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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Dec 11. 2022

나이 차이 스무 살, 첫 만남에 공주 여행을 갔다

처음 본 사이지만 같이 책방 투어 갈래요?

평소 좋아하던 책방에서 북토크가 열렸다. 그것도 정말 애정 하는 빨간 머리 앤의 그림책 작가님이라니. 예약을 하고 보증금을 입금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책방의 위치가 뚜벅이에게는 참 불친절한 곳이라는 점이다. ‘나만 알고 싶은 숲 속 작은 책방’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정말 산속에 있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 길을 따라가다 보면 소들도 만난다. 게다가 이 버스조차도 배차가 아주 길어 까딱해서 놓치면 길바닥에서 긴긴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우려가 이 날 나에게 일어났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마을버스를 아슬아슬하게 놓쳐버렸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 절대 북토크에 제시간에 갈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답은 택시밖에 없었다.


택시 타는 걸 제일 아까워하는 사람이라 북토크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맡겨둔 보증금과 택시비의 값어치를 저울질하다가 결국 택시를 택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북토크 시간에 딱 맞았다. 소박한 북토크였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좋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나왔던 택시비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집중이 잘 안 됐다. 괜히 왔나. 또 갈 때는 어떻게 가야 하나.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구석에 앉아서 울적한 마음으로 버스 정보를 찾아보고 있는데 책방지기 분께서 책방까지 어떻게 왔는지 선뜻 물음을 던져주셨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간의 여정을 설명하니 놀라시며 주변에 카풀할 분을 찾아봐주셨다. 한 여성분께서 공주 쪽으로 갈 건데 가는 길이면 태워다 드리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냉큼 어디든 괜찮다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어필했다. 버스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으로 함께 향하는데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셨다.



“혹시 오늘 뒤에 일정 있으세요?”


급하게 가야 하는 건지를 묻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아니요! 저는 바로 집으로 가려고 해요.”


아무 일정 없으니 편하게 가도 된다는 의미를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 정말요? 그럼 제가 오늘 공주로 책방 투어를 하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들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카풀을 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이동하며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는 큰 고민을 거치지 않고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우와 좋아요. 같이 가요!”


우리는 그렇게 통성명도 하기 전에 만난 지 10분 만에 당일치기 여행을 약속한 참 신기한 사이가 되었다. 무언가가 상당히 순서가 뒤바뀐 것 같지만 순간 엔도르핀이 확 돌았다.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차에 타고나서 본격적으로 인사를 했다. 책방 투어를 제안한 윤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두 아이의 엄마였다. 나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겠다마는 나이 차이가 거진 스무 살이 난다는 것을 알자 이 동행이 더 신비하게 느껴졌다. 차를 타고 가며 함께 점심을 먹고 책방 4곳을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윤은 최근에 책방을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책방에 가면 바쁘게 움직이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를 찾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매우 공감이 되는 대목이었다. 내가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이 날에도 윤은 회사에서 월차를 내고 북 토크를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나에게 제안을 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윤은 '여기까지 버스 타고 온 걸 보면 책방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고, 이다음에 일정은 없다고 하니까 한 번 물어보자-하고 얘기하게 된 거죠.'라고 명쾌한 답변을 내어주었다.


멋진데? 나도 대뜸 이런 제안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순간 스쳤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다가 휴학을 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 하나씩 차근차근하고는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는 고민까지 술술 나왔다.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상대과 흔히 하지 않을 법한 주제들까지 넘나들었다. 흐드러지게 맑은 하늘이 너무 예뻐서 가끔 차를 멈춰 세워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적당량의 반가움과 낯 섬, 어색함과 기대를 품고 신비로운 여행의 초입에 서있었다.




문득 창 밖을 보니 어느새 공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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