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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Sep 13. 2023

꽃등이 붉은 감처럼 열렸다

송광사의 연등


 드디어 인천공항에 날개를 내렸다.

검역확인증을 받아 입국 심사를 마친 후에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국의 공항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공항에서 주선해 준 택시를 타고 양재역쯤에 이르니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었다. 왠지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식당과 커피숍에도 많은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삭막한 뉴욕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 아! 여기는 고국. 반갑고 가슴이 뛰었다. 


 자가격리 일주일, 발이 묶이고 지정된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하는 현실은 물리적 불편보다는 심리적 불안을 더 키웠다. 다시 폐쇄 공포증에 휩싸인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그래도 이 기간을 잘 견디어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아주 낯선 일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창밖 석촌호수에는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고 있었지만 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종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코로나 뉴스, 잡히지 않는 사월의 하늘, 걸을 수 없는 벚꽃길, 우울만 덩그렇게 앉아 있는 놀이동산의 기구들. 모든 것이 사월을 울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주검을 매일 숫자로 말하고 있는, 매장할 곳이 없어 시신이 방치되고 있는 뉴욕 하트섬을 생각하면 발이 묶여도 고국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자가격리 2주를 보냈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석촌호수로 달려 나갔다. 날아갈 것 같았다. 지상에 두 발을 딛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눈물 나도록 감격스러웠다. 많은 사람이 호수 둘레길을 마스크를 쓴 채 있었지만 표정만은 밝아 보였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껏 살아온 이전의 생활방식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이만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다. 고국이 자랑스러웠다. 




 돌아보면 사는 일은 기다림이고 또 기다림이었다. 

비즈니스가 자리 잡히기를, 그린카드를 무사히 받을 수 있기를, 만 불을 저축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이륙과 착륙의 아스라한 기억 속의 사월. 

카뮈의 페스트와 생떽쥐베르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며 단절된 사회와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던 닫힌 공간 속의 사월. 

계절이 우리를 잔인하게 내쳤어도 결국 꽃을 피웠던 사월. 

저마다의 기원과 기도를 담은 꽃등이 붉은 감처럼 열렸던 사진 속 송광사까지. 

우울과 위로의 지난 사월 풍경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부처님 오신 날을 맞은 순천 송광사 마당(조선일보, 김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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