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을 마주하는 글쓰기의 원천을 찾아서
열살 때의 일이다. 10년을 살면서 인쇄매체에 내 이름 석자가 처음으로 실렸다. 비록 소박한 초등학교 교내 신문이었지만 굵은 활자로 종이에 뚜렷이 적힌 내 이름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글짓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책을 가까이 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던 지라 부모님께서는 놀라시면서도 대견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신문 한 켠을 조심스레 잘라 냉장고의 정 가운데에 붙여두셨다. 냉장고 위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낸 신문 조각에는 ‘친구사랑 편지쓰기 대회 금상 김지원’이라고 쓰여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어떤 내용을 썼길래 금상을 받았냐고 물어보셨고 당시의 내 대답을 들은 엄마는 “여보, 우리 딸이 글쓰기에 재능이 있나 봐.” 라고 말씀하셨다.
글쓰기 대회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렴풋이 남아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적어보라고 하셨다. 흑백으로 프린트된 편지지 종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가장 고민인 것은 편지의 대상이었다. 친한 친구들이 머릿속에서 한 명씩 스쳐 지나갔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쓰던 편지들을 떠올려보면 내용은 항상 비슷했다. 너랑 친해져서 정말 좋아, 나랑 친구해줘서 고마워, 우리 평생 친구하자 등등. 그리 길게 산 건 아니지만 당시에도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전하는 것은 관계를 돈독히 하는 좋은 방법임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의 생일에 편지를 쓰는 일에 꽤 열중했었다. 스티커도 여러 개 붙였고 알록달록한 싸인팬을 바꿔가며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이만큼 크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다.
그런데 편지쓰기 대회는 기존에 쓰던 편지와는 달랐다. 편지가 상대방에게는 닿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고 굳이 예쁘게 꾸미며 글 외적인 것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투박하게 복사된 편지지에는 무언가 다른 말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친구가 보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 순간 최근에 친해진 S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S를 떠올린 후 나는 곧장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편지에 담긴 것은 열 살의 내가 처음으로 느낀 아주 생소한 감정 한 움큼이었다.
S와 나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S는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팔과 다리가 길고 마른 체형에 잘 꾸미고 다녔다. 그런 S가 내가 다니는 영어학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S는 수줍음이 많은 편이어서 같은 반 친구인 내가 도움을 줬다. 당시의 나는 영어학원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져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S를 도와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친해졌다. 학원에서는 항상 옆자리에 앉고 수업이 끝나면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늘 천진난만하게 붙어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묘한 감정이 찾아왔다. S는 어딜 가나 빠짐없이 피지컬에 대한 칭찬을 받았다. ‘키가 정말 크구나’ ‘다리가 어쩜 이렇게 길어’ ‘나중에 모델 해도 되겠다’ 등의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는 키가 작고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S가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 와중에 S에 대한 칭찬을 옆에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샘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선명하게 느낀 타인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열 살의 어린 소녀에게 찾아온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은 순간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남겼다. 그 때에는 어떻게 감정을 다뤄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혼자 마음 속에만 삭히고 있었다.
그러다 이 복잡미묘한 감정의 물꼬를 건드린 것이 바로 투박한 편지지 종이였다. 편지쓰기 대회가 주는 익명성 때문인지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솔직한 마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나는 S에게 나의 질투심을 고백하는 편지를 적었다.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열 살의 언어로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편지지의 마지막까지 채워 넣었을 때 나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의 이름이 ‘질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랑 평생 친구하자’라는 끝맺음을 보고 나에게는 여전히 S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 역시 느꼈다. 그 순간 매우 통쾌했고 또 안도감이 들었다. 감정의 실체를 알았다는 점에서 통쾌했고 질투를 해도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나의 기억 속 처음으로 글을 쓰며 내 감정을 마주한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는 그 날의 경험이 글쓰기의 강력한 힘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동안 글쓰기를 등대 삼아 내 감정의 경로를 자주 찾아가며 그 힘을 몸소 느껴왔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그 때의 기억처럼 내가 몰랐던 감정을 깨닫기도 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글쓰기가 남기는 불빛을 따라 나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비춰보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를 잘 아는, 또 성실하게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며 나의 자취를 소복이 남기고 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처음으로 글쓰기의 힘을 느낀 날, 나는 나의 등대가 작은 빛을 냈다고 믿고 있다. 열 살 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