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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Jul 22. 2023

제육볶음은 쌈무를 싣고 完

꿈의 학교 하랑 EP 6

몇 분 후, 텅텅 빈 식판을 아쉽게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는 청년에게 숀은 쇠컵에 물을 담아 건넸습니다.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쳐 물컵을 받은 청년은 벌컥벌컥 소리를 내며 물 잔을 금세 비웠습니다. 은빛 식판과 은빛 컵이 달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렸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르신”



청년은 고개 숙여 숀에게 인사했습니다. 푸근하고 따뜻한 미소가 청년의 입가에서 사르르 번졌습니다. 청년에게 가지고 있는 고민의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이야기하려던 숀은 이내 청년의 표정을 살피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마주 앉아서 먹는 식사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청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따스함과 감사함이 묻어나옵니다. 



“허허.. 이 아저씨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 다음부턴 정문으로 들어오라고? “

장난스럽게 청년의 잘못을 짚어주며 숀 역시 청년을 부드럽게 다독였습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간 청년을 바라보며, 숀은 어느 추운 겨울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90도 인사를 하고 사라졌던 배달청년을 떠올렸습니다. 이 학교가 그래도 예절교육 하나는 잘 시키는 거 같단 말이야..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던 숀은 이번에는 고민을 풀지 않고 떠난 청년을 떠올렸습니다. 



음식을 다 먹은 청년은 고민 따위 없는 밝은 얼굴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단순히 음식이 먹고 싶었던 걸까? 숀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비록 청년의 고민은 도통 듣질 못했으니, 꿈속에서라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숀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추억과 음식, 그리고 이렇게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라면 있던 고민도 없어지겠어.”

청년을 생각하며 다시 피식 작게 웃어 보인 숀은 이내 순찰루트를 따라 경비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은 고민으로 깊어졌던 다른 밤보단, 조금 더 빨리 잠들 수 있겠네요.






“좋은 아침~ 커피 한잔 해.”



청년은 아침부터 에어팟을 끼고 흥얼거리고 있는 후임의 책상에 따뜻한 별다방 커피를 올려놨습니다. 선배가 먼저 인사를 할 줄은 몰랐는지, 아니면 평소와 달라 보이는 청년의 분위기에 놀랐는지 후임은 동그래진 눈으로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아니면 유달리 시원하고 맑은 가을하늘 덕분인지 오늘 가져간 보고서는 한 번의 지적도 없이 프리패스로 통과를 맡게 되었습니다. 평소와 달라 보이는 청년의 분위기에 부장님은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추켜올리며 청년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자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혹시 연애해?”

남의 사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는 부장님도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능청스레 대답을 해주며, 청년은 부장실을 빠져나왔습니다. 뒤에서 역시 연애하는 게 맞네 맞아 라며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살포시 무시해 줍니다. 오늘따라 열어둔 창문밖으로 솔솔 들어오는 가을바람이 꼭 어제 먹은 쌈무의 맛처럼 달콤 상큼한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와 마주 보며 밥을 먹는다는 게, 생각보다 좋은 일이더라고요.



곰 같은 인상의 아저씨는 알고 있었을까요. 청년의 고민이 사라진 건, 단순히 추억과 음식뿐만은 아니란 것을.




제육볶음은 쌈무를 싣고.  끝.



- '마지막 EP. 숀'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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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볶음은 쌈무를 싣고 ①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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