞에 앉아 밥을 먹다가 숟갈을 밥그릇에서 입으로 절반쯤 올린 상태 그대로 잠을 잔 이력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던 어른들의 입에서 전해진 이야기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잠에 빠지는 특이한 능력은 이미 그때부터 발현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다 큰 어른이 되어 딸과 함께 전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딸은 그날 나에게서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선 채로 손잡이를 잡고 졸고 있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딸의 입을 통해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여러 사람에게로 퍼져나갔다. 그것뿐 아니다. 간혹 밖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서는 가족을 붙잡고 한 이야기 또 하고 하면서 주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쉽게 잠에 빠지는 체질 덕분에 씻고 나면 곧바로 잠든다. 물론 그 덕분에 밖에서 술을 많이 마신 것에 대한 아내나 가족으로부터의 책망에서 간단하게 벗어날 수 있으니, 이런 점은 쉽게 잠드는 체질이 주는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잠든 후에는 가족들이 내 흉을 본다고 해도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뭐라고 흉을 봤는지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잠에 쉽게 빠지는 체질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조금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나도 아내나 아들딸보다 잠에 덜 빠질 때가 있으니, 바로 운전할 때이다. 가족이 함께 차로 이동할 때는 항상 내가 운전석에 앉는데, 그때만큼은 아무리 졸음이 오는 상황에서 가족 모두 잠에 빠져도 나는 졸지 않는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운전하는 나에게 미안해서 졸음이 와도 버티려고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든다. 뒷좌석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나의 운전 실력에 대한 가족의 신뢰는 절대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차 안의 일행이 모두 잠에 빠져도 나는 결코 졸음을 느낀 적이 없다. 무슨 조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운전석만이 나에게 닥쳐오는 졸음을 몰아내는 것이다. 아, 한 가지 운전석의 나로부터 졸음을 걷어내는 일등 공신이 있기는 하다. 평소 군것질을 하지 않는 나는 운전석에서만은 이것저것 먹는다. 생각해 보면 그런 행동 이외에 특별히 졸음을 쫓을만한 행동은 없는 것을 보면, 간식 덕분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쉽게 잠에 빠지는 것 말고도 나는 한 번 잠들면 쉽게 잠에서 깨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침에 늦잠을 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는 습관 덕분인지 몰라도 아침에는 항상 일정한 시각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심지어 전날 술에 취해 늦게 잠이 들어도, 다음 날 아침에는 평소처럼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이것도 일종의 잠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잠의 시작과 끝이 확실한 체질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체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변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다 보면, 특히 아주 어린 손자가 생기다 보면 지금까지처럼 내가 잠들고 싶을 때 잠자고, 깨고 싶을 때 일어나는 일이 어쩌면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차피 어린아이의 하루가 어른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지금까지의 취침 습관과는 안녕을 고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대문 이미지는 나도 챗 GPT에게 졸라서 그려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