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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Jul 09. 2023

제육볶음은 쌈무를 싣고 ②

꿈의 학교 하랑 EP 6

막혀 있는 벽 앞에 서서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던 청년을 잡아온 숀은 그를 진정시킨 뒤 급식실 탁자에 그를 앉혔습니다. 이제는 도망가진 않았지만 청년은 여전히 지금 이 장소가 불편한 듯 무릎을 꿇고 벌을 받는 기묘한 자세를 고수하며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원래 급식실을 들어오는 일은 정말 큰일 날 일이야. 특히나 식중독에 민감한 학교에선 더더욱..”

숀의 조용한 말이 이어질수록 청년의 고개는 바닥으로 푹 소리를 내며 꺼져버릴 만큼 끝도 없이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제는 탁자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청년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며 숀은 그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하지만 자네.. 하랑의 졸업생이지? 사정 정도는 들어줄 수 있을 거 같네만.”



여태까지 만났던 불청객들과 보내온 시간을 바탕으로 숀은 이 청년 역시 사연이 있어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꿈의 학교 하랑은 마치 꿈처럼 잡힐 듯 말 듯 그리운 추억의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진 장소였습니다. 처음에는 경비원으로써 퉁명스럽고 냉정하게 불청객들을 대했던 숀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연이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반가움을 느끼기 시작한 자신이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숀은 한밤중의 하랑을 찾아오는 불청객들을 보며 자신 안에 무언가 새로운 감정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청년은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숀을 보더니 숀과 급식실 끝 조리실을 번갈아 보며 슬슬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청년은 입을 열었습니다. 



“저.. 그러면 어르신. 염치없고 어이없는 부탁일순 있지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들어보고 결정하겠네.”



숀의 작은 친절에 청년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저.. 학교 급식이 먹고 싶습니다!!



아직 숀이 무서운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청년이었지만, 그의 두 눈은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급식..? 너무 뜻밖의 단어를 들어버린 숀은 잠시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청년을 바라보았습니다. 혹여 늦깎이 더위라도 먹은 게 아닌지 청년을 살펴보았지만 청년의 눈은 맑은 광인의 눈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숀은 잠시 한숨을 포옥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리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타악 



몇 분의 시간이 흐른 후, 청년의 앞에 스뎅으로 만든 식판이 맑은 소리를 내며 놓아졌습니다. 



“와아… 그래.. 이거지.”

식판에 있는 내용물을 보며 청년은 감탄을 터뜨렸습니다. 



적당히 덮혀진 듯 김을 내며 국그릇에 소담하게 담겨있는 배추된장국. 진하지도 그렇다고 연하지도 않은 적당한 맑기의 국물에 청년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비칩니다. 국그릇의 바로 위에는 3가지 반찬이 적당히 담겨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당근과 팽이버섯, 그리고 돼지고기가 잘 볶아진 빨간 양념에 묻어 나와있는 제육볶음이 먹음직스럽게 담겨있네요. 바로 오른쪽에는 시판용 김치가 먹기 좋게 잘려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른쪽에는 초록빛을 띠는 쌈무가 곱게 접혀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음식들이었지만 음식을 보는 청년의 볼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제가 먹.. 먹어도 될까요 어르신?”

입가에 침이 잔뜩 고여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청년은 불청객인 자신의 처지와 추억이 불러온 10대의 기억 속에 잠들어있는 식욕 사이에 아찔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 뻘게진 얼굴로 숀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정상이 아냐… 숀은 살짝 이 청년이 무서워졌습니다. 그의 기억 속 학교 급식은 청년의 기대치가 비정상적 일정도로 보일만큼, 그렇게까지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전역을 한 군인 아저씨들이 군대밥과 학교 급식을 비교하는 짤이 돌아다닐 정도니까요. 하랑의 급식도 오늘 식단메뉴는 준수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침을 철철 흘릴 만큼 맛있는 미미(美味)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 먹으면서 이야기 나눠봄세.”



숀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청년은 잘 먹겠습니다!라는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전투적으로 식판에 달려들었습니다. 먼저 쌈무를 예쁘게 밥 위에 펼칩니다. 옥빛처럼 빛나는 초록색 물을 잔뜩 머금은 쌈무가 밥을 부드럽게 감쌉니다. 적당히 고슬고슬한 밥을 한 움큼 퍼담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버섯 하나, 당근조각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제육 한 점을 쌈무 위에 꼭꼭 눌러 담습니다. 이미 상당한 크기임에도 청년의 욕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판용 김치의 배추 겉절이 부분을 한줄기 찢어서 화룡점정을 한 후에야 청년의 현란한 젓가락질은 멈췄습니다.



“역시 제육볶음은 쌈이지!”



한입에 넣기 살짝 부담스러운 크기일 법도 싶으나 청년은 와앙~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한입에 쌈을 삼켰습니다. 식었지만 그럼에도 제육의 비계 부분이 부드러운 기름을 흘려보냅니다. 약간은 느끼할 수 있는 제육의 기름진 고소함을 쌈무의 상큼 달달한 신맛이 맞이해 줍니다. 입안에서 펼쳐지는 완벽한 한쌈의 하모니에 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며 감동을 표현하였습니다. 



‘저게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순찰을 마친 후, 가끔 간식을 까먹는 게 다였던 숀이었지만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는 불청객은 처음 보았기에 무심코 군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저기.. 나도 한입만..”



탁!



젓가락을 슬그머니 밀어 넣던 숀의 손을 단호하게 잡아채는 청년의 눈이 기이하게 번뜩입니다.



“어르신… 아무리 어르신이셔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제육볶음 같은 숭고한 음식을 한입만~하려고 하다니요!”



아니, 아까 그 겁이 많던 청년을 뭐가 이렇게 바꿔놓은 것일까요. 숀의 턱이 어이가 없어서 가을철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덜덜 떨렸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미식의 삼매경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쌈을 연달아 4번이나 싸 먹고 난 후, 배추된장국을 크게 떠서 후루룩 마셔버렸습니다. 일반 된장국과는 다른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청년의 입안을 훑고 지나갑니다.



그런 청년을 어이없게 바라보던 숀의 입가에 어느새 작은 웃음기가 걸렸습니다. 하얀 와이셔츠에 국물이 튄 줄도 모른 채, 허겁지겁 밥을 먹는 청년의 등이 아까보다는 조금 더 편해 보였습니다. 아직 밤은 길고 고요하니까. 조금 더 이 불청객의 식사를 내버려 두자고 생각하며 숀은 턱을 괴고 가을밤의 선선한 바람결에 기대어 눈을 감았습니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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