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명소 근처, 대마초 중독자들이 모여 사는 곳
밴쿠버에는 15분 간격으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시계가 있다. 밴쿠버 사람들은 그 시계를 '증기시계'라고, 그리고 그 시계가 있는 곳을 '개스타운Gastown'이라고 부른다.
밴쿠버 시내에는 이렇다 할 관광 명소가 많지 않다. 그래도 이 증기를 내뿜는 보통 크기의 시계는 여행객 사이에서는 나름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는지, 증기시계 주변에는 운치 있는 스타벅스도, 캐나다스러운 펍도, 연어 요리가 맛있는 브런치집도, 그리고 치즈 케이크가 맛있는 디저트 집도 있다. 밴쿠버는 밤 9시만 되어도 조용해지는 도시이지만, 워터프론트Waterfront 역과 증기시계 사이의 구역은 웬만큼 늦은 시간이 되어도 불빛을 잃지 않는 편이다.
버킷리스트인 '혼자 여행하기'를 실행하려, 학기가 시작하기 전 밴쿠버 시내를 열심히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밥도 먹고 칵테일도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밴쿠버 주민 말로는, 개스타운은 다 좋은데 증기시계 너머로는 가지 말란다. 혼자 가는 건 말도 안 되고, 같이 가도 무서울 거라며. 밴쿠버에 수십 년 살고 있는 자신도 그 너머로는 잘 가지 않는단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강했던 범죄사회학 수업과 젠더학 수업에서도 증기시계 너머의 개스타운은 '사회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지역'으로 다루어지곤 했다.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 너머로 가보아야겠다는.
한국인 친구 2명을 모았다. 오빠 하나, 또래 하나. 저녁에 가기는 솔직히 무서우니, 점심에 가서 브런치를 먹자고 했다. 환한 대낮에 마주한 증기시계 너머의 개스타운은 유령도시 같았다. 분명 주말인데, 사람이 없었다. 편견과 경계심으로 도배된 채로 가서 그런지, 스산한 분위기에 털이 곤두셨다. 정적을 깬 것은 깡통 캔이 철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남자. 50m 밖에서 보아도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씩씩대며 소리를 지르는데, 눈을 5초라도 더 마주쳤다가는 '[속보] 대마초 중독자에게 살해된 한국인 교환학생 3명' 따위의 기사에 실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황급히 눈을 피해 가능한 가장 빠른 걸음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캐나다는 대마초가 합법인 국가이다. 실제로 교환학생 동아리에서 만난 캐나다인 친구는 대마초를 폈고,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Do you smoke?"라며 대마초를 건네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마초 흡연 의혹이 제기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인격 모독적인 대우가 '과하다'라고 느껴온 사람으로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듯 대마초를 펴도 되는 캐나다 사회의 모습은 어쩌면 지향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필 거면 합법화해서 제도적으로 관리라도 하는 게 낫지 않나. 대마초는 마약 중에서도 중독성이 낮은 편이라던데, 솔직히 말해 술이랑 크게 다를 게 뭔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개스타운 너머로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받고, 심리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 사회 복지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덕지덕지 모여있는 그곳. 중독과 충동 범죄라는 알 법한 문제들을 넘어, 마약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든다. 즉, 마약의 합법화는 사회 불평등 고착화에 제도적으로 기여한다. 아득바득 다시 일어나 계층 이동의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것보다는, 환각 상태의 황홀함에 빠지는 것이 분명 더 쉽고, 편하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해가 질 때 즈음 잠에서 깨어나 대마초를 피고, 몽롱한 상태로 밤새 소리 지르며 웃고 우는 사람들에게 국가 지원금과 보조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로 사는 습관이 드는 것은 그렇기에 무섭고도 잔인한 것이다.
어딜 가든, 빛나고 주목받는 장소 너머에는 악취가 풍기는 장소가 있다. 편견으로 무장된 상태라 한들, 선뜻 그 너머로 향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마주함이 불러오는 그 둔탁한 충격은, 존재가 지워진 인간들에 대한 최초의 고민을 불러올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